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맛은 홈런포가 터지고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공격야구가 짜릿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박빙의 투수전도 오랫동안 머리에 남습니다.
더군다나 양팀의 투수가 완투를 하며 타자들을 삼진이나 범타로 처리하고 수비수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 멋진 플레이로 장단을 맞추는 모습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지난 6월 16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두산의 리오스(35)와 SK의 레이번(33)이 맞대결을 펼친 완투 대결은 1년에 한두 번 밖에 볼 수 없는 명투수전이었습니다.
결과는 리오스가 2피안타 2볼넷 7탈삼진을 기록하며 1-0으로 완봉승을 따내 올 시즌 9승3패, 평균자책점 1.74를 마크하고 다승(9승5패)과 평균자책점(1.74) 두 부문에서 선두로 뛰어 올랐습니다.
리오스는 4회말 1사 2루에서 정근우에게 큰 타구를 맞았으나 좌익수 김현수가 펜스에 부딪히며 점프캐치를 하고 2루로 송구해 안타인 줄 알고 뛰던 2루주자 김강민마저 아웃시켜 실점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반면에 레이번은 3피안타 2볼넷 11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2회초 2사 2루에서 SK에서 두 달 전 이적한 이대수에게 적시타 한 방을 맞아 ‘문학 불패(7승)’ 기록이 깨지면서 올 시즌 2패째(7승)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리오스는 부친상을 당해 미국에 갔다가 22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15일 돌아오자마자 “여행 시차를 빨리 떨쳐버리기 위해 바로 출장하는 게 나을 것 같다”면서 다음 날 등판을 자청하고 9회에도 시속 152km의 강속구를 던지는 등 최고의 피칭을 보여 그의 괴력이 또 한 번 놀랍습니다.
그리고 8회에 SK 세 타자를 상대해 3구 삼진을 잇따라 기록해 9구만에 삼진 3개로 한 이닝을 끝낸 기록은 26년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진기록이어서 화제를 증폭 시켰습니다.
두 선수가 한국선수가 아니어서 약간은 섭섭하지만 이들이 9이닝을 책임지며 역투한 것은 근래 완투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 야구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지난해 정규시즌 504경기서 완투한 투수는 32번 나왔습니다. SK에서는 한 명도 없었고 삼성은 브라운 혼자만 1차례 완투를 기록했으며 두산이 7차례 완투경기를 펼쳐 가장 많은 횟수를 기록했습니다.
우리 야구에서 한 쪽이라도 완투 투수를 볼 수 있는 비율이 지난해의 경우 6%인데 비해 미국 메이저리그는 우리보다 훨씬 떨어지는 3%입니다.
30년 전에는 선발투수의 완투 비율이 27%였으나 투수 분업화가 되는 바람에 메이저리그 정규시즌서 완투 투수 한 명이라도 볼 확률은 3% 밖에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메이저리그의 선발투수는 평균적으로 6이닝도 던지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완투 대결을 볼 기회는 더군다나 드뭅니다.
완투 맞대결이 우리는 올해 리오스-레이번의 6월 16일 경기 한 게임뿐이고 지난해는 두 차례 밖에 없었습니다. 작년 5월 10일 두산(리오스) 1-0 롯데(손민한)전, 8월 11일 LG 신재웅 6-0 한화(안영명)전이었습니다.
완투 맞대결의 백미라면 단연 롯데 최동원(현재 49세)과 해태 선동렬(현재 44세)의 20년 전 경기를 최고의 명승부로 꼽을 것입니다.
아마 시절부터 명성을 쌓은 두 투수는 프로에는 최동원이 1983년에, 선동렬은 1985년에 입단해 여름부터 경기에 출장했습니다. 최동원은 폭포수와 같은 드롭커브와 제구력, 배짱 투구가 일품이었고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괴력의 4승을 거두었습니다.
선동렬은 최고의 강속구와 예리한 슬라이더로 모든 타자가 두려워했는데 둘의 맞대결은 두 투수가 함께 뛴 첫 해는 이루어지지 않다가 선동렬이 시즌 MVP와 한국시리즈 타이틀을 차지한 해인 1986년에 성사됐습니다.
선동렬과 최동원은 3차례 선발 맞대결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선발 대결은 아니지만 사실상 맞대결 성격이 짙어 4차례 맞붙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첫 맞대결은 1986년 4월 19일 사직구장에서 이뤄졌습니다.
최동원은 몸이 늦게 풀리는 스타일이었는데 3회 송일섭에게 솔로홈런을 내주고 이후에는 단 1안타만으로 막았습니다.
그러나 선동렬은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선동렬의 1-0 완봉승. 데뷔 2년째를 맞은 선동렬의 첫 완봉승이었고 프로에서 기록한 29완봉승의 시작이었습니다. 데뷔 32게임 만이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세기의 대결’로 표현했는데 투구 내용은 너무 비슷했습니다. 피안타는 최동원이 5개, 선동렬이 6개. 사사구는 최동원이 2개, 선동렬이 1개, 투구수는 최동원이 118구, 선동렬이 121구였습니다. 삼진은 5개씩 밖에 잡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완투 대결은 4개월 뒤인 8월 19일 사직에서 벌어져 최동원이 2-0으로 승리해 개인통산 10번째 완봉승을 따냈습니다.
그 경기에서 최동원은 1~6회까지 매회 주자를 내보내며 위기를 맞았으나 노련미를 발휘해 실점을 안했습니다.
반면 그 어느 때보다도 힘이 넘쳤던 선동렬은 1회 첫 타자 정학수를 몸에 맞는 볼로 내보낸 게 화근이었습니다. 조성옥의 보내기 번트, 홍문종의 내야안타로 1사1, 3루. 홍문종의 2루 도루 때 포수 김무종의 송구를 2루수 차영화가 뒤로 빠뜨리며 1점을 내주고 김용철에게 우전안타를 허용, 순식간에 2점을 빼앗겼습니다. 모두 비자책.
그리고 1987년 4월 12일, 또다시 사직 경기. 선동렬이 1회 1사 후 김대현을 구원해 선발 등판한 최동원과 혈투를 벌여 팀에 6-2 승리를 안기며 자신도 1승을 추가했습니다.
달포가 지난 5월 16일 사직에서 둘은 최후의 맞대결을 벌였습니다. 연장 15회,4시간 54분 간 사투 끝에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치열한 명투수전이었습니다.
선동렬은 2회 김용운과 최계영의 연속 적시 내야안타로 2점을 내주었고 최동원은 3회에 서정환에게, 9회에는 김일환에게 적시타를 맞아 1점씩을 뺏겼습니다.
선동렬은 56명을 상대하며 232구, 최동원도 60명을 상대로 209구를 던졌습니다.
이후 둘은 다시는 마운드에서 만나지 않았습니다. 세 차례의 선발 완투 맞대결 성적 1승1무1패가 말해주듯 쌍벽을 이룬 당대 최고의 투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선동렬로서는 타격이 상당했던 모양입니다. 4월 19일 OB 김진욱과 15회 완투대결(1-1 무승부, 경기 시간 4시간 22분)을 벌인 데 이어 한 달이 채 안돼 최동원과 15회 격전을 벌인 게 부담이 됐는지 5월 21일 청보전에서 허리에 이상이 생겨 한동안 등판하지 못했습니다.
괴력의 15이닝 완투를 두 차례나 한 투수는 선동렬이 전무후무합니다.
그런데 선동렬은 그 해 8월 7일 또 13회 완투 경기를 치렀습니다. 당시 청보는 해설자에서 감독으로 변신했던 허구연 감독이 성적이 나빠 일본 유학을 떠나고 후임에 강태정 감독이 취임했습니다.
감독 취임 후 첫 게임에 해태의 선동렬이 나오자 강태정 감독은 김응룡 감독에게 통사정했습니다. "형님, 져달라는 얘기는 안하겠습니다. 대신 오늘 하루만 동렬이를 쉬게 해주세요" 라고. 하지만 선동렬은 등판했습니다.
결과는 일본에서 온 재일동포 잠수함 투수인 청보의 김신부가 선동렬과 연장 13회까지 완투대결을 펼쳐 2-1로 승리했습니다. 경기 후 강태정 감독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다음날 신문에 크게 실렸죠. 선동렬은 6피안타 14탈삼진으로 호투했지만 아깝게 패했습니다.
그 이전에 극적이었던 완투 맞대결은 프로 첫 해인 1982년 코리안시리즈 6차전이었습니다.
22연승의 단일 시즌 연승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OB(두산의 전신)의 박철순이 시리즈 들어 처음으로 선발로 등판해 삼성의 이선희와 완투대결을 펼쳤습니다.
양팀은 8회까지 3-3으로 팽팽한 접전을 벌이다가 OB가 9회초 2사만루의 찬스를 잡았습니다. 이선희는 신경식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내줘 낙담했고 이어 김유동은 이선희가 던진 한복판 초구를 좌월 만루홈런으로 연결시켜 8-3으로 승부를 결정짓고 베어스의 우승을 확정지었습니다.
그밖에 인상 깊었던 완투대결은 1992년 롯데와 삼성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염종석-성준의 대결이었습니다.
당시 롯데의 강병철 감독은 포스트시즌 첫 경기 선발로 파격적으로 신인인 염종석을 기용했는데 “포수가 리드하는 대로 편안하게 던져라”라는 이충순 투수코치의 말에 따라 배짱 투구를 한 염종석이 3-0 완봉승을 거두었습니다. 롯데는 한국시리즈 타이틀마저 거머쥐었고 염종석은 신인왕에 선정됐습니다.
그리고 2003년 8월 3일 광주구장에서 기아-두산전 때 김진우와 일본인 투수 이리키 사토시가 완투 대결을 벌여 2-0으로 끝난 경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김진우는 4피안타 무실점으로 쾌투해 시즌 두 번째 완봉승을 거둔 반면 이리키는 2안타만 내줬는데 3회말 이종범과 김종국에게 연거푸 안타를 맞으며 2실점해 분패했습니다.
이리키는 또 그 해 9월 24일 잠실에서 롯데의 박지철과 완투 대결을 벌이다 1-3으로 패해 시즌 세 번째 완투패를 당했습니다.
완투를 하는 투수를 보면 다시 한번 보게 됩니다. 무쇠팔 투수는 우리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비록 패전으로 끝나도 감동을 줍니다.
천일평 OS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