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마해영과 진필중, 소사처럼 ‘백의종군’해라
OSEN 기자
발행 2007.11.23 11: 38

빛과 그늘은 공존한다. 한켠에선 60억 원 이상 호가하며 한껏 몸값을 부풀리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원매자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야구판을 떠나야하는 딱한 처지에 놓인 선수도 있다.
아직도 우리네 프로야구판은 시장 원리에 따르기보다는 인정에 좌우되고 구단의 자존심 같은 엉뚱한 주변 요인에 의해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파탄지경인 현대 유니콘스 구단은 사겠다는 기업이 없어 사실상 표류상태이지만 올해 FA 자격을 얻은 두산 베어스 출신의 김동주(31)는 구단이 제시한 62억 원의 거액도 마다하고 몸값을 저울질하고 있는, 어찌보면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통하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마해영(37)과 진필중(35) 같은, 한 때 프로야구판에서 이름을 날렸던 몇 선수들은 구단의 내침을 당한 뒤 선수생활 연명의 길을 암중모색하고 있는 형편이다.
과연 이들이 야구판에서 살 길은 없을까. 삼국지의 제갈량이 부린 진법처럼 ‘사문(死門)’이 아니라 ‘생문(生門)’을 찾아 나서야한다. 다시말하자면, 백의종군하는 것만이 이들이 살길이다. 과거의 자신의 이름이나 연봉에 얽매이지말고 자유로운 생각으로 백지상태에서 새출발을 선언해야 한다.
최저연봉이라도 받고 스프링트레이닝에 합류해 실력을 입증해 보인다면, 희박하긴 하지만 야구판에 다시 설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비근한 예로 메이저리그의 새미 소사(39)나 올해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나카무라를 들 수 있다.
1990년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홈런타자로 군림했던 새미 소사는 마이너리거로 올봄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의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당시 팀의 첫 훈련이 시작되기 두 시간 전에 연습장에 나타나는 등 성실한 자세로 구단의 눈에 들어 결국 메이저리거로 신분 상승을 이루었다.
소사는 텍사스와 1년간 50만 달러 계약을 맺었고 40인 로스터에 포함되면 210만 달러를 추가로 받는 스플릿계약(Split Contract)으로 올 시즌을 시작했다. 1998년 마크 맥과이어와 홈런왕 경쟁을 벌이며 66홈런을 때려 내는 등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간 해마다 50홈런 이상 기록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그로선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2004년 부정방망이 사건에 이어 이듬해 스테로이드 복용설에 휘말리며 퇴쇠 기미를 보였던 소사는 2005년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옮겨 102경기에 출장, 타율 2할2푼1리, 14홈런, 45타점으로 명성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남긴 데다 팀 동료와의 불화로 팀을 떠나 일본 프로야구 진출도 모색했지만 실패한 뒤 1년을 온전히 쉬었다.
지난 1989년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데뷔한 뒤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컵스, 볼티모어를 거친 그는 빅리그 17년 동안 무려 588홈런을 쳐냈고 올해 빅리그 복귀무대에서 21홈런을 보태 개인통산 600홈런 고지(6월21일 시카고 컵스전, 배리 본즈, 행크 애런, 베이브 루스, 윌리 메이스에 이은 메이저리그 역대 5번째)를 넘어섰다.
1년간의 휴면기를 거친 소사는 시범경기에서 맹활약, 개막전 빅리그 입성에 성공했고 주로 지명타자로 나서 114경기에서 타율 2할5푼2리, 21홈런, 92타점을 기록하며 옛 기량을 되찾았다.
올해 기본 연봉 50만 달러 외에 성적에 따른 보너스로 135만 달러를 추가로 벌었던 소사는 내년 시즌 자신의 몸값으로 최소 700만 달러를 책정했다. 올해 실력을 검증받았으니 이번 겨울 FA 시장에서 제 몸값을 확보하겠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주니치 드래건스의 나카무라 노리히로(33)는 올해 일본시리즈 MVP(최우수선수)로 탄생,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떠올랐다. 나카무라는 한 때 연봉 5억 엔을 받던 일본 정상급의 강타자였다. 1992년 긴테쓰에 입단, 2005년 LA 다저스를 거쳐 2006년 시즌 후 오릭스에서 방출될 때까지 개인통산 319홈런을 기록했고 2000년 퍼시픽리그 홈런왕, 2000년과 2001년 타점왕에 올랐던 쟁쟁한 선수였다.
그러나 나카무라는 성적 부진으로 올 시즌을 앞두고 지난 1월에 오릭스에서 퇴출 통보를 받고 방황하다가 주니치의 부름을 받고 어렵사리 프로구단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올해 2월 25일 주니치에 육성선수로 입단할 당시 그의 연봉은 400만 엔. 2006시즌(2억 엔)에 비하면 50분의 1에 불과했다. 그의 배번은 당초 205번이었으나 1군으로 올라가면서 99번을 달았고 연봉도 1군최저인 600만 엔이 됐다. 인생 막장에 선 것같은 신세였던 그는 눈부시게 변신했다.
주니치 오치아이 감독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를 데려가 주전 3루수 자리를 맡겼다. 그는 올 시즌 센트럴리그 타격 15위(타율 .293)에 오르며 20홈런, 79타점을 기록, 주니치가 리그 2위를 차지하는데 큰 몫을 해냈다.
나카무라는 포스트 시즌, 특히 일본시리즈 들어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일본시리즈 5게임에서 4할4푼4리(18타수 8안타)로 최고 타율을 기록했고, 4타점과 2루타 4개를 날렸다. 그는 마침내 MVP로 우승 무대에 우뚝섰다.
이제 우리도 새미 소사나 나카무라 같은 선수를 보고 싶다. 가득이나 몸값 거품론이 일고 있는 마당에 아무런 전제도 내세우지 않고 온몸을 던져 재기의 불꽃을 활활 피워내는 그런 선수 말이다.
아직도 시간은 있다. 만약 마해영이나 진필중 같은 선수가 진정 재기를 노린다면, 신고선수라도 뛰겠다는 각오를 만천하에 알리고 구단의 부름을 기다려야 한다. 프로야구 선수가 한 시즌을 뛰려면 당해년도 1월 31일까지 선수계약 승인신청을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하면 된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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