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조용한 반란’ 이현곤, 꼴찌팀 타격왕 정조준
OSEN 기자
발행 2007.08.10 11: 44

조용한 반란을 꿈꾼다. 이현곤(27. KIA 타이거즈), 그가 꼴찌팀 타격왕을 향해 소리없이 용맹전진하고 있다.
이현곤은 8월10일 현재 타율 3할4푼7리(360타수 125안타)로 당당히 리딩히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비록 소속 팀은 죽을 쑤고 있지만, 그의 방망이는 주눅들지 않고 거침없이 타격왕 고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8월 들어 타격왕 경쟁 판도는 이현곤을 선두로 이대호(25. 롯데 자이언츠), 이숭용(36. 현대 유니콘스) 등 이른바 ‘3이(李)’들 간에 3파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현곤은 타격 2위 이대호(.338), 3위 이숭용(.336)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 8월3일 롯데전에서 5타수 4안타를 작성,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던 이현곤은 4일 3타수 2안타로 마침내 이대호를 제치고 1위 자리에 우뚝 섰고, 5일 4타수 3안타로 달아났다.
최다안타 1위는 덤.
이현곤은 올 시즌 홈런은 달랑 1개 뿐인 전형적인 오른손 교타자이다. 타격 포인트를 최대한 뒤로 끌어놓고 치기 때문에 변화구에 강하고 좌우를 가리지 않는 부챗살 타구가 나온다.
이현곤은 원래 타격 자질을 갖춘 선수였다. 하지만 갑상선 이상으로 체력적인 문제가 있어 항상 시즌 후반기에는 부진했다. 올해는 충실한 겨울훈련을 통해 체력을 쌓은 것이 큰 힘이 되고 있다. 평소 자기 관리도 잘하고, 성실하다. 한마디로 모범생이라는 것이 주위의 평판이다.
3루 수비수로도 제 몫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팀이 치른 전경기(97게임)에 빠짐없이 출장했다. 그의 성실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KIA 타이거즈 주전 3루수 이현곤. 그가 ‘주전’ 자리를 꿰차기까지 4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다. 명문 광주일고를 나와 연세대를 거쳐 2002년 KIA 입단 당시 ‘제 2의 이종범’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였지만 아마 시절 명성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 제 자리를 찾지못했다. 게다가 군문제도 얽혔다.
지난 해 군복무로 인해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현곤은 복귀 후 이제는 KIA 내야의 수비망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됐다.
이현곤이 글러브를 처음으로 낀 것은 송정동초등학교 4학년 봄(1989년).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3연패로 인해 광주는 야구 열기가 뜨거웠다. 송정동초등학교는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3대가 다닌 학교.그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던 선동렬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송정동초등학교 대선배였다. 그의 자질을 눈여겨본 선 감독이 사석에서 이현곤을 칭찬하는 소리를 듣고 용기백배, 야구에 빠져들었다.
돌아온 거포 최희섭은 그의 송정동초등학교 동기생이다. 둘의 특별한 인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최희섭이 송정동초등학교에 나타나면서 시작됐다. 덩치가 유난히 컸던 최희섭과 키가 작았던 이현곤은 야구부원들 사이에서 ‘장다리와 꺼꾸리’로 통했다.
이현곤이 최희섭을 이겨내려고 선택한 것이 야구 센스. 타격이야 그렇다쳐도 수비나 주루에서만큼은 최희섭에게 밀리고 싶지 않았던 이현곤이 살아남는 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현곤은 투수로, 최희섭은 4번타자 겸 2루수로 전국무대를 휩쓸었다.
이현곤은 이미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이현곤과 최희섭은 중학교 진학은 무등중과 충장중으로 엇갈렸으나 3년 뒤 광주일고에서 다시 만났다. 당시, 광주일고에는 서재응과 김상훈(이상 3학년), 김병현(2학년) 등 쟁쟁한 선배들이 있었다.
이현곤과 최희섭은 고교 졸업 후 연세대와 고려대로 진로가 다시 엇갈렸고, 4년 후인 2002년 최희섭은 메이저리그 시카고컵스에 입단했고 이현곤은 KIA 유니폼을 입었다. 올해, 둘은 마치 운명처럼 KIA에서 다시 만났다. ‘선의의 라이벌’ 최희섭이 곡절을 겪으며 이제서야 1루수 겸 4번타자로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이현곤은 한꺼풀 벗고 더욱 진화한 모습으로 타석에 서고 있다. 그리고 타격왕이라는 큰 타이틀을 사정거리 안에 두고 있다.
최근 추세를 이어간다면, 이현곤이 타격왕에 오를 공산이 크다. 이대호라는 ‘디펜딩 챔피언’의 강력한 도전을 뿌리친다면, 이현곤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사상 두 번째로 ‘꼴찌팀 타격왕’으로 탄생할 것이다. 소속 팀 KIA의 꼴찌를 전제로한 것이어서 마음이 편치는 않겠지만, 명가 해태를 이은 KIA의 타격왕은 분명 명예로운 것이다.
역대 타격왕 가운데 꼴찌팀에서 나온 것은 1995년 김광림(현 두산 베어스 코치)이 첫 사례. 만약 이현곤이 기대대로 타격왕에 오른다면 KIA(전신 해태 시절 포함) 선수로는 한대화(1990년), 이종범(1994년), 장성호(2002년)에 이어 4번째가 된다.
홍윤표 OSEN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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