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아하는 일을 해도 집중력이 잘 안 생기고 기억에도 좀처럼 각인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양동근의 연기를 보는 것은 행복이다. 무엇인가에 뜨겁게 몰입하고 있는 내 자신을 오랜만에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번 MBC TV 수목미니시리즈 ‘닥터갱’으로 돌아온 양동근을 보고 있노라면 밀레니엄 시대의 연기 지존은 양동근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다.
이미 윤여정 신구 오지명 성지루 등 당대의 연기파 배우들이 극찬한 양동근의 연기력 그 자체만 놓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 시청자들의 특성에 기준하여 판단할 때 그의 연기에는 최고점을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다.
양동근은 사실 전통적인 기준에서 보면 완벽한 배우는 아니다. 일단 결점 중에 외모는 그만 얘기하자(그런데 연기에 푹 빠지다 보니 얼굴마저 잘 생겨 보이기까지 한다. 예전 한석규 신하균 류승범에게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딕션, 즉 대사 전달력이다. 웅얼거리는 양동근의 대사 연기는 다른 배우 같았으면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연기가 대사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사 전달력은 관객 또는 시청자들의 연기에 대한 집중력과 캐릭터에 대한 신뢰와 관계되는 사안이다.
그런데 양동근은 불분명한 대사 전달이 대중들로부터 거의 유일하게 허용되는 배우다. 이런 대사전달 방식이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주는 양동근의 전체적인 연기 스타일과 잘 묻어나기 때문이다. 양동근의 연기는 이미 많은 분석에서 규정지어진 바 있지만 양동근이 그 배역이 되는 식이 아니라 배역을 양동근화해버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양동근이 이 시대의 연기 지존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제 관객과 시청자들은 좋은 연기를 분석적으로 바라 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좋은 연기란 배우가 완벽하게 캐릭터의 인물로 빙의되는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메소드 연기는 이제 너무 흔해져 버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웬만한 배우들은 어느 정도 메소드 방식의 연기를 구사할 수 있게 돼 버렸다. 그러다 보니 원래는 ‘리얼’함을 추구한 메소드 연기가 이제는 ‘잘 하기는 하지만 연기라는 느낌을 받게 만드는 리얼하지 못한 연기’로 다가오는 것이다.
양동근의 연기는 메소드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다. 같은 하늘아래 실제로 살고 있는 양동근이라는 인물을 단지 브라운관과 스크린으로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갖게 만든다. 현재의 대중들은 이런 새로운 방식의 연기에 더 많은 감동을 받게 된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를 오래 보면서 연기에 대한 감식력을 어느 정도 갖춘 관객이 점차 할리우드 영화의 좋은 연기가 주는 감동의 농도가 약해져 가는 즈음에 일반인을 연기자로 내세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보고 큰 감동을 받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유할 수 있다.
양동근의 연기가 메소드 연기처럼 체계화되고 전래되는 하나의 연기 기법으로 자리잡기는 힘들 것 같다. 양동근의 연기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불가해한 동물적인 본능에 의한 연기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양동근이 ‘슬램덩크’의 강백호같다고 비유하면 좀 엉뚱할까. 아무튼 양동근의 연기는 카피가 안 된다. 그래서 그가 지존이다.
P.S. ‘인사이더’를 시작하면서 한 약속을 이번 양동근의 글에서 처음 어겼다. 업계 종사자 입장에서 대상에 밀착한 글을 쓰겠다고 했는데 인간 양동근에 대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을 위해 양동근과 가까운 주변 인물들과 얘기를 나눠 봤다. 하지만 양동근의 일상은 너무도 조용했다. 그래도 그나마 들은 것 한 가지만 소개하겠다. 양동근은 연기할 때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평소에는 너무 말이 없다는 말이다. 주로 듣기만 한다. 그나마 자기가 꽂힌 것은 좀 입을 연다. 최근에는 ‘다빈치 코드’에 대해 그렇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면서도 이 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책 속의 흥미로운 요소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종종 언급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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