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포’가 돌아왔다.
‘장포’는 해태 타이거즈 전성기 시절 안방마님으로 군림했던 장채근(43) 포수의 애칭이다.
현역 때 수호지에 나오는 인물 노지심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천진한 노지심’이라는 별칭으로도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장채근 코치가 최근 1년 남짓한 야인생활을 접고 친정인 KIA 타이거즈 코치로 복귀했다.
2005년 시즌 후 몸담고 있던 KIA 코치직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갔던 장 코치는 2006년 2월 중순께부터 8월말까지 6개월 가량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 이글스에서 지도자 수업을 쌓았다.
1995시즌을 끝으로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은퇴, 이듬해 해태 타이거즈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장 코치로서는 처음으로 가졌던 해외연수였다. 포수 출신인 장 코치가 일본 야구 역사상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노무라 가쓰야 감독의 야구를 옆에서 지켜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노무라(72) 감독은 1954년 난카이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연습생으로 입단, 피나는 노력으로 1961년부터 8년 연속 홈런왕, 5년 연속 타점왕(1962년부터), 1965년 일본프로야구 양대리그 분리 후 첫 타격 3관왕 등을 차지하는 등 포수로서 투수 리드의 새 경지를 개척한 주인공이었다.
노무라 감독은 지도자로서도 성공을 거뒀다. 1990년부터 9년간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지휘하면서 일본시리즈 우승 3회, 리그 우승 4회의 성적을 남겼다. 야쿠르트 시절 명포수 후루타(현 야쿠르트 감독)를 길러냈고 남들이 포기한 선수들을 발굴, ‘노무라 재생공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장 코치는 라쿠텐에서 3개월간 2군에서 머물다 그 후 3개월간은 1군에 올라가 노무라 감독의 지도 모습을 직접 보고 배웠다. 그 배움을 바탕삼아 장 코치는 이제 ‘명가’부활을 꿈꾸고 있는 KIA 타이거즈 우승에 밑거름이 되겠노라고 다짐하고 있다.
4월1일부터 KIA 육성군에서 선수들을 가르칠 예정인 장 코치는 “노무라 감독 밑에서 많은 걸 배웠다. 연수 도중 김성근 SK 감독(당시 롯데마린스 코치)을 만나 ‘좋은 공부한다. 많이 배워라’는 격려도 들었다”면서 “서정환 감독을 열심히 도와서 KIA가 우승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말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선수생활을 했던 장 코치는 재야에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탓인지 한결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장 코치는 “일본에서 혼자 연수를 하면서 한국에서 못느낀 것을 많이 깨달았다. 인생공부 많이 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장 코치는 현역 때 100㎏에 육박하는 우람한 몸매를 자랑했다. 쉬는 동안 120㎏까지 불어난 몸무게를 최근 107㎏으로 줄이는 등 현장 복귀에 따른 몸과 마음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에게는 아주 명예스런 기록이 따라다닌다. 프로야구 25년사에서 포수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수상의 영예가 바로 그것이다. 1991년 해태 타이거즈가 빙그레 이글스를 4승무패로 일축할 당시 그는 선동렬(현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배터리를 이뤄 해태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장 코치가 명가 재건에 앞장서 KIA 우승을 일궈내는 밑거름 노릇을 해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맨 위)KIA 코치로 복귀한 장채근(KIA 타이거즈 제공), (아래 상)1991년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 이글스에 4연승을 거두고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장채근 포수가 선동렬과 기쁨의 포옹을 나누는 모습. (아래 하)1991년 장채근 포수가 동료 선수들의 우승 축하 샴페인 세례를 받고 있다 (이상 한국야구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