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라난 40대 이상의 중년 남성이라면 어렸을 적에 오줌을 싸서 키를 둘러쓰고 남의 집에 소금을 얻으러 가는 풍경이 기억날 것입니다. ‘부정타지 말라’고 아낙네들이 대문간에 소금을 뿌리는 모습도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그리 보기 힘든 광경은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소금은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여러모로 널리 쓰였습니다.
일본 전통씨름인 스모 선수들은 대결을 하기 전 경기장(도효) 안에 소금을 뿌립니다. 스모의 소금 뿌리기는 1700년대 초반부터 시작, 이제는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잡고 관중들에게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네들의 소금 뿌리기는 ‘도효의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청결을 유지하는 한편 선수들의 부상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씨름도 한 때 스모를 본따 모래판에 소금을 뿌린 적이 있었으나 ‘왜색(倭色)’이라는 비판 여론에 그만두었습니다. 씨름은 경기장에 모래판을 설치할 때 일정 비율로 소금을 섞어넣습니다.
이같은 소금이 프로야구장에서도 요긴하게 쓰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최근 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KIA 타이거즈가 지난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부산 사직구장 경기에 앞서 덕아웃에 소금을 흩뿌려 놓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렇게해서라도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추스리고 ‘연패 귀신’을 몰아내려는 눈물겨운 몸부림쯤으로 이해를 해야할까요.
KIA 구단의 소금 뿌리기는 이제‘연례행사’처럼 돼버렸으니 딱한 노릇입니다. 올 시즌 모처럼 야구붐이 되살아나고 있는 마당에 유독 KIA 구단만은 ‘명가의 후예’ 답지 않게 성적이 미끄럼을 타 주위를 안타깝게하고 있습니다.
KIA의 소금 뿌리기는 이번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출입구에 집중적으로 뿌리는 행태까지 다른 구단에 알려져 있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물론 다른 구단들도 연패에 빠지거나 특정 팀에 맥을 추지못할 때 간혹 소금의 힘을 빌려 흐름을 반전시켜보려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우리 프로야구판 뿐만 아닙니다.
일본의 최고 명문구단으로 자처하고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2006년 5월29일 팀이 8연패에 빠지자 급기야 경기 전에 소금 뿌리기 의식을 가졌지만 별무신통,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또 져서 9연패를 한 적도 있습니다. 요미우리는 그날 경기 전 구단 관계자가 감독, 코치실 앞에 소금을 놓고 트레이닝 코치가 선수들마다 소금을 뿌렸다고 하는데 영 효과를 보지 못한 모양입니다.
소금 뿌리기 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김영덕 전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 전신) 감독은 1993년 초반 팀이 10연패에 빠지자 삭발까지 단행하며 팀 분위기 반전을 꾀했습니다. 그러나 계약 마지막 해의 레임덕 현상까지 일어나 시즌 중반에 접어들기 전인 6월 17일 사의를 표명하는 등 악전고투한 전례도 있습니다. 결국 김영덕 감독은 그 해 5위로 시즌을 마친 뒤 빙그레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KIA 얘기를 좀더 해볼까요. KIA는 작년 9월19일 현대 유니콘스와의 수원경기에 앞서 덕 아웃 여기저기에 굵은 소금을 뿌려놓았습니다. KIA 관계자들은 느닷없는 소금의 정체에 대해 “모르겠다”고 시치미를 뗐으나 누구의 소행인 지는 다 알고 있었지요. 당시 KIA는 현대에 4승11패로 절대 열세를 보이고 있어서 액막이를 위해 소금을 사용한 것입니다.
KIA 윤기두 홍보팀장은 “매년 연패를 하는 등 안좋을 때나 특정 팀에 약한 면모를 보일 때 소금을 뿌립니다”고 실토하더군요.
KIA는 비단 소금뿐만 아니라 시즌 도중에 이례적으로 고사를 지내 큰 효험을 본 적도 있습니다.
2003년 7월19일, 광주 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전와의 토요일 낮경기를 앞두고 KIA는 이례적으로 고사를 지냈습니다. 시즌 전 고사야 대부분의 구단들이 으레 치르는 행사지만 시즌 도중 고사는 보기 힘든 일입니다. KIA는 그 덕분인지 전반기 5위에서 치고 올라가기 시작, 후반기에 42승3무17패(승률 .712)라는, 눈을 씻고 다시봐야할 호성적을 거두었고 결국 정규리그 2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KIA의 운은 거기까지였는지 SK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내리 3연패하고 말았지요.
윤기두 홍보팀장은 “부상선수도 많고 방망이도 하도 안맞아 고사를 지내게 됐는데, 5회초까지 2-4로 지고 있다가 5회 말에 5점을 뽑아 전세를 뒤집어 6-4로 앞선 다음 느닷없이 일기예보에도 없던 소나기가 마른 하늘에서 쏟아져 경기가 중단됐고 결국 6회 강우콜드게임으로 이긴 기억이 납니다”고 고사를 지냈던 날을 돌아봤습니다.
소금 뿌리기는 2005년에 SK도 한 적이 있습니다. 만루찬스 때마다 어이없이 득점기회를 날리자 SK는 그 해 5월25일 삼성 라이온즈전을 앞두고 문학구장 곳곳에 소금을 잔뜩 뿌려놓았습니다. 전날인 24일 삼성전에서 3차례의 만루기회를 모두 놓쳤던 SK는 양승관 코치가 구장으로 오는 길에 소금을 사서 삼성측 덕아웃을 뺀 여기저기에 소금을 뿌린 것입니다만, 별 효과를 보지못하고 그날도 1회 1사만루에서 박재홍이 병살타를 치는 등 경기가 안풀려 결국 3연패했습니다.
사실 이같은 소금 뿌리기는 상대구단에 상당한 불쾌감을 안겨줍니다. 대개는 알고도 모른 체 넘어가주지만, 짜증스런 반응을 보이는 구단도 있습니다. 때로는 동병상련의 처지가 돼 ‘액땜’풀이로 이해를 하면서도 졸지에‘부정을 타는 구단’으로 인식되는 점 때문에 결코 유쾌할 리 없겠지요.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그 심정, 야구단 관계자가 아니면 누가 알 수 있을까요.
홍윤표 OSEN 대기자
2005년 5월25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앞서 SK 와이번스가 연패를 끊기 위해 덕아웃에 소금을 뿌려놓은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