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의 영화까기]한국 영화가 망해갈 듯 난리다. 지난해 영화계의 투자 손실이 1000억원을 웃돌 것이란 추정까지 나오고 있다. 때마침 극장가는 3~4월 보릿고개에 허덕이던 참이다. 굶주린 배에 막소주를 들이켜도 이만큼 속이 쓰릴까. 지난해 여름 '괴물'이 1300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축포를 쏘아올렸던 열기는 그 새 간 곳이 없다. 한 영화제작사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영화 찍기가 겁난다"고 했다. 영화쪽 일로 20년을 넘게 먹고 산 사람의 입에서 나온 하소연이다. "한번 오른 배우들 몸값은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영화가 망해도 동전 한닢 덜 챙겨가지 않는다. 주연 배우 두 세명 캐스팅하면, 관객 200만명이 넘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길수 있으니 영화사들이 버틸 재간이 있겠냐"는 설명이다. 현재 특급 배우들의 출연료는 5억원선이다. 일부 특A급 스타들은 출연료 외에도 일정 관객 이상이 들었을 때 러닝 개런티를 추가로 받거나 제작 지분을 나눠갖는 특혜(?)를 누린다. 지난해 제작편수가 110편을 넘어서면서 조연급 출연료도 껑충 뛰었다. 편당 영화 제작비가 50억원대로 급등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제작사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영화 한편을 찍을려면 캐스팅이 가장 중요하다. 돈을 대는 입장에서는 "어느 배우를 출연시키냐"가 가장 큰 관심거리다. 따라서 제작사들은 스타 캐스팅에 목을 맬수밖에 없다. '일단 잡고보자'는 식으로 기획사와 매니저들에게 연락하기 바쁘다. 최근 몇년동안 웬만한 스타들은 쏟아지는 캐스팅 제의 가운데 골라서 출연하는 재미가 있었다. 멜로 영화를 예로 들면 주연 남 녀가 필수다. 10억원이 깨진다. 연기력 받쳐주는 조연 배우들도 최소한 2억원을챙겨간다. 이렇게 저렇게 출연료로만 순식간에 20억원 넘게 쓴다. 또 요즘은 영화 홍보 등의 마케팅 비용이 엄청나게 늘었다.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에 영화를 걸려면 10억원 이상 마케팅 비용은 기본이다. 제작비 50억원 영화라고 해봐야 실제 촬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30%를 넘기 어렵다. 그럼에도 영화계가 흥청망청할수 있었던 배경은 최근 몇년동안 주식시장에서 눈 먼 돈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실미도' '괴물' 등 몇 몇 1000만 관객 영화들의 대박 신화가 마치 보편적인 영화계 흥행 상황인 듯 착시 효과를 냈다. 스타의 이름을 딴 회사를 만든다는 소문 하나로 수백억원 투자가 왔다 갔다할 정도로 거품이 끼였다. 개미 투자자들의 생명같은 돈을 가져다가 스타 한 두명 기용해서는 엉터리 영화 한편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영화의 질과 수익률 저하는 뻔한 결과다. 관객들은 관객들대로 '한국영화가 재미없어졌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한류라는 이름을 걸고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일부 스타들을 보는 시각도 곱지않다. 지금의 한국영화 위기는 영화인들 스스로 자기 손을 묶은 꼴인 게 분명하다. mcgwir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