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양의 스포츠카페]‘감독님, 재충전할 시간 좀 주세요’
OSEN 기자
발행 2006.11.08 18: 41

프로야구 선수는 계약서상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는 비활동기간이라는 명목 하에 급여를 받지 않고 있다. 따라서 급여를 지급 받는 2월부터 11월까지는 구단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현재 프로야구 각 구단은 마무리 훈련에 한창이다. 시즌이 종료된 후 성적이 좋지 않았던 팀들을 중심으로 ‘단내 나는 훈련’으로 내년 시즌을 벼르고 있다. 당연히 계약서에 따라 11월 말까지는 구단으로부터 급여를 받기에 훈련에 임해야 하는 것이 프로야구 선수들의 의무다. 하지만 각 구단들은 비활동기간인 12월과 1월에도 선수들의 훈련을 독려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비주전 선수들인 1.5군 및 2군, 그리고 신인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조련하기 위해 비활동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남쪽 지방이나 해외에까지 나가 훈련을 계속한다. 그러나 올해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에서 비활동기간 훈련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할 태세여서 구단과의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벌써부터 일부 구단은 12월은 물론 1월까지 훈련을 강행할 계획표를 짜놓고 있다. 각 구단이 빠르면 1월 중순부터는 해외 전지훈련에 돌입한다. 이에 따라 선수협은 12월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총회를 열고 이 문제에 대해 선수들의 총의를 모을 예정이다. 왜냐하면 일부 선수들과 팬들은 선수협에 ‘구단에서 훈련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는 터에 왜 훈련을 못하게 막느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기 때문에 선수 전체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2001년 경주에서 열렸던 선수협 총회 당시 설문조사에서는 80% 넘는 선수들이 ‘비활동기간 훈련금지’에 대해 찬성했고 10% 정도만이 수용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5년의 세월이 흐른 이번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여기서 선수들의 대의에 따라 선수협도 방침을 정할 예정이다. 지난 7일 선수협 나진균 사무총장은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비활동기간 훈련금지와 관련해 일련의 과정들을 설명하며 고민 중임을 밝혔다. 비활동기간 중 구단의 지시에 의한 훈련은 분명 불법이지만 원하는 선수들도 있는 탓에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솔로몬의 지혜’는 무엇일까. ▲2003년처럼 감독들이 ‘12월 훈련 금지’를 선언하자 선수협 나 총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2003년 시즌이 끝난 후 대전 유성에서 가졌던 8개 구단 감독들과의 모임을 소개했다. 2001년부터 선수협이 비활동기간 중 훈련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자 야구 대선배인 감독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감독들은 이 자리에서 ‘12월 한 달간은 8개 구단 전체가 훈련을 하지 말자’는 결의를 다졌고 이를 선언해 지켰다. 하지만 이 결의는 한 해만 지켜졌을 뿐 다음 해부터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눈 앞의 성적에 급급한 감독들이 12월 훈련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새로 선임된 감독은 첫 해부터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의욕적으로 훈련계획을 짜는가 하면 계약 말년에 들어간 감독도 역시 호성적으로 재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해 급했던 것이다. 선수협에 따르면 감독들은 “타팀은 계속 훈련하는데 우리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비활동기간 훈련금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성적에 목을 맨 감독들이 훈련 현장에 나와서 지켜보고 있으니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훈련에 참가해야 하는 것이다. 감독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무리하는 줄 알면서도 열심히 뛰다가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감독이나 구단이 ‘더 기량을 쌓아야 할 선수’로 분류하는 2군 선수들 사이에서 비활동기간 훈련은 불만이 더 높다고 한다. 1군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시즌 내내 강훈련으로 피로가 쌓인 2군 선수들은 “12월 한 달만이라도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다. 그렇다고 훈련을 아예 손놓고 있지는 못한다. 알아서 훈련하면서 휴식을 취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자율훈련을 하고 싶다”고 항변하고 있다. 일부 코치들도 역시 비활동기간인 12월까지 훈련장에 나와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에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들도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시기에 선수들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코치들은 “어차피 강제 훈련이든 자율 훈련이든 1군 주전감으로 성장할 선수는 따로 있다. 자율적으로 스스로 기량을 갈고 닦는 선수가 결국 승리한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쳐야 하는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선수 스스로가 알아서 훈련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다시 한 번 8개구단 감독들의 의미있는 선언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여진다. 선수협에서도 전지훈련을 떠날 채비를 시작하는 1월 훈련까지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지 않으므로 감독들이 ‘12월 8개구단 전체 훈련금지’를 선언하면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수술 후 재활훈련 중인 선수 등 12월에도 계속 훈련이 꼭 필요한 선수는 예외로 인정하고 있고 최소한 45일만 참아달라는 것이 선수협의 현재 입장이다. ▲우리도 ML처럼 타구단 선수에게 훈련 시설을 개방하자 그렇다면 비활동기간 훈련 계속을 원하는 10%의 선수들은 어떻게 해결할까.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스토브리그때 실시하는 ‘훈련시설 개방’을 고려해 볼 만하다. 메이저리그는 10월 초 정규시즌이 끝나면 선수들 모두가 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타 지역 출신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외국 출신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비자를 재발급 받아 다음 해 스프링 트레이닝(2월 중순) 때 복귀하게 된다. 이렇게 타 지방 출신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 지역의 메이저리그 구단이나 마이너리그 팀의 훈련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이 비시즌 동안에는 타 구단 출신이라도 현지 시설을 이용해 자율훈련을 쌓도록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형편이 넉넉한 빅리그 스타 플레이어들은 개인 트레이너와 인스트럭터를 고용한 뒤 개인훈련시설을 마련해 스토브리그 훈련을 쌓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수들은 고향에 있는 팀들의 훈련시설을 적극 활용하며 다음 시즌 도약을 꿈꾸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이 방안을 적극 도입하면 12월 비활동기간 훈련을 놓고 선수들과 마찰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8개구단이 협약을 맺고 시설을 타 구단 선수에게 12월 한 달간 개방하고 훈련을 지도할 트레이너와 인스트럭터 정도를 지원하면 선수들이 기량 향상을 계속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되게 된다. 프로야구의 중흥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할 시점에 구단과 선수협이 대결을 피하고 ‘선수들의 기량향상’이라는 지상과제를 풀어나가기를 기대해본다. 본사 스포츠취재팀장 sun@osen.co.kr 현대 유니콘스의 플로리다 전지훈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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