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균의 인사이더]엄정화 9집, 올 하반기 가장 기대되는 음반
OSEN 기자
발행 2006.06.09 08: 47

[OSEN=최영균 대중문화 가이드] 2006년 상반기 가요계가 월드컵으로 인해 사실상 서둘러 마무리된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좀 이른 감은 있지만 하반기 발표 음반 중에 기대되는 ‘물건’을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귀가 솔깃해지는 소식을 들었다. 그건 바로 엄정화가 2년 만에 발표하는 9집 음반이다.
하반기 다시 모습을 드러낼 클래지콰이도 바비킴도 윤미래도 큰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특별한 몇 가지 이유로 인해 엄정화의 9집이 이번 하반기 가장 주목해야 될 앨범이라 생각한다.
엄정화가 단지 섹시 댄스 스타의 원조라서, 수많은 히트곡을 낸 인기 가수라서 관심이 쏠린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가장 대중적인 가수의 권좌를 지키다가 지난 음반을 통해 의미 있는 음악적인 변화를 시도했고 그 노력이 이번 앨범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반의 장미’ ‘초대’ ‘몰라’ ‘포이즌’ 등 발표하는 앨범마다 히트곡을 내놓던 엄정화는 2004년 8집 ‘Self Control’이라는 두 장짜리 새 음반을 들고 돌아 왔는데 뭔가 크게 달랐다. 빨간 바탕에, 영화 ‘엑스맨’의 미스티를 연상시키는 파란 얼굴의 엄정화가 그려진 묘한 느낌의 표지도 그렇지만 담겨 있는 음악은 대중들에게 더 묘했다.
두 장의 음반 중 한 장이 한국 대중들에게는 생소한 일렉트로니카였기 때문이다. 음반의 다른 한 장은 이전의 히트곡들과 같은 분위기의 한국형 댄스 음악들이었다. 엄정화는 당시 “앨범 제목이 ‘Self Control’인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음악(Self)과 (대중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해야할 음악(Control)이 함께 들어 있는 음반이라 그런 것”이라 설명했다.
일렉트로니카는 전자음을 위주로 비트를 중시하는 장르로 일정 패턴이 곡 속에서 반복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는 음악이다. 이미 서구에서는 어느 정도 대중적으로 자리잡았지만 한국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던 음악이었다.
엄정화는 일렉트로니카를 자신의 음악으로 만들기 위해 작곡가 겸 뮤지션 정재형을 프로듀서로 앉히고 프랙탈 달파란 등 한국의 정통 일렉트로니카 음악인들을 음반에 참여시켰다. 타이틀곡 활동도 ‘Control’ 파트에 있는 기존 스타일의 댄스 음악이 아니라 ‘Self’ 파트의 ‘Eternity’로 나섰다.
당시 일각에서는 엄정화가 일렉트로니카를 도입한 음반 ‘Ray of Light’와 ‘Music’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바 있는 마돈나를 벤치마킹하지 않았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설령 참고를 했다고 해도 음악적 다양성이 온전히 확보되지는 않은 한국에서는 분명 박수 받을 만한 시도였다.
하지만 엄정화의 패기는 그다지 보상 받지 못했다. ‘Eternity’를 비롯해 음반에 수록된 일렉트로니카 음악들이 정재형과 뮤지션들의 노력으로 상당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대중들은 편하게 받아 들이지 못했다. 당시 음반은 2만 5000장 정도 판매됐는데 이전 엄정화의 음반 판매량과 비교하자면 크게 아쉬운 수준이었다.
그랬던 엄정화가 이번에도 롤러코스터 지누의 프로듀싱 지휘아래 W, 하림 등 대중성은 갖추되 음악성을 위주로 하는 뮤지션들과 함께 새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8집의 만족 못할 결과로 인해 음반제작사에서는 예전처럼 철저히 대중적인 음악을 하자고 강력히 권유했지만 엄정화의 고집을 꺾지는 못한 모양이다.
엄정화가 새롭고 완성도가 높은 음악을 하려는 의지는 대중들에게 잘 안 알려져 있다. 그저 새로 내놓는 음반에 관심을 끌기 위해 독특한 장르를 가져다 쓴다고 색안경을 쓰고 보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대중 음악계에서는 음악성이 있는 뮤지션처럼 보여야 음반이 팔리니까 홍보 자료에 실제로는 아닌데도 외국의 최신 장르를 곡 설명으로 갖다 붙여 놓는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엄정화는 ‘제대로’ 했다.
지난 앨범에 참여한 달파란이나 프랙탈도 “엄정화 씨가 먼저 찾아 왔다. 곡 부탁하려면 기획사 통해서 해도 되는데 직접 찾아 와 먼저 친구가 되고 음악을 이야기 하는 과정을 꽤 오래 거친 후에 음반 작업을 함께 하게 됐다”며 새로운 음악을 하고자 하는 엄정화의 노력을 높이 샀다.
8집 음반이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을 때 ‘그러니까 하던 것 해야 한다’는 반응도 일부 있었지만 많은 업계 관계자들은 ‘음악성과 대중성을 잘 조화시켰는데 그만큼 반응을 얻지 못한 것은 엄정화가 음악성이 아니라 스타성의 가수라는 편견에 대중들이 묶여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에서는 스타 가수가 뮤지션이 되기도, 뮤지션이 대중 스타로 뜨기도 극히 어렵다. 비주얼형 가수가 음악성이 있는 음악까지 할 수 있다면, 뮤지션이 빼어난 입담까지 갖춰 즐겁게 해줄 수 있다면 분명 더 좋은 일인데 대중들은 아직도 이런 면에서 나눠 놓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엄숙주의의 한 단면으로 보인다.
이번 엄정화의 새 음반이 하반기 가장 기대되는 앨범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중 스타에서 출발한 가수가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좋은 음반으로 뮤지션의 역량을 인정 받고 음반 판매도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한다. 그러면 아이돌(혹은 비주얼 가수)과 뮤지션이 분리돼 있는 한국 가요계도 비주얼과 음악성을 모두 갖춘 ‘선진국형’ 스타를 보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연예인들도 기존의 답습에 머물지 않고 완성도 있고 새로운 음악과 퍼포먼스를 시도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우리 대중문화계는 그만큼 더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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