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밤 9시가 조금 지난 시각. 대전구장 1루쪽 덕아웃에서 한화 이글스 김인식 감독(60)이 물끄러미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허공을 응시하는 듯도 했다. 예상과 달리 단명국으로 끝난 2007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그라운드에서는 한국시리즈 티켓을 거머쥔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한창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방금 격전을 치르고난 승부사같지 않게 평온한 얼굴을 한 김인식 감독은 옆에 누가 서있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듯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 “거, 참, 이상하네.”
그의 말뜻은 곧 이어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혀졌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 느닷없이 선발 정민철이 부상으로 도중하차한 것을 신호로 배수의 진을 친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철석같이 믿었던 류현진마저 근육통으로 조기 강판, 끝내 열세를 돌이키지 못했던 흐름을 두고 한 말이었다. 내야 수비의 핵 김민재도 등이 아프다고 플레이오프 2차전부터 빼달라고 했으나 그럴 수 없었노라고 했다.
부상자들이 속출한 한화의 올해 포스트 시즌은 ‘이상한 시리즈’였다.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것처럼 김 감독 말 그대로 ‘꼬여버렸다’.
김인식 감독은 “그 게 바로 실력”이라고 명쾌하게 정리를 했다. 노장 선수들과 신진들과의 실력차, 그것이었다. 두산과 달리 노장들을 떠받쳐줄 제2전선에 버티고 있는 선수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대교체’. 이제 한화가 안고 풀어나가야할 절박한 숙제가 전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 감독은 “진작부터 세대교체를 생각했으나 신진급과의 실력차가 너무나 노장을 기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재활공장장이라는 칭송을 듣고 있는 김 감독도 노장 선수들의 기용이 임시방편이지 결코 항구책이 될 수 없음을 재인식 하고 있다.
한화 구단 노장층의 핵심 인물은 송진우(41)이다. 자연 그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송진우는 플레이오프 기간 중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주변에서 직접 대놓고 물어보지는 않는데 은근히 선수생활 지속여부에 대해서 관심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실력이 달려서 못한다면 모르겠으나 부상 때문에 흐지부지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고 선수생활 지속에 대한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송진우는 “시즌을 모두 마친 다음 완전 부활을 위한 개인적인 스케줄도 짜놓았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대표 후보로 뽑히는 바람에 일정에 다소 차질을 빚게 됐다”고 설명했다. 송진우는 하지만 2008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 최종 엔트리에 들어간다면, 나름대로 해야할 몫이 있는 것으로 보고 성실하게 대회에 임할 각오를 밝혔다.
그에 덧붙여 그는 “공 빠르기는 137, 8㎞정도이지만 이제는 팔꿈치 통증도 사라졌고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도 잘 먹혀든다”고 부연 설명했다. 아직도 구질로 젊은 선수들과 충분히 대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송진우는 올 시즌 부상 여파로 42게임에 출장, 35⅔이닝을 던져 3승 2패 1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점 4.54를 기록했다. 이 성적표만을 놓고 본다면 명성에 훨씬 못미치지만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한화가 갖는 힘은 측량하기 어렵다.
송진우의 선수생활 지속 여부는 한화 구단의 세대교체 프로그램과도 맞물려 있다. 그와 관련, 김인식 감독은 “송진우는 워낙 열심히 한다”는 말로 여전히 신뢰감이 식지 않았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설사 구단이 나서서 그의 은퇴를 종용한다고 할지라도, 김인식 감독의 내년 시즌 전력 구상에는 송진우가 자리잡고 있음을 확실히 한 것이다.
한화 구단측은 송진우의 거취에 대해 지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화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가 세운 공로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장차 한화 구단의 지도자로도 일익을 맡아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송진우의 거취와 무관하게 한화 오성일 홍보팀장은 “만약 송진우가 은퇴를 하게 된다면 구단 사상 가장 성대한 은퇴식을 마련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송진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였다.
송진우는 오는 11월로 한화 구단과의 3번째 FA 계약이 만료된다. 송진우는 첫 FA 권리행사 때인 2000년에 2002년까지 3년간 총액 7억 원(계약금 2억 5000만 원, 연봉 1억 3500만 원, 옵션 4500만 원)에 계약했고,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차로 FA 계약(다년계약, 총액 18억 원, 계약금 9억 원, 연봉 3억 원)을 맺었다. 그리고 2006년과 2007년 2년간 총액 14억 원(계약금 6억 원, 연봉 3억 원, 옵션 2억 원)에 3차 계약을 한 바 있다.
돌발 변수가 없는 한 송진우는 내년 시즌에도 현역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설 것이 확실하다. 다만 한화 구단과의 계약조건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회장님’ 송진우. 19년을 변함없이 달려온 그는 내년이면 어느덧 프로선수 생활 20년째를 맞게 된다.
야구선수 나이로 환갑, 진갑을 다 지낸 송진우가 현재 ‘우리 프로야구판에서 가장 모범적인 선수’라는 평판에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성실남’의 본보기이자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선수로 정평이 나 있다.
2000년 1월22일 프로야구선수협의회 창립 총회 때 초대 회장을 맡아본 인연으로 ‘회장님’ 별칭이 따라붙어 다니는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은 아마도 프로야구 최고의 좌완투수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프로야구판에서 20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그다. 대학시절부터 몸무게 75㎏을 항상 유지하고 있다. 그의 지론은 ‘움직여야 산다’는 것이다. 송진우는 스스로 살찔 틈을 주지 않는다. 선행도 일등인 송진우는 선수생활 말년에 각종 투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점이 더욱 돋보인다. 그만큼 그 기록은 값질 수밖에 없다. 최고령 각종 투수 기록을 수립해 가고 있는 그의 투구 하나하나에 눈길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200승 달성(2006년 8월 29일, 광주구장 KIA전)을 정점으로 개인통산 최다탈삼진(1970개), 개인최다 11시즌 10승 이상 기록 등 송진우는 한국 야구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 전설이 내년에도 계속 된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