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평의 야구장 사람들]‘좌타자 최고수’ 윤동균이 양준혁에게 전수한 비결
OSEN 기자
발행 2007.08.31 08: 38

‘양신’ 양준혁(38)이 최근 6경기서 타율 2할5푼에 그쳐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때린다’는 그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나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본인은 시즌 막판 불방망이를 자신하고 있습니다.
삼성-한화의 대전 경기는 비 때문에 8월 29일과 30일 이틀 연속 치르지 못했는데 30일 오후 삼성의 지명타자 양준혁은 전화 통화에서 “요즘 타율이 약간 떨어진 것은 어디가 아파서가 아니라 단지 잘 칠 때도 있고 못 칠 때도 있는 타자들의 공통 현상일 뿐이다”면서 “봄에 아팠던 왼손목도 이제는 많이 나아져 컨디션은 좋다. 시즌 막판이니 팀이 2위 이상을 하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자신감과 여유를 보였습니다.
삼성은 30일 현재 3위이고 2위 두산과는 2경기 차로 뒤져 있으며 4위 한화에는 반게임 차로 앞서 있습니다. 선동렬 감독의 목표인 2위 달성을 위해서는 치고 올라가기도 힘들고 한화한테는 바짝 쫓기는 처지여서 상당히 급박합니다. 정규 시즌을 20게임 남겨 놓은 중요한 시기이기에 양준혁의 활약이 더욱 필요하게 됐습니다.
2005년과 2006년 연거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해 최강팀으로 꼽히던 삼성은 올해 들어서는 타선의 노쇠화 현상이 드러나 5월 초에는 3년만에 7연패를 당하고 꼴찌로 추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5월에는 6위를 기록하다가 6월 중순부터 팀 승률이 5할 안팎에 다다르면서 추스린 끝에 현재 3위까지 올랐습니다.
양준혁의 개인 성적도 비슷했습니다. 초반에는 타율이 1할5푼4리에서 헤매며 홈런만 4개를 날려 기이한(?) 양상을 보였는데 6월 중순 들어서는 타율이 3할을 넘어섰고 홈런 부문에서도 상위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6월 9일에는 개인통산 국내 최초의 2000안타 대기록도 세웠습니다.
8월 30일 현재 그의 타격 성적은 타율은 3할2푼2리(3위), 홈런 21개(공동 4위), 타점 67점(7위), 득점 67점(3위), 최다안타 119개(3위), 장타율 5할6푼6리(2위), 출루율 4할4푼4리(2위)이고 도루도 17개를 기록하는 등 타격 전 부문에 걸쳐 10위권에 들어 ‘전력을 다해 뛴다’는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야구를 제법 아는 사람들도 “양준혁처럼 이상한(?) 타격폼을 가지고도 저렇게 잘 치는 이유가 무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나이 마흔을 코앞에 둔 양준혁은 세칭 ‘만세 타법’을 구사합니다. 방망이를 휘두르고 두 손을 번쩍드는 자세인데 188cm, 95kg의 거구를 온통 흔드는 듯한 폼이어서 정교한 맛은 없습니다.
‘만세 타법’을 개발한 이유에 대해 양준혁은 “2002년이 되니까 힘이 떨어지고 나이를 먹어 가니까 살아남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승엽과 마해영을 보면서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 덧붙여 “과거를 잊어버리고 새로 생각을 하자고 마음먹고 기존 타격폼을 고치려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냈죠”라며 방망이를 때리는 순간 팔로 스로우 때 왼팔을 놓는 독특한 만세타법을 만들어냈다고 밝힙니다.
누구에게 그런 타법을 배웠냐고 물으니까 그는 “만세타법은 저만의 노하우로 만든 것인데 선구안이 좋아지고 공을 때릴 줄 안다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특히 만세타법이 좋은 점은 나이 먹은 선수들이 적응하기 좋다는 장점이 있습니다”고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풀이를 합니다.
그는 프로 14년동안 타격폼을 너댓 번 바꾸었다고 밝힙니다. “물론 지도자 분들이 코치를 많이 해주셔서 도움을 받았지만 거기다 저만의 연구 끝에 폼을 바꾼 게 대부분입니다”고 지도자들이 들으면 조금은 섭섭한 이야기도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지도자 분들 대부분이 일본야구를 익혔고 교과서적인 코치를 하기 때문에 저한테는 맞지 않는 게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가면 제 타격폼을 보고 칭찬을 하는 지도자도 있어 용기가 났죠”라고 정통적인 스타일은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그의 자신감 넘치는 성격과 같은 답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전 만난 윤동균(58) 한국야구위원회 기술위원장으로부터 양준혁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윤 위원장은 경기운영위원으로 경기장에 나가는데 올해 시범경기 때 만난 양준혁이 진지하게 찾아와 자문을 구했다고 합니다.
“위원장님 타격에 대해 한 수 가르쳐 주십시요.”
“너처럼 잘 치는 선수에게 무얼 가르칠 게 있겠냐?”
“아닙니다, 위원장님이 선수 시절에는 최고의 좌타자라는 것을 압니다.”
“너하고 나는 타격 스타일과 폼이 상당히 차이가 나 가르칠 것도 없다.”
윤 위원장은 동대문상고(현재 청원고)를 졸업하고 기업은행과 상무, 포철을 거쳐 1982년 프로 출범 때 김우열과 같은 33세의 최고령 선수로 OB 베어스에 입단했습니다. 실업야구 시절에는 최고의 좌타자로 타격왕을 수 차례 차지했고 1977년 니카라과 슈퍼월드컵대회 대표 선수로 출전해 타격 2위를 차지하며 한국야구가 처음으로 세계 정상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프로에서는 첫 해 올스타전에 외야수로 출전하고 타율 3할4푼2리로 2위에 올라 ‘1982 베스트 10’에 선정됐으며 마흔살인 1989년까지 8시즌을 선수로 뛰었습니다. 통산 타율은 2할8푼5리. 그후 OB에서 코치를 거쳐 1991~94년 4시즌을 베어스의 감독을 맡았습니다.
이런 경력을 소상히 알고 있는 양준혁은 “그래도 한 말씀 해주십시오”라면서 졸랐습니다. 그래서 윤 위원장은 “타격폼이 워낙 다르고 너도 나이가 들었으니 기술적으로 코치할 것은 없고 오직 하나 있다면 ‘볼만은 때리지 말아라’이다”라고 한마디했다고 합니다.
‘투수의 볼을 잘 고르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고 타자가 배워야 할 기본적인 사안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양준혁은 “예! 명심하겠습니다”면서 씩씩하게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고수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본래 공을 잘 고르는 양준혁은 올해는 더 잘 고른다고 정평이 났습니다. 두산의 리오스도 “양준혁이 가장 까다로운 타자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2000안타 대기록을 세우던 날 양준혁은 “아마도 내가 수립한 기록 중 4사구 기록이 가장 늦게 깨질 것”이라고 자신이 볼을 잘 고르는 장점을 자랑했습니다. 지난 해까지 14시즌 동안 양준혁은 1131개의 사사구를 기록했는데 작년 4사구 기록이 112개로 가장 많았습니다. 올해는 30일 현재 82개로 평년치를 기록하고 있으나 프로 15년째이고 나이를 감안하면 대단한 선구안입니다.
볼을 때리면 가끔은 안타, 장타가 터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헛방망이질을 하거나 범타로 그치고 상대방 투수를 편하게 만드는 이적행위를 하는 셈입니다.
독특한 ‘만세 타법’으로 온몸을 뒤흔들면서도 안타를 생산하는 양준혁의 비결에 윤동균 기술위원장의 ‘볼만은 때리지 말아라’는 한마디가 깊숙히 접목됐으니 ‘양신’의 안타 행진은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천일평 OSEN 편집인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