잔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단 한 방으로 끝난 승리에 언제까지 모두가 취해있을 수는 없다. 좀 더 냉정하게 뒤를 돌아보고 앞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에서의 일전도 기다리고 있고 앞으로도 심심찮게 국제대회에서 맞대결을 벌여야 하기에 '정말로 한국야구가 일본을 앞서나가고 세계 속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프로 선수들이 모두 참여하는 사상 최초의 세계대회인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한국팀과 일본팀은 최고 정예멤버로 구성한 자국 역사상 최강팀이라고 할 만하다.
한국은 세계 최고 무대라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거나 활약했던 7명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동중 인 1명 등 해외파 8명을 선발하며 '드림팀'을 만들었다. 일본도 마쓰이 히데키 등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간판스타 몇 명이 빠졌지만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 중 한 명인 이치로를 비롯해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들이 총출동, 일본 대표팀 사상 최강팀을 구성했다.
이처럼 최고의 선수들로 최강의 팀을 만든 양국 대결에서 한국이 짜릿한 역전승, 그것도 원정지인 일본 도쿄돔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두고 두고 잊을 수 없는 명승부로 남을 것이다. 물론 한국보다 긴 70년의 프로야구 역사를 자랑하며 은근히 한국을 '한 수 아래'로 여겨온 일본에게는 '굴욕적인 패배'가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야구가 일본야구를 '완전히 뛰어넘었다'고 말하기에는 어딘지 부족한 감이 든다. 지난 5일 한국이 3-2로 승리를 거둔 후 한국야구인들은 누구보다 승리를 기뻐하면서도 여기서 만족하면 안된다며 더 발전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허구연 MBC 해설위원의 촌평은 가슴에 와 닿았다. 허 위원은 먼저 "야구는 모르는 것이다. 자국에서 최고로 잘하는 선수들로 구성한 국가대표팀간의 맞대결에서 일본이 항상 한국을 이긴다고 할 수는 없다. 이날 한국팀 승리와 지난 3일 대만과의 개막전을 보면 알 것이다. 대표팀끼리 맞붙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하기 힘든 것이 야구"라며 이날 일본전에서 한국 승리에 의미를 뒀다.
그러면서 허 위원은 "그러나 일본은 지금의 대표팀과 비슷한 수준의 팀을 2, 3개도 만들 수 있는 나라다. 그만큼 저변이 우리보다 넓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라며 "우리도 일본처럼 국가대표팀 수준의 팀을 몇 개씩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 구성된 '야구발전연구원'의 멤버답게 허 위원은 발전 방안의 하나로 '야구장 시설 현대화'를 꼽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전 승리 후 신상우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의 발언도 의미를 둘 만했다. 신 총재는 "지금은 우리 선수들이 잘해서 이겼지만 부실한 하부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저변 확대를 위한 아마야구 활성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해 이날 승리를 기폭제로 삼아 야구 발전에 힘쓰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신 총재는 아마야구 활성화는 물론 현재 돔구장 건설 및 야구장 현대화, 그리고 이번 대회를 비롯한 국제대회 일정 성적을 냈을 경우 병역 혜택을 주는 방안을 놓고 관계 부처와 긴밀한 협의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 총재나 허 위원의 구상이 현실화되면 한국야구로선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럼 수 년 후 또 다시 일본팀과 맞붙게 되면 더 강한 팀으로 맞서 승리를 따내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또 하나 한국야구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발전하려면 팬들의 성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번 대회가 개막되기 전 일본야구의 영웅으로 불리며 일본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치로는 '상대(한국 대만)가 앞으로 30년은 넘보지 못하게 만들겠다'며 한국과 대만팀을 자극했다. 당연히 이 발언을 두고 한국에서는 '망언'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한국을 깔본 이치로의 이 발언은 한국이 '망언'으로 받아들일 만했다. 이치로 발언에 자극받은 한국팀의 선수들은 분기탱천했고 한국에 있던 팬들도 '이번 기회에 일본에 이겨 이치로를 깨부수어야 한다'며 열을 올렸다.
그러나 이치로의 이 발언은 한국야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 초석으로 삼을 만하다. 이미 한국은 대표팀간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며 야구 실력면에서는 '30년 차이'가 아닌 '대등한 수준'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야구장 시설과 팬 성원에 있어선 '30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단적으로 이번 WBC 아시아 라운드만을 놓고 봐도 그 점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일본팬들은 일본 대표팀이 후쿠오카돔에서 연습경기를 가질 때부터 운동장을 찾으며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유료로 치러진 연습경기에 2만 명, 3만 명이 넘는 관중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정규 시즌에도 '썰렁한 관중석'이 많은 한국 프로야구로선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일본팀에 앞서 연습경기를 텅빈 그라운드에서 치른 한국팀과 이 모습을 지켜본 한국야구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일본팬들의 열렬한 야구 사랑에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도 팬들이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 응원해주면 더 신이 날텐데'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표정들이었다.
물론 한국야구에도 열성 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정상 운동장을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야구에 관심이 높은 팬들은 얼마든지 있는 곳이 한국이다. 하지만 그들이 운동장을 찾아 경기를 관람하며 좋아하는 선수나 팀을 응원하면 더 수준높은 한국야구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야구가 앞으로도 일본야구를 꺾고 세계속에 우뚝 서기 위해서'는 깨끗하고 쾌적한 시설, 끊임없는 팬들의 성원과 발 길뿐이다. 그 가운데서 한국야구 선수들의 수준은 향상되고 한국야구는 튼튼한 성장 기반을 가질 수 있다.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 야구인, 야구관계자, 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본사 스포츠취재팀장 sun@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