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균의 인사이더] 속사수 노희경을 아시나요
OSEN 기자
발행 2006.04.10 09: 30

지난 5일 KBS 2TV 드라마 '굿바이 솔로'의 주연 배우 7명(8명인가?) 중 한 명을 만날 일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오늘 마지막 16부 원고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잠시 헛갈렸다. 열심히 봐오던 드라마인데도 ‘어 이번 주에 끝나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이날은 '굿바이 솔로' 11부가 방송되는 날이었다. 방영 중반 이후부터는 쪽대본이 난무하다 마지막회를 찍을 즈음에는 방송 시간 직전까지 촬영을 해 거의 ‘생방송’을 하는 일이 당연시되고 있는 것이 한국의 드라마 제작 현실이다.
'굿바이 솔로'의 노희경 작가는 ‘속사수’로 유명하다. 대본을 ‘일찍’ 건네주는 거의 유일한 한국 드라마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도 최종회까지의 초고는 방영 절반도 안 된 지난 7부 방송 시점에 마무리했던 것으로 들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완고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잠시 혼동하게 됐다. ‘빨리 사전제작 풍토가 마련되고 정착돼야 드라마가 상승하는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시간에 쫓겨 허덕이는 한국의 드라마 제작 현실을 무의식 중에 당연시하고 있었던 탓으로 여겨진다.
속사수라는 말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노희경에 있어서는 빠름에 더해 ‘정확하고 완벽하다’는 의미까지 있다. 빨리 써도 인생과 사랑에 대한 남다르고 깊이 있는 통찰을, 한 편의 시라 불러도 손색없는 대사에 담아, 내놓는 작품마다 작품성을 인정 받고 마니아를 양산한다.
노희경의 ‘빠른 손’은 그의 통찰력과 문장력, 그리고 좋은 배우를 알아보는 식견에 못지 않게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요소다. 촬영보다 훨씬 앞서 원고를 전달하기에 배우들이 철저한 준비를 하고 촬영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배우들이 준비마저 철저하면 연기에 있어서는 무엇을 더 바랄까.
5일 이야기를 나눴던 그 배우는 “미리 받아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도 좋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드라마 중반 이후부터 마지막까지 흐름을 파악할 수 있어 연기의 일관성을 좀더 철저히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드라마가 꼭 노희경 작품처럼 심오한 의미를 담을 필요는 없다. 오락적 기능이 강한 드라마도 많아야 한다. 다만 허술하게 만들어져 몰입을 방해하는 드라마는 좀 사라져야 한다. 이런 기대를, 열악한 한국 드라마 제작 현실을 극복할 능력이 있는 한 명의 천재적인 작가에 의존해 충족하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사전제작.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들이 제작비 증가, 편성 불확실 등을 놓고 우는 소리하는 이유는 이해는 되는데 그래도 좀더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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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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