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선동렬vs선동열, 김응룡vs김응용, 유현진vs류현진
OSEN 기자
발행 2007.04.20 09: 47

1997년 한국담배인삼공사에서 ‘겟투(GET2)’라는 담배를 시판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 이름이 야구용어와 같다고 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수비팀이 연결된 동작으로 두 명의 공격팀 선수를 한꺼번에 아웃처리하는 것’을 ‘겟투’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이 말은 본토박이 야구용어가 아니다. 말 만드는 데 귀신인 일본인들이 영어를 비틀어서 작명한 것이다. ‘더블 플레이(double play)’가 정확한 표현이다.
작금 왜말의 침투와 그에 따른 우리글의 오염은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왜말이 판치고 있으며 분별없이 마구 쓰여지고 있다. 그 가운데 입장(立場)과 역할(役割)은 신문기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왜색어이다.
이 용어들은 1957년 한글학회가 펴낸 이나 (1958년 을유문화사)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1961년 민중서관)에 버젓이 실린 이후 모든 국어사전에서 계속 등장해 우리 글을 짓누르고 있다.
운동판에서 가장 빈번히 쓰고 있는 일본어는 경기(게임)를 뜻하는 ‘시합(試合=しあい)’이다. 이 말은 일선 지도자나 선수 가릴 것 없이 입에 달고 다닌다. 일부 신문과 방송에서는 아직도 이 표현을 못버리고 있다. 야구판에서 횡행하는 일본식 용어는 수두룩하다. 일제 야구용어 가운데 압권은 ‘고로(ゴロ)’다. 땅볼을 뜻하는 ‘그라운더(grounder)’에서 따온 이 말은 일본인들의 탁월한(?) 조어 실력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일본인들은 저들의 이름조차 발음부호(후리가나)를 달아서 부를정도니 일러 무엇하리오. ‘생(生)’자만 하더라도 발음이 무려 10가지나 된다. 두 손발 다 들었다. 남의 나라를 탓할 것도 없다.
우리네 야구판에는 사람의 이름을 두 가지로 표기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선동렬-선동열, 김응룡-김응용, 유현진-류현진 따위이다. 신문마다 표기 방법이 달라서 너무 헷갈리는 이름들이다. 우리 글에 분명히 맞춤법이 있건만, 지키는 쪽이 오히려 어색하게 보인다.
맞춤법으로는 물론 선동렬, 김응룡, 유현진이 맞다.
한글맞춤법 통일안 제 5절 두음법칙 제11항에 보면, “한자음 ‘랴, 려, 례, 료, 류, 리’가 단어의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법칙에 따라 ‘야, 여, 예, 요, 유, 이’로 적는다”고 돼 있다. 같은 항의 [붙임1]에는 “단어의 첫머리 이외의 경우에는 본음대로 적는다. 다만, 모음이나 ‘ㄴ’받침 뒤에 이어지는 ‘렬, 률’은 ‘열, 율’로 적는다”고 명시해 놓았다.
따라서 일부 매체가 선동열, 김응용, 류현진으로 표기하는 것은 틀린 표현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바로 당사자의, 또는 특정 성씨 문중의 주장이다.
선동렬의 경우 주민등록상에 선동열로 돼 있다. 선동렬 삼성 라이온즈 감독은 이와 관련, 예전부터 맞춤법으로는 선동렬이 맞지만, 어느 표기라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는 선동열로 등록이 돼 있지만, KBO가 출간한 간행물에는 선동렬과 선동열로 마구 뒤섞여 있다.
김응룡 삼성 라이온즈 사장의 경우는 당사자가 일관되게 김응룡으로 표기하고 있고, 싸인도 ‘김응룡’으로 하고 있다. 웃지못할 일화 한토막. 2005년 모 출판사에서 일선기자들의 취재담을 엮은 는 책을 펴낸 적이 있는데, 그 책의 표지와 앞머리에 김 사장 자신이 ‘김응룡’이라고 서명해 놓았지만 정작 책 제목과 본문에는 ‘김응용’으로 표기됐다.
필자 중의 한 기자에게 그 사실관계를 물어본 결과 출판사에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네 출판사가 한글 맞춤법도 무시하고 책을 출판한 본보기가 될 듯하다.
유현진(한화 이글스)의 경우가 좀 까탈스럽다. 한화 구단은 2006년 7월 각종 매체가 유현진의 이름 표기를 ‘유현진과 류현진’으로 혼용하자 ‘류현진’으로 통일해달라는 자못 이색적인 보도자료를 냈다. KBO와 한화 구단에 등록된 이름은 류현진이다. 그러나 다수의 매체가 성씨에 두음법칙을 적용, 유현진으로 표기하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아직도 그의 이름은 혼용되고 있다.
유현진이 류현진으로 표기를 주장하는 것은 법원의 판결도 한몫 거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6월12일 대전지법 민사부는 성의 한글표기를 ‘유’에서 ‘류’로 해달라는 柳모(81)씨의 호적정정 신청을 기각한 원심을 깨고 호적정정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성의 한글표기에서 두음법칙을 강제하는 대법원 호적예규는 개인의 관행과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아 헌법이 보장한 인격권을 침해해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에 따라 대법원도 “예규가 무효라는 판결이 나온만큼 예규의 타당성을 다시 검토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대법원은 2004년 11월9일 30년간 성씨를 ‘류’로 사용해온 사람이 재발급 받은 여권의 성이 ‘유’씨로 바뀌자 대법원 홈페이지에 그 법적 타당성을 질의한 데 대해 “대법원 호적예규에 따라 한글표기는 ‘유’가 맞다고 답변했다. 호적예규는 호적에 한자로 된 성을 한글로 기재할 때 한글맞춤법에 따라 표기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름 하나에도 통일된 표기 원칙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판이다. 하물며 하느님에 이르러서야 두 말할 나위조차 없다. 같은 신을 두고 우리나라 가톨릭은 ‘하느님’, 개신교는 ‘하나님’으로 다르게 부른다. 한국일보 논설위원 출신인 고종석 씨는 ‘하느님과 하나님, 기독교와 개신교’라는 글에서 “옳은 말은 하느님이다. 개신교가 하나님을 고집하며 내세우는 가장 큰 논거는 유일신, 곧 하나밖에 없는 신이어서 우리 말의 수사 ‘하나’에 존칭접미사 ‘님’을 덧붙여 이 유일신을 지칭하게 됐다. 하나 ·둘·셋같은 수사가 존칭접미사 ‘님’과 어울리는 것은 아주 부자연스럽다. 마땅히 하느님이 되셔야할 분이 하나님이 된 것은, 우리말 모음 체계에서 ‘아래아(.)’가 불안정해지며 빚어진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름표기는 맞춤법이 우선인가, 아니면 당사자의 주장과 인권이 우선일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홍윤표 OSEN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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