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야구대회에서 미국이 심판의 판정으로 이득을 보는 일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강’ 미국은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서도 심판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지난 13일(한국시간) 미국은 일본전 8회초 3-3 동점, 1사 만루 수비 때 좌익수 플라이가 나오자 태그업에 의해 한 점을 내주었으나 일본 3루주자 니시오카가 포구 순간보다 빠르게 출발했다는 어필에 의해 아웃되는 해프닝으로 동점 상황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9회말 공격 2사 만루서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적시타로 4-3으로 역전승을 거두었지만 아무래도 개운치 않습니다. 찜찜한 정도가 아니라 TV 리플레이를 아무리 봐도 도저히 니시오카가 좌익수 포구 전에 스타트를 끊은 게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제가 TV를 본 상황은 이렇습니다. 3루주자가 포구 순간 분명히 스타트 준비를 하고 어깨를 흔들었으나 발은 포구 순간에야 떨어졌습니다. 미국 감독이 어필하자 밥 데이비슨 구심은 타구를 쫓아 외야쪽으로 간 닐 풀턴 3루심 대신 3루쪽으로 달려 온 브라이언 나이트 2루심에게 물어 본 뒤 바로 아웃을 선언했습니다.
이번 WBC 대회 심판진에는 다른 나라에서도 참여했지만 대부분이 미국 마이너리그 심판진으로 구성됐습니다. 조직위원회는 본래 메이저리그 심판진으로 이번 대회를 치르려 했으나 메이저리그 심판 노조에서 출장비 등 각종 수당을 많이 요구하는 바람에 마이너리그 심판진이 이번 대회를 맡고 있습니다.
마이너리그 심판진의 수준이 낮다는 게 아니라 아무래도 이번 대회 개최국 미국 편을 든 것으로 보입니다.미국은 야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메이저리그를 운영하면서 국제대회마다 ‘종주국’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00년 9월에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입니다. 야구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회에 이어 미국 애틀랜타 대회서도 잇따라 쿠바에 금메달을 넘겨준 미국은 시드니에서 우리와 준결승전에서 맞붙었습니다.
당시 국내외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간추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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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야구 준결승에서 한국이 미국에 패한 것은 석연찮은 심판 판정 때문이라고 미국과 시드니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시드니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제공하는 올림픽 뉴스서비스(ONS)는 심판의 두 차례 오심 덕분에 미국이 동점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ONS는 미국이 1-2로 뒤지고 있는 7회 미국의 득점 상황을 설명하면서 미국 타자 마이크 킹케이드가 3루쪽 번트를 대고 뛸 때 1루수 이승엽의 글러브를 밟고 지나갔기 때문에 명백한 아웃이나 1루심 풀벡(호주)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이어 킹케이드가 덕 민케이비치의 우전안타 때 3루까지 진루하면서 킹케이드가 오버런해 손이 3루 베이스에서 떨어진 순간 한국의 3루수 김동주가 분명히 태그했으나 3루심 움베르토 카스티요(베네수엘라)가 세이프 판정을 내린 것은 명확한 오심이었다고 ONS는 썼다.
미국의 AP통신도 ‘주자 한 명을 심판 두 사람이 오심으로 살려줘 미국이 동점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1루심 풀벡의 판정에 대해서는 ‘반쯤 정신이 나간(harfheartedly) 판정’이라고 표현하고 주자 킹케이드도 나중에 그런 판정을 바라지 않았다고 고백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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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AP통신은 ‘한국 국민은 편파 판정에 분노했으나 한국대표팀의 김응룡 감독은 항의하지 않아 자국민으로부터 맹렬히 비난을 받았다’라고 후속기사를 추가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올림픽 야구 심판에게 빠떼루를 주자”는 항의도 나왔죠.
이번 WBC 중계 방송을 주관하는 ESPN은 대회 개막 직전 미국 대표팀의 예전 명승부를 소개하면서 그 첫 번째로 시드니올림픽 때 미국이 조별리그 한국전에서 민케이비치가 8회 2사 만루에서 진필중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날려 4-0으로 이긴 것과 준결승전에서 2-2 동점 후 민케이비치가 박석진을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터트려 결승에 진출한 것을 꼽더군요.
우리로서는 참으로 기가 막힌 들러리가 된 셈입니다.
야구는 심판 판정이 승부를 좌우하는 정도가 다른 스포츠 종목보다 많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 WBC대회는 심한 것 같습니다.
본사 편집인 chuip@osen.co.kr
일본의 득점을 인정했다 아웃으로 판정을 번복하는 밥 데이빗슨 구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