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잔치는 끝났다. 아직 우승의 여운이 짙게 남아 있지만 SK 와이번스의 새내기 투수 김광현(19)은 11월 2일 팀 소집일을 앞두고 그동안 밀린 잠을 푹 자는 등 얼떨떨한 가운데 한껏 여유를 부렸다. 이제 코나미컵이 그의 앞에 도사리고 있다. 한국시리즈 4차전 승리를 계기로 그는 부쩍 성장해버린 느낌이다.
주위의 큰 기대를 저버렸던 올 시즌, 김광현은 페넌트레이스를 통과하며 호된 성장통을 겪었다. 올해 한국시리즈 패권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4차전의 역투. 김광현의 뜻밖의 호투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SK가 정상에 오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0월 26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윤동균 기술위원장은 입맛을 다셨다. 김광현의 기막힌 투구를 지켜보던 윤 위원장은 “김광현이 대표팀에 들어갈 수 있다면 류현진과 더불어 최강의 왼손 듀오를 구축할 수 있겠는데…”라며 “그러나 60인 엔트리에 들지 못해 2차 예선 때나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못 아쉬움을 표시했다.
김광현은 현재로선 대표가 될 수 없다. 오는 12월1일부터 3일까지 대만에서 열리는 2008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은 제 24회 아시아선수권대회를 겸하고 있다. 대한야구협회는 10월15일자로 60명의 엔트리를 국제야구연맹(IBAF)에 통보를 마쳤다. 김광현은 그 명단에 없다.
이 엔트리는 만약 부상자가 생길 경우 대회 전에 그 범위 안에서 융통, 선수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60명 엔트리에 들지못한 김광현은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뛸 수 없다. 한국대표팀이 김광현을 대표로 발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한국이 이번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베이징행 티켓(우승을 의미)을 거머쥐지 못한다면, 내년 3월에 열릴 예정인 올림픽 2차 예선전에 다시 나가야 한다. 그 때 김광현이 뛰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야구는 베이징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퇴출된다. 당분간 올림픽 무대에서는 다시 보기 어렵다. 일본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기필코 우승을 따내기 위해 혈안이 된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 아무래도 일본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되는 한국으로선 김광현 같은 싱싱한 어깨가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어서 아쉽기 짝이 없다.
김광현이 60인 엔트리에조차 들지 못한 것은 물론 10월 1일 33명의 대표팀 5차 예비 엔트리 발표 당시까지의 성적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야구협회 이상현 사무국장은 “10월 초 성적을 기준으로 대표 후보를 선발해 김광현이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년 2차 예선에는 뛸 수가 있다”고 말했다.
시련도 있고 실패도 했지만, 김광현의 사전에 좌절은 없다.
김광현은 코나미컵에 대비한 팀 소집훈련에 앞서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 고교 때 2번(2005, 2006년) 청소년대표로 뽑혀 국위선양을 했으며 언제나 국가대표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족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아직 국가대표로 뽑히지는 않았지만 이번 코나미컵에서 확실하게 눈도장을 받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고 각오를 새롭게 했다.
올 시즌 막을 올릴 즈음 한화 이글스 류현진(20)의 라이벌로 꼽혔던 김광현은 “류현진 선배는 저와 비교할 수도 없는 좋은 힘과, 컨트롤, 마운드 운영능력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선배라고 생각되며, 프로에 처음 들어와서 많은 기대감으로 인하여 너무 잘하려고 하는 부담감이 너무 커 기대에 부응 못했던 것 같습니다”고 뒤돌아 보았다.
김광현은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좋아진 원동력에 대해 “정규시즌에서 별다른 활약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님이 믿고서 4차전 선발을 맡긴 것이 저를 안심시켰으며 또한 김재현 선배가 ‘너는 야구를 즐겨라, 방망이는 우리가 확실하게 쳐 줄 테니까’등으로 격려를 해줘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고 설명했다.
SK 신인 사상 최다 5억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지만 정규시즌 활약이 미미한 것과 관련, 김광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어떻게 해야 될지도, 조급함도 많이 들었고…. 사실 숨고 싶기도 했습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프로는 아마와는 달리 한 경기에만 모든 것을 거는 올인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즌 초반에 경기가 너무 안풀려 기가 죽기도 많이 했으며 저자신에게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코치나 선배님들이 들려준 충고들이 서서히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는 야구를 즐기려고 노력할 것입니다”고 그는 다짐했다.
김성근 감독은 10월 31일 우승 후 인터뷰를 통해 “내년부터 김광현은 최고 투수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김광현이 한국 최고의 좌완투수로 우뚝 설 때, 한국야구는 그만큼 풍성해질 것이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