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시간이 야금야금 다가오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가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는 가운데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할 나라들의 면모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과연 한국야구가 베이징호에 동승할 수 있을까.
베이징올림픽 출전팀은 두 갈래의 예선전을 치러 결정한다. 대륙별 1차 예선과, 1차예선에서 탈락한 상위 성적의 팀들이 이루는 2차 예선이 그것이다. 이미 아시아지역을 제외한 아메리카와 유럽은 1차 예선을 마치고 베이징 직행열차를 탄 나라들이 가려졌다.
아메리카에서는 미국과 쿠바가 지역예선에서 1, 2위를 차지해 올림픽 티켓을 거머쥐었다. 유럽은 네덜란드가 1위로 티켓을 확보했다. 따라서 올림픽 주최국인 중국을 포함한 4나라가 결정됐고, 나머지 4팀은 아시아 지역 1위팀과 1차 예선 탈락팀이 모여 돌려붙기(풀리그)로 치르는 2차 최종 예선 성적 상위 1~3위팀이 막차를 타게 된다.
최종 예선에는 아메리카 1차 예선에서 3, 4위를 한 멕시코와 캐나다, 유럽에서 2, 3위를 한 영국과 스페인, 그리고 아프리카 대표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오세아니아 대표인 호주, 이렇게 6팀이 확정돼 내년 3월께 있을 대회를 기다리고 있다. 나머지 두 장은 아시아 지역 예선 2, 3위팀이 갖게 된다.
아시아 지역 예선은 12월 1일부터 대만 타이베이 인터컨티넨탈구장에서 열린다. 한국은 12월1일에 대만, 2일에 일본과 운명의 맞대결을 벌인다. 한국 야구가 숱한 난관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조만간 발표를 앞두고 있는 한국대표팀의 베이징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한국대표팀에는 3중고가 가로놓여져 있다.
2006년 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을 두 차례나 격파하는 등 세계 4강 신화를 일궈냈던 한국은
그 때와는 아주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다. WBC에서 맹활약했던 해외파들이 부진한 데다 류현진(20. 한화 이글스), 손민한(32. 롯데 자이언츠), 오승환(25. 삼성 라이온즈) 등 국내파 주축 투수들이 피로 누적으로 위력이 예전 같지 않고 WBC 홈런왕(4개) 이승엽(31. 요미우리 자이언츠)이 부상으로 출전 불투명한 데다 국내 타자들도 거포 부재로 선뜻 믿음이 가지않는다는 게 야구 관계자들의 푸념이다.
해외파 가운데 특히 이승엽이 만약 시즌 후 부상부위 수술 등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할 경우 한국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마이너리그에 머물러 있는 박찬호(34)는 대표팀 합류의사를 밝혔지만 WBC 때와 같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그나마 유일한 메이저리거인 김병현(28. 플로리다 말린스)은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아시아 예선 출장을 아예 제지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래저래 한국 대표팀은 구성조차 힘겨운 상황이다.
게다가 올 시즌은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아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일정이 늘어나는 바람에 선수들의 피로도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돼 KBO는 걱정이 태산이다.
반면 일본은 호시노 센이치 전 주니치 드래건스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에 앉힌 이후 올림픽 직행은 물론 사상 첫 금메달을 노리며 치밀하고 착실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대만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면서도 한켠으로는 예선 1위 통과를 자신하고 있다. 실제 객관적인 전력상 일본이 한국이나 대만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10월에 최종 30명을 추려낼 예정인 일본은 한국야구(대표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호시노 감독은 “한국, 대만전은 접전이 예상된다. 경기 종반에 한 점 리드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마무리 경험이 없는 선발투수보다도 마무리 전문투수를 뽑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다”고 구상을 내비친 적이 있다.
한국과 일본 야구는 아직 엄연한 실력차가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비록 한국이 WBC에서 일본을 혼쭐내주기는 했지만, 해외파가 대거 참가했고 투구수 제한 등 정상적인 야구와는 거리가 있었던 그 대회를 한-일 양국 실력비교의 척도로 삼기는 어렵다.
물론, 한국에서 활동했던 타이론 우즈(38. 주니치)나 세스 그레이싱어(32. 야쿠르트 스월로스) 등이 일본무대에서도 통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한국 야구가 세기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큰 테두리에서는 일본에 그리 뒤지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일 프로야구는 지난 1991년 제 1회 슈퍼게임을 통해 처음으로 실력을 맞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 후 1995년과 1999년 슈퍼게임에서 한국이 일본에 주눅들지 않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고 선동렬을 비롯한 유명선수들이 일본무대에 진출, 한국의 정상급 선수들은 거기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 슈퍼게임은 국가대항전 성격을 띄고 있긴 했으나 한국이 명실상부한 대표팀을 꾸린 반면 일본은 지역 선발전으로 맞대결해 국가대항전으로 보기에는 어폐가 있다.
그야 어찌됐든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은 단판 승부이기 때문에 섣불리 유불리를 따질 수는 없다. 그와 관련, 일본 아사히 TV 해설위원인 구리야마 히데키가 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 가운데 한국 대표팀에 관한 ‘국내리그 개혁으로 설욕에 불타는 한국’이라는 글(9월17일치)이 눈길을 끈다. 구리야마는 이 칼럼에서 한-일간의 야구 실력을 은근히 비교 언급해놓았다.
구리야마는 우선 한국이 WBC에서 세계 1위에 올랐던 일본에 2승1패를 했지만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의 사회인팀에도 패하는 바람에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라 KBO가 여러 가지 개혁(공인구의 국제대회 사용구로 변경, 마운드 높이를 낮추고, 스트라이크 존 변화 등)을 시도했다고 언급했다.
구리야마는 투수진에서 류현진과 한기주( KIA 타이거즈)가 현 단계에서는 한국 최고의 좌완과 ‘마쓰자카 2세라고 불리는’ 마무리 전문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한기주는 아시아 예선 출전에 관한 질문에 대해 “병역 문제도 있고 해서 전력을 다해 던질 생각이다”고 말했다. 구리야마는 젊은 선수들이 병역면제를 의식, (대표팀에)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고 있다.
구리야마의 결론은 “호시노 일본대표팀은 보통대로 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만 뭐가 일어날 지 알 수 없는 것이 일발승부의 두려움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지금부터 긴장감을 한껏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한국은 실력대로 한다면 겁날 것이 없지만 단판 승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경계심을 늦추면 안된다는 말이다.
한국 야구가 삿포로와 도하의 치욕을 씻고 베이징 길에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