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평의 아이&메모]폭탄테러 속 파키스탄의 한국인 야구교실
OSEN 기자
발행 2007.08.21 08: 35

아시아야구연맹(BFA)은 아시아 국가 중 야구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거나 낙후된 지역의 야구 저변확대와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의 하나로 야구 불모지나 후진국에 지도자를 파견해 야구교실을 열고 있습니다. BFA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내흔(전 대한야구협회회장) 회장은 이번에 카자흐스탄과 파키스탄에 이충순(61. 전 SK코치)씨와 신현석(54. 전 포스콘 감독)씨 등 2명을 17일간 보내 한국야구 지도자들의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지난 7월 17일 한국을 떠난 이들은 먼저 카자흐스탄에 도착해 야구를 가르쳤습니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중앙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나라입니다. 면적이 남한보다 30배나 크며 과거 실크로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수도는 아스타나이고 남동쪽은 중국, 남쪽은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서쪽은 카스피 해와 투르크메니스탄 일부 지역, 북쪽은 러시아와 접하고 있습니다. 땅덩어리는 크지만 인구가 남한의 ⅓ 수준인 1524만 명인데 카스피해와 내륙에서 나오는 석유와 가스, 금, 은, 동, 구리 등 천연 자원이 풍부해 세계 강국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고 우리 기업도 상당히 진출하고 있는데 주로 건설업체입니다. 이충순, 신현석 씨는 수도 아스타나에서 남쪽으로 700km 가량 떨어져 키르기스스탄과 접경한 경제도시 알마티(흔히 알마아타라고도 불리웁니다)에 도착해 현지의 어린이들을 지도했습니다. ‘사과의 할아버지’라는 뜻을 지닌 알마티는 카자흐스탄 교통과 경제의 중심지로 리틀야구팀은 14개팀이 있고 성인팀은 17, 18세 청소년으로 구성된 한 팀이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야구연맹 회장은 미국인 해프너인데 기업을 운영하면서 얼마전부터 야구 보급에 나서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성인야구 수준은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정도입니다. 두 지도자는 1주일간 100여 명의 어린이를 시립운동장 육상경기장 보조구장에서 가르쳤는데 야구를 배우겠다는 열의만큼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가르치고 낮잠 자는 시간이 지난 후 오후 4시부터 6시 정도까지 가르치는데 오후에는 경기를 벌였습니다. 야구 공은 우리와 같은 경식공을 사용하지만 거의 모두가 실밥이 헤어지거나 겉 가죽은 완전히 떨어져나간 공을 던지고 때렸으며 방망이는 알루미늄 배트 3자루가 있었는데 찌그러진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충순, 신현석 씨가 가지고 간 새공 3타스를 내놓자 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가져가려고 난리 법석을 펴기도 했답니다. 천연자원이 풍부해서 개발 가능성이 큰 카자흐스탄이라 세계 각국의 대기업이 진출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삼성, 현대, LG, 기아, 대우 등 업체들이 들어와 있지만 현지의 야구 보급은 미국과 일본만이 소규모로 펼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고려인 2만 명을 포함해 한국 사람은 2만3000명 정도가 생활하고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비행기를 4시간 가량 타고 도착한 파키스탄은 경제적으로 가난하지만 야구 보급은 훨씬 잘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도 자주 참가하는데 지난 해는 필리핀, 태국, 베트남, 이란 등이 출전한 2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인구는 1억5300만 명이나 되고 면적은 남한의 10배 가량 되는 파키스탄의 정치 상황과 경제는 불안합니다. 북서쪽으로 국경이 접하고 있는 아프카니스탄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는 탈레반을 공식으로 인정하는 나라가 파키스탄이고 남동쪽으로 이웃하는 나라가 인도인데 종교적 갈등으로 양국이 핵폭탄을 보유하면서 으르렁대고 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이 현재 파키스탄에 숨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제 2인자인 오마르도 최근에 파키스탄으로 피신해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통솔하고 있어 미국의 집중 토벌작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의 자살폭탄 테러 등이 걸핏하면 발생하고 이슬람교의 순니파와 시아파 분쟁도 발생하고 있는 곳이 파키스탄입니다. 이충순, 신현석 씨가 7월 25일에 도착한 라호르라는 도시는 수도 이슬라바마드에서 남쪽으로 200km 떨어진 펀잡 지방의 비교적 치안 상태가 안전한 지역으로 현지 야구연맹에서 지정했다고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주변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외출이 어려웠습니다. 이들이 도착하기 전후해 수도 이슬라마바드 붉은 사원에서 폭탄 테러로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고 고급호텔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12명이 사망하고 50여 명이 다치는 등 매일같이 이곳저곳에서 테러가 일어났고 바로 전날에는 현지 호텔에서 또 폭탄 테러로 외국인을 포함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호텔(별 5개 고급호텔이라고 해봐야 우리의 여관장 정도라고 합니다)에 묵지 않고 중상층 이상이 사는 동네의 펀잡클럽에서 숙박을 했습니다. 크리켓과 필드하키가 국기인 파키스탄에는 7만 명이 입장할 수 있는 크리켓 구장이 있지만 야구장은 보조경기장에 볼품없이 마련됐다고 합니다. BFA에 공식 보고된 파키스탄 내 야구팀은 24개 팀에 선수는 480명입니다. 이충순, 신현석 씨가 현지에서 가르친 팀은 파키스탄 대표팀 42명이었습니다. 경찰, 군인, 국영기업체 직원 등으로 구성돼 투수 13명, 포수 6명 등인 대표팀은 눈에 불을 켜고 열성적으로 배웠다고 합니다. 야구와 비슷한 운동인 크리켓이 국기이다보니 파키스탄 사람들은 던지고 때리는 데는 상당한 재주가 있습니다. 대표 선수 중 15명 가량은 우리 고교야구 선수 B급 정도의 수준인데 가르치는 동안 제법 기량이 향상돼 오는 11월 말 대만에서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 예선 겸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해 1부로 승격하는 게 꿈입니다. 파키스탄 야구연맹 회장은 우리의 국가정보원 원장 격의 상당한 실력자인데 몇 번 훈련장에 와서 지켜보고는 두 사람에게 1~2년간 상주해 대표팀을 지도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보수가 워낙 적어 한국 지도자가 가서 생활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아 고려해 보겠다는 답변만했다고 합니다. 대표선수를 가르치면서 가지고 간 야구공 3다스를 내놓고 일주일간 사용하겠다고 했으나 순식간에 공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현지 야구연맹 회장은 또 중고 야구 장비를 공급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한국의 저렴한 야구 장비 업체와 상의해 연락해 주기로 했습니다. 파키스탄에는 교민이 150명 가량 상주해 있고 몇 몇 한국 건설업체도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 기업체들이 야구 보급에 나서는 게 좋을 듯 싶지만 아직은 미미하다고 합니다. 선수 지도에 엄격하기로 정평이 난 이충순 씨는 그곳 대표 선수들에게도 한국 선수와 비슷하게 철저히 지도했더니 한동안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들이 낮에는 반드시 자는 습성이 있어 쉬는 시간에는 넉다운이 된다고 합니다. 낮잠 자는 형편이 어떤가 하고 찾아가 봤더니 운동장 한 구석에 있는 낡은 교실 바닥에 엉성한 매트를 깔고 자는데 비가 내리면 대번에 바닥이 흥건해 지는데도 그들은 곤하게 자더랍니다. 이번 두 곳의 야구 보급은 BFA 회장국인 한국이 주관하고 대한야구협회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지도자를 추천했는데 카자흐스탄에서 두 사람의 항공비와 체재비는 현지에서 조달하기 힘들다고 해 BFA가 경비 3500 달러를 부담했고 파키스탄은 체재비를 댔습니다. 이충순, 신현석 씨에게는 BFA에서 기본급 1000달러씩에 개인경비로 250달러(24만 원)씩만 지급되는 열악한 형편이었고 그래도 두 사람이 야구 선물을 위해 자비로 마련한 장비는 항공 화물 운송료만 75만 원이 초과돼 포기하고 야구공 3다스씩만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또 이들이 현지에서 입을 훈련복이나 훈련화, 태극마크가 새겨진 유니폼이 하나도 없이 출장을 가게 돼 급히 조달한 유니폼과 운동화를 착용해 민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알마티까지는 아시아나 항공 직항편이 있는데도 경비를 절약하려고 타이베이에서 갈아타고 가는 바람에 시간을 뺏기고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충순, 신현석 씨는 이번 여행을 다녀와서는 “파키스탄에서는 폭탄 테러에 겁이 났다. 현지에 가서 아프카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우리 교회 봉사자 23명이 납치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외출도 제대로 못해 답답했다”며 힘든 여정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고생은 했지만 야구 보급, 야구 교실 개최에 우리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절감했다. BFA에만 맡기지 말고 우리의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협회가 나서서 우리 대기업체와 접촉해 현지 야구 보급을 하면 국위를 선양할 뿐아니라 석유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카자흐스탄 등과 교류에도 큰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이충순 씨 약력 서울 경동고 출신으로 한국전력과 대표팀에서 투수로 명성을 날렸다. 프로 지도자로 초창기 OB 베어스와 MBC 청룡에서 코치로 일했다. 1990년 초 롯데 투수코치로 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따냈고 한화와 SK에서도 코치를 역임하는 등 국내 투수코치 중 최고의 지도자로 알려졌다. 3년 전 현역에서 떠난 다음에는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신현석 씨 약력 1970년대 초반 고교야구 전성기 시절 배문고 외야수로 홈런상을 수상했고 인천전문대를 거쳐 1976년 공군에서는 실업야구 신인왕을 차지하고 박철순, 천보성 등과 함께 뛰었다. 프로가 출범했을 때는 아마야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1983년 포철팀에서 감독과 코치, 선수 등 1인3역을 감수하며 팀을 실업야구연맹전에서 우승시켰고 1986년에는 타격상을 받았다. 1992년 포스콘 감독과 대표팀 코치를 역임하고 요즘은 대한야구협회에서 봉사하고 있다. 천일평 OSEN 편집인 이충순 씨(가운데 흰 유니폼 입은 사람)와 신현석 씨(왼쪽에서 74번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카자흐스탄에서 어린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고 있다. 이충순 씨가 파키스탄에서 대표팀 투수 중 한명에게 공을 잡는 요령을 가르치고 있다=이충순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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