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레드삭스-탬파베이 데블레이스의 지난 9월 22일(한국시간) 경기에서 보스턴이 8-6으로 극적인 재역전승을 거두고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기장 먼저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라이벌 뉴욕 양키스의 맹추격을 받는 가운데 마쓰자카가 등판해 관심을 모은 이 경기에서 마쓰자카는 5-3으로 앞선 7회말 2사 후 갑자기 볼넷 두 개를 내주고 강판했는데 구원투수 하비에르 로페스가 페나에게 스리런 홈런을 얻어맞아 승리투수 기록이 날아가 14승(12패)에서 머물렀고 보스턴은 패배의 위기에 몰렸습니다.
그러나 9회초 제이슨 베리텍의 솔로포, 훌리오 루고의 투런 홈런으로 다시 뒤집었습니다.
양키스와 게임차를 2게임반 차로 유지하며 2년만에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보스턴의 테리 프랑코나(48)감독은 이날 승리로 그동안 불려왔던 ‘프랑코마’감독이란 호칭에서 잠시나마 벗어났습니다. 올시즌 5월에는 양키스를 14게임반 차로 따돌리며 최고 승률을 올렸으나 후반기 들어 양키스가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25일 현재 2게임 차) 전에 들었던 프랑‘코마’(코마는 의식불명 상태를 말함. 프랑코나 감독의 작전 부재를 비꼬기 위해 일부러 이름을 바꿔 말한 것)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쫓기고 있습니다.
좌투수가 나오면 좌타자는 기용하지 않는 ‘플래툰 시스템’을 따르고 투수들의 투구 이닝을 철저히 지키게 하는 우직함(?) 때문에 ‘야구를 알지 못하는 지도자’로도 악평을 듣는 프랑코나지만 실제 선수 시절에는 상당히 뛰어났습니다.
프랑코나는 애리조나 대학 시절부터 1루수로 뛰면서 1980년에 가 선정한 ‘올해의 선수’로 이름을 알렸고 메이저리그에는 1라운드에 지명돼 10시즌 동안 시카고 컵스-신시내티 레즈-클리블랜드 인디안스-밀워키 브루어스 등에서 타율 2할7푼4리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1991년에 마이너리그 지도자로 나섰고 1993년에 올해의 마이너감독으로 뽑혔습니다. 1997∼2000년에는 필라델피아 감독직을 맡으며 285승363패(.440)의 성적을 냈습니다. 이후 2001년 클리블랜드의 프런트를 거쳐 텍사스(2002년), 오클랜드(2003년)에서 수석코치로 활동하면서 온화한 성품과 합리적인 선수 관리로 능력을 인정받아 실제 메이저 코칭스태프계에서는 실력파 지도자입니다.
그래디 리틀(현재 LA 다저스 감독)감독에 이어 레드삭스의 44번째 사령탑으로 2003년 12월 팀을 맡자마자 2004년에 ‘밤비노의 저주‘에 시달려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오랫동안 차지하지 못한 보스턴 레드삭스를 86년만에 정상에 올려 놓은 것만 봐도 프랑코나 감독의 능력은 알아줄만 합니다.
우리와 인연은 지난 2001년 11월 대만에서 열린 제 34회 야구월드컵대회에서 당시 미국 대표팀 감독이던 프랑코나 감독이 한국과의 경기가 열리기 1시간30분전 느닷없이 한국측 덕아웃을 찾은 해프닝부터 알려졌습니다.
한국 대표팀의 김정택 감독에게 한마디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우리팀 선발은 왼손이다. 한국팀 선발도 왼손인지 오른손인지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어이가 없어 한 동안 말문이 막힌 김감독은 “알려줄 수 없다”고 거부하자 미국 감독은 휑하니 고개를 돌리고 자기팀 덕아웃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김정택 감독은 “국제대회에서 배팅오더 교환 전 상대팀 덕아웃에 들이닥쳐 선발투수를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오만방자한 그의 태도에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미국팀은 왼손타자 5명, 스위치히터 3명을 보유해 상대투수 유형에 따라 타순 변동이 심했습니다. 어쨌든 미국은 한국에 11-0으로 대승했습니다.
프랑코나 감독의 경우없는 행동은 대회 개막 전날 참가국 감독자 회의 때도 간단한 인사말만 하고 기자회견에 불참한 채 자리를 떠 기자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기자들과 어울리지 않는 그의 성품으로 요즘도 매스컴은 호의적인 내용보다 비판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그리고 프랑코나 감독은 보스턴 부임 첫 해 김병현의 기용을 놓고 우리들에게 잘 알려졌습니다. 프랑코나 감독보다 먼저 2003년 5월 애리조나에서 보스턴으로 옮긴 김병현은 이적 첫 해에 8승 5패 16세이브, 평균자책점 3.56을 기록해 괜찮았습니다.
프랑코나 감독은 2004년에 처음에는 김병현을 선발로 기용할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검증받은 선수만 출장 시킨다’는 그의 원칙에 따라 결국은 김병현을 멀리하고 7게임에만 등판 시켜 2승1패, 평균자책점 6.23을 마크했습니다.
김병현이 2004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서 성적이 좋지 않고 동료들과 융화를 제대로 못하자 프랑코나 감독은 오히려 김병현을 옹호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는 3월 22일 프랑코나 감독과의 인터뷰를 싣고 그가 김병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며 김병현이 부활해 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선수들은 그를 공개 비난 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김병현은 팀의 일원이 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포수들과 의사 소통도 하지 않고 클럽하우스에서 친구도 별로 없다’는 덕 미라벨리의 발언과 관련, 프랑코나 감독은 “나는 그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말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난 언론을 통해 김병현에게 뭔가를 말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선수들도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본다”며 미라벨리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에 간접적으로 주의를 줬습니다.
프랑코나 감독은 김병현의 부활을 바라고 “김병현이 5이닝 무실점 투구를 한다면 뒤에서 수근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빅리그에서 그 정도로 타자를 솎아낼 수 있는 투수는 많지 않다”는 말로 김병현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끝내는 김병현을 다음 해에 콜로라도로 트레이드 시켰죠.
주전선수들에 대한 신뢰는 대단해 선수 교체 타이밍을 놓고 항상 기자들과 팬들은 프랑코나 감독이 지나치게 고집을 한다고 경기를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2년 전 볼티모어와 피말리는 연장전에서 투수 바비 존스가 볼넷을 4개나 주면서 밀어내기로 패배했을 때도 투수 교체를 안했죠.
신인 벅홀츠가 올시즌 두 번째 선발 등판인 9월 2일 볼티모어전에서 9이닝 동안 볼넷 3개만을 허용했을 뿐, 탈삼진 9개를 곁들이며 무안타 무실점으로 역투, 마크 벌리(시카고 화이트삭스), 저스틴 벌랜더(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이어 올해 메이저리그 세 번째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코나 감독은 최고의 피칭 컨디션을 보인 벅홀츠를 다음 날 바로 불펜으로 돌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유는 당시 허리 통증으로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던 최고참 팀 웨이크필드가 선발로 복귀함에 따라 다시 불펜으로 보냈으며 올 시즌 마이너리그에서 125⅓이닝을 던진 벅홀츠의 시즌 투구 이닝을 150이닝 이하로 조절한다는 방침에 따라 벅홀츠를 불펜으로 돌렸다고 설명했습니다.
벅홀츠는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뒤 7일 볼티모어전에서 구원 등판해 3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낸 이후 한 경기도 등판하지 않다가 20일 토론토 원정경기서 부진한 마쓰자카 대신 선발로 등판해 5회 투아웃까지 2점을 내주자 강판하고 패전투수가 됐습니다.
“젊은 투수들의 경우 갑자기 투구 이닝을 늘리면 부상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게 프랑코나의 지론입니다. 철저하게 유망 신인 선수를 관리하는 모습을 프랑코나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스턴 팬들은 프랑코나가 ‘프랑코마’로 변해 덕아웃에서 묵묵히 앉아 있기만 하는 모습을 또다시 볼까봐 두려워합니다.
프랑코나 감독의 이런 모습에 반해 우리 프로야구 감독들은 대부분 투수들을 혹사시키고 선수 교체가 잦습니다. 프랑코나 감독이 올해 156게임에서 보내기번트를 30개만 마크해 30개 구단중 4개팀이 공동 26위를 기록해 번트를 좋아하지 않는 반면 올해 4강에 오를 SK의 김성근 감독, 두산의 김경문 감독, 삼성의 선동렬 감독, 한화의 김인식 감독은 120경기 내외에서 보내기번트가 107~124개를 기록해 경기 운영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네 분 감독들은‘프랑코마’라는 말을 듣는 프랑코나와 달리 모두 ‘명장’이란 소리를 듣는 지도자들입니다.
‘프랑코마’ 감독과 비교해 김성근, 선동렬 감독은 투수 교체 타이밍이 빠르고 많은 투수들을 동원합니다.
김성근 SK 감독은 ‘데이터 야구’로 유명해 선수들을 인해전술로 출전시키고 투수들 출장 횟수는 많기로 유명합니다. 참 ‘플래툰 시스템’을 꼭 지키는 것은 프랑코나와 같습니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신진급 선수들을 과감하게 기용하고 특히 발빠른 선수를 좋아하는 게 다르지만 ‘관리형 야구’로 한번 믿음을 준 선수를 웬만하면 기용하는 것은 비슷합니다.
선동렬 삼성 감독은 세칭 ‘스몰볼 야구’로 빈틈없는 작전을 잘 구사하고 ‘지키는 야구’로 투수진에게 비중을 많이 두어 대형타자들에게 큰 믿음을 보이는 프랑코나와는 차이가 납니다.
김인식 한화 감독은 ‘빅볼 야구’를 추구하고 주전급 선수들에 대한 믿음은 프랑코나와 비슷하지만 투수들의 등판 이닝은 프랑코나에 비해 많은 이닝을 주문하는 게 다릅니다.
프랑코나 보스턴 감독이 ‘프랑코마’란 말을 들으면서 자기식대로 밀고 나가 또다시 3년 전 기적을 재현할 지, 우리들의 ‘명장’들이 선수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려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이번 포스트시즌의 비교대상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천일평 OS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