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지금은 가야할 때, (이하 생략) -이형기의 시 1997년 4월29일, 잠실구장. LG와 OB의 야간 경기가 끝난 직후, 3만500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프로야구 초창기 최고의 스타 박철순(51)의 은퇴식이 열리고 있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전무후무한 22연승 신화의 주인공으로 부상과 재기를 반복하며 ‘불사조’의 별칭으로 야구팬의 굄을 아낌없이 받았던 박철순. 프랭크 시나트러의 ‘My Way’가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은퇴식이 진행되는 동안 박철순은 마운드에서 꽃다발을 목에 걸고 간간이 눈물을 훔치다가 마침내 그라운드에 작별의 입맞춤을 하는 순간, 기어코 참았던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영욕이 점철된 17년, 뇌리 속에서 만감이 교차하고 있던 박철순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허공을 응시하며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윽고 박철순은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는 팬에게 “이제 저는 마운드를 떠나가지만, 언제나 여러 분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팬 여러 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긴 아듀를 고했다. 그의 등번호 21번은 영구결번됐고, 이제 그 모습을 우리는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다. 박철순의 은퇴장면은 아직도 감동과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일세를 풍미했던 프로야구 스타들의 아름다운 퇴장은 언제나 감동을 자아낸다. 시즌이 중반전에 접어들고 있는 이즈음, 프로야구판에 때 아닌 ‘은퇴론’이 떠돌고 있다. 그 풍설의 중심부에 정민태((37. 현대 유니콘스)를 비롯 이종범(37. KIA 타이거즈), 마해영(37. LG 트윈스) 등 한 때 그라운드를 휘어잡았던 1970년생 동기들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현대 김시진 감독은 2군에 머물러 있는 정민태의 거취와 관련, “민태는 현대의 4번 우승의 중심에 있었고 그 가운데 3번 우승은 직접 이뤄낸 것이나 다름없다”고 업적을 칭찬하면서 “명예로울 때 은퇴하는 게 좋다”고 언급했다. 강병철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2008베이징올림픽 아시아예선전 한국대표팀 예비명단에 든 이종범을 두고 사견임을 내세워 “슈퍼스타에 대한 예우를 해줘야하지 않을까. 또다시 대표로 발탁하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부담지우는 것”이라며 “이제 이종범은 팀에서 자기자리를 명예롭게 정리해갈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선수들의 은퇴는 아주 민감한 사안이다. 대개 선수 자신은 가급적이면 선수생활 연장을 바라는 반면 구단측은 세대교체 등의 이유로 은연중에 등을 떠미는 것이 현실이다. 그 과정에서 선수와 구단의 견해가 정면충돌, 불필요한 잡음을 낳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선수로서야 경제적인 문제까지 겹쳐 최대한 그라운드에 오래서고 싶어하지만 새 피를 수혈, 체질개선을 해야하는 구단측으로선 반드시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프랜차이즈 스타를 함부로 내칠 수는 없는 법이다. 팀에 대한 공로를 따져 충분한 예우를 해줘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퇴의 시점을 잡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선수자신도 그렇고, 소속 구단도 그렇다. 은퇴의 시기는 1차적으로 그 선수의 성적이 말해준다. 어느 순간, 정점에서 내리막길을 걸으며 흐지부지 성적표가 초라해진다면, 은퇴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물론, 대반전의 기회를 잡는 선수들도 숱하다. ‘용도폐기’ 됐다가 다른 구단으로 이적, 여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한 김동수(39. 현대 유니콘스) 같은 경우도 있다. 5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불혹의 나이를 뛰어 넘어 부산 사직구장에서 최고령 세이브기록(40세 4개월 18일)을 세운 송진우나 구대성(38), 조성민(34. 이상 한화 이글스), 노장으로 팀 타선을 이끌고 있는 안경현(37. 두산 베어스), 올 시즌 마치 회춘이라도 한듯 홈런 방망이를 재가동한 양준혁(38. 삼성 라이온즈) 등 귀감이 될 선수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들도 야금야금 다가오고 있는 은퇴라는 피할 수 없는 길에 조만간 서게 된다. 불가피한 선택의 순간을 잘 잡는 것. 그것은 ‘제 2의 인생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꾸려갈 것인가’하는 문제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천하의 박철순조차도 은퇴와 번복, 선수생활 연장을 수 차례 되풀이 했다. 하물며 다른 선수들이야 일러 무엇하리오. 은퇴의 본보기는 선동렬(45)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었다. 선동렬은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를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끈 후 1999년 11월22일 과감하게 은퇴를 선언했다. 한 때는 선수생활 연장을 위해 메이저리그 진출도 고려했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명예로운 은퇴’였다. 선동렬은 당시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정상에서 있을 때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비록 일본시리즈에서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신)에 패했지만 팀이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한 보람 있는 1년이었다. 이것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는 것이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결심의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이상훈(36)같은 전격 은퇴 사례도 있다. 일본과 미국 메이저리그 무대를 거친 뒤 2002년 국내무대에 복귀했던 이상훈은 2004년 초 LG 트윈스에서 SK 와이번스로 이적했으나 시즌 도중인 6월2일 “이대로는 팀에 도움이 안된다. 모두가 잘 해줬지만 내가 너무 못해 스트레스가 심했다. 이런 식으로 야구를 지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선언, 유니폼을 벗었다. 11년간의 굵고 짧은 야구인생을 미련없이 훌훌 털어버린 이상훈은 ‘야생마’라는 별명답게 그 후 록커로 변신, 야구와 동떨어진 길을 걷고 있다. 삶은 매순간마다 선택을 요구한다. 용두사미가 되기는 쉬워도 유종의 미를 거두기는 어려운 것이 우리네 한살이이기도 하다. 현명한 선택, 몇몇 스타급 선수들이 안고 있는 깊은 고민거리이다. 홍윤표 OSEN 대기자 1997년 4월29일, 잠실구장에서 ‘불사조’박철순이 은퇴식이 진행되는 동안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마운드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