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지난 1997년 6월 29일 WBA 헤비급 프로복싱 타이틀 매치에서 챔피언 에반더 홀리필드의 귀를 두 차례나 물어뜯는 바람에 졸지에 그의 ‘이빨’이 유명세를 탄 적이 있다. 사람의 이가 때로는 효과적인 공격 수단으로도 돌변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실 이가 부실하면 음식물 섭취가 힘들어져 건강을 지탱하기 어렵다. 치통은 겪어본 사람만 그 고통을 알수 있으리만치 통증이 극심하다. 오죽했으면 옛말에도 이가 ‘오복’중에 하나라고 했을까.
프로야구 종사자들, 특히 선수 가운데 투수나 투수 출신 지도자들은 이가 좋지 않다. 스트레스를 과중하게 받는 시즌에는 치통에 시달리는 지도자들도 흔히 볼 수 있다.
2008 베이징올림픽 1차 예선에 출전하는 야구국가대표팀 주장 완장을 찬 박찬호(34)도 치아가 썩 좋지 않다. 박찬호는 지난 11월 11일 대표선수단의 오키나와 전지훈련지 출국 당시 인천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 때 인터뷰 직전 “잠깐”을 외친 다음 느닷없이 입 안에서 마우스피스를 꺼내는 모습을 드러냈다. 박찬호는 그 이유를 묻자 “그럴 일이 있어서”라고 대답했지만 부실한 치아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종범(37)도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치통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한화 이글스의 김인식 감독은 ‘건치’와는 거리가 멀어 무시로 치과를 드나들었다. 투수 출신으로 작고한 전 김명성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도 윗앞니 3개가 의치였다. 부상으로 올 한 해 재활중인 삼성의 투수 배영수(26)는 색깔 있는 마우스피스를 착용, 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는 자못 희화적인 느낌을 상대방에게 준 적도 있다.
야구 선수들 가운데 유난히 투수들의 이가 부실한 것은 공을 던지는 순간에 이를 악물고 던지는 탓이다. 그래서 어떤 투수들은 이를 보호하기 위해 껌을 씹거나 심지어 복서들처럼 ‘마우스피스(mouthpiece)’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치아 보호용 마우스피스가 복서들에게는 필수품이지만 아무래도 이물감 때문에 투수들이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다. ‘국민투수’ 선동렬(44) 삼성 라이온즈 감독은 현역 시절 주위에서 마우스피스 착용을 권고받았으나 불변해서 안끼었다고 한다.
삼성 라이온즈의 주포 심정수(32)는 이가 가지런하게 나 있어 웃을 때면 아주 보기 좋다. 하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의 앞니는 의치다. 중학교(청원중) 때 공에 맞아 이가 부러지는 바람에 윗니 2개와 어금니가 망가져 의치를 해넣었다.
심정수의 ‘잘 생긴(?)’ 이에 현혹된 것인지 1996년 6월 9일 서울시 치과의사회가 심정수에게 ‘건치(健齒) 스포츠맨상’을 준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비단 야구선수 뿐만 아니다. 고도의 정신적인 노동을 하는 소설가들에게서도 그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정신적으로 피곤하면 치통을 앓는 수가 많다. 최근 으로 장안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소설가 김훈 씨는 지난 10월 13일 LA에서 가졌던 문학강연회에서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삼은 를 쓸 적에 이가 8대나 빠졌다고 털어놓았다. 이가 흔들려 입 안에서 오물거리다가 툭 뱉어내고 글을 썼다고 한다. 당시 강연을 들은 장윤호 LA 특파원에 따르면 김훈 씨는 로 받았던 동인문학상 상금 5000만 원 가운데 치아를 새로 해넣느라고 2500만 원이나 들었다고 한다.
투수의 성적과 치통은 상관관계가 있을까. 치통에 시달리다보면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야구인들의 증언이다.
박찬호는 1998년 12월 방콕아시안게임 당시 특수 제작한 마우스피스의 일종인 ‘스플린트(splint)’를 착용하고 공을 던졌다. 치아 보호를 겸한 턱관절 교정장치로 알려져 있는 스플린트는 투수 뿐만 아니라 타자들도 착용하기도 한다.
술과 담배를 안하는 박찬호는 이가 깨끗하지만 많이 삭아 있다. 현재 오키나와에서 대표팀의 일원으로 전지훈련 중인 박찬호는 연습 때도 반드시 스플린트를 낀다고 현지의 코치들이 전해줬다. 이가 상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콕 아시안게임 때는 주성노 당시 대표팀 감독의 주선으로 박찬호는 물론 대표팀 투수들이 스플린트를 만들어 간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에서는 마우스피스가 선수들의 집중력을 길러주고 경기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는 학술보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메이저리거들이 경기를 할 때 마우스피스를 착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가 부실해지는 것은 투수들이 피하기 어려운 직업병인 모양이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