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1일 대만 타이중에서 개막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아시아지역 1차 예선에서 한국 대표팀의 1, 2번 타자가 누가 될 지 궁금합니다.
밥상을 차려준다는 테이블 세터인 1, 2번 타자가 이번 대회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우리 대표팀이 지난 해 봄에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대회나 그동안 드림팀이 좋은 성적을 거둔 대회와 달리 마운드에선 김병현과 서재응이, 타선에선 이승엽 등이 빠져 전력이 약화돼 선제점, 다득점의 원동력인 테이블 세터의 몫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오키나와에서 전지훈련 중인 대표팀의 김경문(두산) 감독도 이 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구상 중인 안은 ① 이종욱(27. 두산)-② 정근우(25. SK)와 ① 이종욱-② 장성호(30. 기아)를 놓고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가지 안 모두 이종욱을 1번타자로 배정하고 있는데 정규 시즌 때는 타율 3할1푼6리(타격 7위)에 출루율 3할8푼2리로 두산이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플레이오프 때도 11타수 6안타의 맹타를 휘둘렀습니다. 하지만 SK와 한국시리즈에서는 27타수 5안타(1할8푼5리)로 부진했던 게 마음에 걸립니다.
정근우는 페넌트레이스에서 타율 3할2푼3리(타격 4위), 출루율 3할9푼5리로 지난 해보다 타격감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두산과dml 한국시리즈에서 정근우는 타율 1할6푼으로 저조했으나 최종전에서 결정적인 투런 홈런을 날려 체면을 세우고 코나미컵에서는 14타수 5안타(3할5푼7리)에 출루율은 5할을 기록해 SK의 선두타자(한번은 2번타자로)로 톡톡히 제 몫을 했습니다.
장성호는 올 시즌에 한국프로야구 사상 유일한 10년 연속 타율 3할 이상의 대기록을 기대했지만 지난 6월 27일 한화전에서 홈으로 뛰어들다가 신경현 포수와 충돌해 왼쪽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기록 달성이 좌절된 안타까움이 있으나 알아주는 최고의 교타자입니다.
다만 올해 타율이 2할8푼1리(출루율은 3할8푼2리)에 그쳤고 우투수에 비해서 좌투수에게 약간 약한 게 흠인데 9월 이후 자신의 컨디션을 만회했고 이번 대표팀에서는 지명타자로 나설 가능성이 커 부담이 없는 경기를 펼칠 수 있어 기대를 걸만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이종욱이나 정근우, 장성호 모두 날카로운 슬라이더와 포크볼에는 약하다는 점입니다.
어느 타자나 빠르고 각도가 큰 슬라이더나 아래로 떨어지는 포크볼에는 약한 법이지만 그래도 1, 2번 타자, 테이블 세터는 안타를 때리든지, 선구안이 좋아 볼넷을 고르든지, 아니면 기습번트안타에 능해 출루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번트안타나 내야안타는 이종욱과 정근우의 장기이나 이들이 대만전과 일본전에서 이 특기를 살릴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합니다.
차선책으로 작년 WBC 때 2번 이종범이 36살 최고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쳐준 것처럼 타격감이 좋거나 출루율이 높은 타자를 2번에 배치하는 것도 고려해볼만한 사안입니다.
지난 해 봄에 열린 WBC 대회 때는 1번타자로 이병규(당시 LG)가, 2번타자로 이종범(기아)이 주로 나서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만 이병규는 변화구에 약한 모습을 보이며 26타수 4안타(타율 1할5푼4리)에 그친 반면 2번 이종범이 25타수 10안타(타율 4할)의 깜짝 맹타를 과시해 4강에 오르는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이번 예선에서 가장 먼저 대결할 대만의 선발투수로 김경문 감독은 "퉁이 라이온스의 우완 판웨이룬이 될 것 같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전력분석팀도 판웨이룬(24)을 예상 선발로 꼽았고 비디오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김경문 감독은 "판웨이룬은 볼의 변화가 심하다. 한복판으로 들어오는 볼이 거의 없다. 볼도 좌우 상하로 변화가 있었다. 컨트롤도 좋아 치기 까다로운 투수이다"라고 잔뜩 경계하고 있습니다.
키 182cm, 몸무게 98kg의 듬직한 체격을 지닌 판웨이룬은 올해 16승2패, 평균자책점 2.26에 123⅓이닝 동안 사사구가 24개(경기당 1.75)에 불과할 만큼 제구력이 좋습니다. 지난해 3월 WBC 대회와 12월 도하 아시안게임 대만 대표로 뛰었습니다. 특히 지난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에서 주니치 드래건스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동안 4피안타 2실점으로 호투했습니다.
한국전 선발등판이 예상되는 일본의 우완정통파 투수 다르빗슈 유(21. 니혼햄)는 올시즌 일본프로야구에서 26경기에 15승5패, 평균자책점 1.82의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1차전에 등판해 주니치를 상대로 9이닝 4안타 1실점으로 완투승(3-1승)을 거두었고 최종 5차전에선 7이닝 5안타 1실점의 호투를 했으나 0-1로 팀이 져 패전투수가 됐습니다.
일본인 어머니와 축구선수 출신의 이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다르빗슈 유는 196cm의 장신에서 나오는 150km 이상의 빠른 공과 컷 패스트볼, 활처럼 휘는 슬라이더, 안정적인 수비로 발빠른 타자라도 출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세트포지션에서 견제동작이 좋아 도루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습니다.
호시노 감독은 다르빗슈 유 외에 한국 대표팀에 좌타자가 많아 좌투수 나루세 요시히사(22)를 내보낼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루세는 일본대표팀에 뽑힌 선발 투수 6명 가운데 유일한 좌투수입니다. 프로 4년째의 나루세는 올해 지바롯데 마린스의 에이스로 나서 16승1패, 평균자책점 1.82라는 빼어난 성적을 올렸습니다. 평균자책점은 리그 1위, 다승은 2위입니다. 나루세는 가장 빠른 볼이 140㎞대 중반에 불과하나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등 변화구 구사력이 뛰어납니다.
김경문 감독은 이번 대표팀 선정에 국제대회 경험이 많은 박재홍(34. SK)과 ‘국민 우익수’라는 칭호를 들으며 국제대회에서 진가를 발휘한 좌타 외야수 이진영(27. SK)을 대표팀에서 제외해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김 감독은 “당초 박재홍은 주전은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이진영을 톱타자로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면서 “둘다 기동력에서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밀려 배제했다”라고 기동력의 야구로 이번 대회의 승부를 걸겠다고 밝혔습니다.
아무리 빠른 발을 가진 선수라도 출루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발 야구’ ‘기동력 야구’보다는 대표팀 타자 중 어느 선수가 대만과 일본을 상대해 가장 출루율이 높은 지를 파악해 테이블 세터로 기용하는 게 우선일 것 같습니다. WBC 때의 이종범과 같은 타자가 등장하길 기대합니다.
천일평 OSEN 편집인
(위에서부터)정근우, 이종욱, 장성호의 훈련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