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왕의 남자' 그때 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나<상>
OSEN 기자
발행 2006.04.17 16: 24

연예계 뒷담화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관객 수 1000만 명의 흥행 성공을 넘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는 조선시대에 왕과 광대 사이에 벌어진 희대의 연예비사, 그것도 남성간의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
만일 동성이 아닌 이성이라면야 무치(無恥 :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로 불렸던 왕에게 이건 비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 대상이 평민이었다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중잡배들의 '이 놈도 잡고 저 놈도 잡는 문고리'에 '이 놈도 빨고 저 놈도 빠는 술잔'인데다, '이 놈도 타고 저 놈도 타는 나룻배'였던 광대를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왕이 탐했다는 점에서 연예비화가 될만하다. 게다가 이 영화의 내용은 그저 만들어낸 픽션이 아니다. 물론 많은 각색이 들어갔지만 역사적 사실들에 상당부분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5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역사는 재해석이라고 하지 않는가.
▲자유분방한 대통령과 함량 미달의 정치인들
연산군의 비화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7년에 박종화의 를 각색해 만들어진 은 당대의 섹스심벌이었던 이대근이 연산군으로, 그리고 강수연이 장녹수로 출연한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과거의 우리의 눈과 귀를 먹게 했던 에로영화의 코드를 그대로 가져왔다. 하지만 불과 1년 후인 1988년 임권택 감독이 만들고 유인촌이 연산군으로 출연한 는 보다 연산군 자체의 인간적 측면에 닿아있다. 이 영화에서 연산군은 죽은 폐비 윤씨에 대한 ‘마더콤플렉스’를 가진 인물로 폭군이 될 수밖에 없었던(그의 폭행을 정신착란에 의한 것으로 해석) 면을 강조한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소재의 영화가 이렇게 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역사적으로는 1987년 6.10 민주항쟁에서 6.29 항복선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 속에서 과거의 잔재와 변화하려는 자유에 대한 의지가 공존했던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 같다.
현재에 만들어진 역시 그 시대상을 비껴갈 수는 없다. 영화가 신드롬이 되다보니 그 신드롬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이 영화적 상황을 현실에 빗대 이야기하면서 이런 부분을 조장한 것이 사실이다.
연산군이 공길에게 중신들의 반대에도 종4품의 벼슬을 주었다는 것을 최근의 노무현 대통령이 당 안팎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시민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한 것에 빗대 말하기도 하고, 연산군이 "내가 왕이 맞느냐"고 하는 말을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발언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광대들을 끌어들여 정적을 제거하는 연산군의 모습을 두고, 어떤 정치인은 인터넷을 동원해 여론몰이를 하거나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내는 노 대통령을 닮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위기 때마다 그걸 뒤집는 장생의 언변으로 시골 마을에서 한양으로, 한양에서 궁궐로 가는 장생의 입신 역시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들이다.
물론 의 감독이 이걸 의도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나, 적어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유분방하면서 탄핵까지 받을 정도로 힘이 약한 대통령과, 그렇다고 대통령을 욕할 버젓한 자격이 있는 정치인도 없는 답답한 현실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선시대 개그맨, 정치코미디의 재미
답답한 현실, 이제 그 마이크는 당대의 개그맨이었던, 광대가 잡는다. 장생(감우성 분)은 조선시대 김형곤 같은 정치코미디의 일인자였던 것 같다. 민중들의 애환을 속 시원히 풀어주던 당대의 연예인들, 연희패들은 오늘날의 연예인들보다는 더 자유로울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TV라는 매체는 파급력이 좋은 반면, 통제하기도 쉬운 법이다.
강력한 왕권 하에서도 연희패들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질펀한 농담을 풀어놓는데, 그 내용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과 풍자가 당연했다. 의 도입부에서 줄타기를 하며 나누는 장생과 공길의 대화는 성적인 농담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당대의 연예인들인 광대들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기예를 팔고 몸을 파는 것이 일이었다. 이것은 당대 여사당(女社堂)이 받는 돈을 화대(花代)라고 불렀던 것만 봐도 쉬 알 수 있는 일이다. 자신들의 이런 처지를 웃음으로 돌려 풍자하던 장생은 이제 그 말의 칼날을 정치인들을 향해 든다.
그는 왕이 기생의 치마폭에 둘러싸여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밝히는 건 왕이나 벼슬아치나 평민들이나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왕과 녹수의 애정행각을 빗댄 정치코미디를 시작하고 이건 공공연한 소문을 눈앞의 현실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어느 정치인이 어느 연예인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인터넷 입소문 만큼 빠르게 전파된다. 민중들은 이 놀이판에서 장생과 공길을 통해 왕과 녹수의 비밀스런 침소를 엿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편에 계속)
/대중문화 평론가 mansur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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