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이숭용이 쏘아올린 4할 타율의 꿈
OSEN 기자
발행 2007.05.04 10: 33

‘4할 타율’은 한낱 꿈에 지나지않는 것일까. 프로야구 무대에서 숱한 타자들이 그 꿈에 도전했지만 성사시킨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일반적으로 ‘3할 타율만 기록해도 훌륭한 타자 ’라고 평가받는 것을 감안한다면 4할대 타율은 그야말로 꿈의 기록이다.
재일동포 장훈은 일찍이 4할 타율을 일러 ‘꿈 너머 꿈’이라고 한탄한 바 있다. 1967년부터 3년 연속 퍼시픽리그 수위타자에 올랐던 그는 1970년에 전인미답의 4할 타율에 도전했다가 좌절, 3할8푼3리에 그치자 그 같은 말을 남겼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4할 타율을 기록한 타자가 없다.
양 리그제가 정착된 1901년 이래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4할 타율은 8명이 모두 13차례 기록했다. 그 마지막 주자였던 ‘20세기 마지막 4할 타자(1941년. 4할6리)’ 테드 윌리엄스가 지난 2002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기록도 역사에 묻혔다.
기록은 세우기 위해 있고 깨는 데 그 의미가 더해진다. 국내 프로야구 무대에서도 해마다 시즌에 들어가면 ‘4할 타자’의 출현에 관심을 갖게 되지만 30게임 남짓 지나면 이미 3할대 타율로 미끄러져 시야에서 벗어나곤 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백인천 전 LG 감독이 일본무대에서 귀환, MBC 청룡 유니폼을 입고 68게임에 출장해 유일무이하게 4할 타율(.412)을 달성했으나 당시 팀당 경기수가 80게임에 불과, 비교 가치가 떨어진다. 1994년엔 이종범(당시 해태)이 102게임(8월21일)까지 4할 타율에 머물러 주위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으나 끝내 기록 작성에는 실패했다.
올해는 5월3일 현재 현대 유니콘스의 이숭용(36)이 23게임에 나가 4할7리의 고타율로 리딩히터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작년에는 팀 후배인 이택근(27)이 시즌 초반 29게임에서 4할2푼2리(102타수 43안타)의 고타율을 기록한 적이 있지만, 올해 그 자리를 이숭용이 대물림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숭용은 최근 6경기 타율 4할3푼5리, 4월19일 두산전 이후 13게임 연속안타를 기록하며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 이숭용의 고공행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4할 타율은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아직은 ‘멀고 험한 길’이 가로놓여 있어 전도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이숭용의 ‘환골탈태’는 어려운 팀 사정 속에서 일궈낸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23게임을 치르는 동안 이숭용이 안타를 때려내지못한 것은 4게임에 불과하고, 3안타 게임 3번을 포함 모두 11차례나 멀티히트를 기록하리만치 타격감이 좋다.
이숭용은 그 동안 ‘4월의 사나이’라는 달갑지 않은 소리를 들어왔다. 2006시즌에도 그는 4월에 홈런 5방을 날리며 붙타올랐다가 뒤가 흐지부지 돼버렸다. 손에 쥔 마지막 성적표는 타율 2할8푼6리, 7홈런. 올해는 그 양상이 정반대다. 홈런은 단 한개도 없는 대신 안타를 양상해내고 있다. 5월 들어서도 14타수 5안타로 방망이가 주눅들지 않았다.
까닭이 있다. 배트를 바꾸고, 타격 자세를 수정한 것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이숭용은 “다행히 팀이 제모습을 찾아가는 모습으로 4월을 마감해서 좋다. 팀은 저만큼 있는데 나혼자 타격 1위를 했다면 지금처럼 마음이 놓이진 않았을 것 같다”며 주장답게 언급했다.
그의 4할 타율에 대한 생각은 무엇일까.
이숭용은 “4할은 모든타자들이 생각하는 타율이 아니다. 모든 타자들은 3할을 꿈꿀 것이다. 사실 3할보다도 2할 몇푼을 꿈꾸며 시즌을 준비할 것이다. 이렇기에 4할이란 타율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도 없다. 지금 4할의 내 타율보다는 4할타율이 나오게 된 내 상황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이 기억이야 말로 내 타격이 안될 때 훌륭한 선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4할 타율이 나오게 된 상황의 기억,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그는 작년 시즌을 마치고 고민 끝에 타격폼에 수정을 가했다. 이명수 타격코치와 많은 의논을 거친 다음 정교함에 비중을 두고 몸전체의 균형을 잡는데 주안점을 뒀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상체를 좀더 세웠고, 중심이 되는 왼쪽다리(뒷다리)를 타석에서 좀더 빼고 타격에 임하는 폼이다. 정확한 타격을 위한 교정이었다. 배트도 D-배트로 바꿨다. 이숭용은 “그간 스폰서해준 MAX사에서 항의까지 해 왔다. MAX사장님께는 일단 잘 되고 있으니 변화가 필요할 때 최우선적으로 MAX제품을 이용하겠다고 했다”면서 웃었다.
현대는 팀 매각설에 뒤숭숭하다. 주장 완장을 찬 이숭용도 “현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서는 마지막 해가 되리라는 게 전체적인 분위기다. 현대라는 팀을 만나 나는 이 자리에까지 왔다. 그렇기에 올해는 개인적으로나 팀의 주장으로 많은 생각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착잡한 심경의 한자락을 풀어놓았다.
이숭용은 고질적인 허리통증을 안고 산다. 하지만 꾸준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다. 그의 다짐은 이렇다.
“전경기 출장하고 싶다. 고질적인 허리통증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다른 부상을 방지하면서 전경기에 뛰고 싶다. 주장이기에 더욱 그럴 수 있지만, 올 시즌이 현대 유니폼의 마지막 시즌일 것 같아 더더욱 전경기 출장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의 야구인생의 최종목표는 2000경기 출장과 2000안타 달성(3일 현재 1494경기, 1346안타)을 위해 41살까지 뛰는 것이다. 그의 식구들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이숭용은“작년에 태어난 아들을 보며 하루하루 반성하며 산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야구에까지 아들(승빈, 2006년 8월11일생)을 보면서 많은걸 느낀다. 아들이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몇 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아들이 생긴 것은 내 인생에 전환점이라 생각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제 5월이 열렸고, 현대도 상위권 도약의 기로에 섰다. 분기점이 될 수도 있는 지점에서 이숭용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요즘 (김)일경이를 보면서 우리 팀 모든 선수들이 저런식으로 플레이 한다면 하는 생각을 한다. 11년차의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투지에 존경심마저 든다”고. 나른한 봄날에 투지를 부르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작년 시즌에 1군에서 단 한게임도 뛰지 못했던 김일경은 2루수로 선수는 수비에 나설 때나 수비를 끝내고 덕아웃으로 들어올 때 전력질주를 한다. 김일경은 팀내에서 이숭용 버금가는 타율(. 351)을 기록하고 있다.
요즘 김시진 현대 감독과 이숭용은 “방망이에 대기만 하면 안타가 나온다”고 흥겨운 목소리로 합창한다. 그만큼 이숭용의 타격감이 좋다는 얘기이다. 이숭용은 올해 계약기간 3년에 계약금 1억 5000만 원, 연봉 3억5000만 원 등 총액 12억 원에 현대 구단과 ‘FA급 다년계약’을 맺었다. 이숭용은 2003시즌 종료 후에도 계약기간 3년(2004~2006), 총액 17억 5000만 원(계약금 10억 원, 연봉 2억 5000만 원)에 FA계약을 맺은 바 있다. ‘성골 현대맨’대접을 받고 있는 그가 올해 더욱 분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숭용이 과연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25년만의 4할 타자로 탄생할 수 있을 지, 참고 기다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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