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11번을 선호한 선동렬과 다르빗슈의 엇갈린 사연
OSEN 기자
발행 2007.12.28 10: 16

흔히 “당신의 18번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자주 듣는다. ‘잘 부르는, 또는 즐겨부르는 노래가 무엇이냐’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버려야 마땅한 일제 찌꺼기 말이다.
‘18번(쥬하치방)’은 일본어로 가부키에서 나온 용어이다. 가부키는 에토시대에 성행한 일본 고유의 민중연극으로 알려져 있다. 가부키 배우 이치가와 집안에 전해내려오는 18가지 광언(狂言)을 ‘가부키 18번’으로 부른 데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유래야 어찌 됐든 야구판에서는 18번을 등번호로 애용한다. 특히 일본에서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보급 투수 선동렬(44)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해태 타이거즈 시절에 달았던 등번호였다. 선동렬은 1985년 해태에 입단할 당시 11번을 달고 싶어했다.
차범근 수원삼성 축구팀 감독과 최동원(현 한화 이글스 코치)의 현역시절 등번호이기도 했던 11번은 선동렬이 광주일고와 고려대 시절에 달고 뛰었다. 선동렬로서는 그만큼 정이 든 등번호였다. 그러나 11번은 이미 팀의 간판 간판타자로 자리를 잡고 있던 김성한이 차지하고 있었다.
선동렬이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바로 18번이었다. 그 번호도 이미 장진범이 달고 있었지만 김응룡 당시 해태 감독(현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18번은 에이스 번호”라고 우기면서 선동렬에게 넘겨줬다. 선동렬의 이 등번호도 한 차례 풍파를 겪었다. 해태 구단은 1995년 시즌을 끝으로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한 선동렬의 등번호 18번을 영구결번시켰다.
그러나 해태를 인수한 KIA 구단이 2002년 1월 24일 슈퍼루키로 주목을 받고 있던 김진우에게 이 18번을 대물림 시킨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주위의 비판적인 여론에 굴복, 없었던 일로 만든 적이 있다. 물론 그 이후 KIA에는 18번이 결번으로 남아 있다. 선동렬은 주니치에서는 20번을 달았다.
일본프로야구판에서 18번은 그 팀의 에이스가 달 수 있는 상징성을 지닌 등번호이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쓰자카 다이스케(27)와 2006시즌 후 퇴단한 명투수 구와타 마쓰미(38)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달았던 배번이기도 했다.
그 번호를 마다한 선수가 있다. 다르빗슈 유(21. 니혼햄 파이터스)가 그 주인공이다. 이란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르빗슈는 최근 니혼햄 구단측이 자신에게 팀 에이스의 상징적인 등번호인 18번으로 변경할 것을 권유했으나 그는 한마디로 딱 잘라 거부해버렸다.
니혼햄의 2년 연속 퍼시픽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웠던 그는 일본시리즈 직후 구단측이 코치진을 해임하자 공개석상에서 구단측의 처사를 비난하는 등 쓴소리도 서슴치 않는 직설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12월 22일 구단과의 연봉 재계약 협상 테이블에서 구단이 등번호 변경을 타진하자 입단할 때부터 달아 애착을 갖고 있는 11번을 그대로 고수하겠다고 도리질했다.
니혼햄은 그의 의사를 존중, 내년 시즌에도 배번 11번으로 뛰도록했다. 니혼햄 구단에는 이와모토 쓰토무가 2005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후 2년간 등번호 18번의 임자가 없는 상태였다.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며 팀의 퍼시픽리그 연패에도 크게 공헌한 다르빗슈는 니혼햄에서는 물론 2008베이징올림픽 일본대표팀에서도 에이스 노릇을 하고 있다. 니혼햄은 다르빗슈가 사와무라상도 받고 일본대표팀에서 18번을 달았던 인연을 고리로 등번호 변경을 제안했다가 머쓱해진 셈이다.
일본 대표팀 인선을 앞두고 일본에 귀화했던 다르빗슈는 ‘앞으로 니혼햄 구단의 에이스의 등번호는 11번으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내년 3월 한국이 베이징올림픽 최종 예선을 통과한다면, 본선 무대에서 다르빗슈와 맞겨룰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일본은 당초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예선 한국전에 다르빗슈를 선발로 내세우려다가 나루세(지바롯데 마린스)로 바꾸었다. 일본이 한국과 본선무대에서 만난다면 다르빗슈 선발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며 고심할 것이다. 그는 한국이 딛고 넘어서야할 대상이다.
한국 프로야구단 가운데 등번호가 18번인 선수는 두산의 김동주를 비롯 한화의 기대주 유원상, LG의 이동현 등이다.
11번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투수들이 선호하는 번호이다. 현재도 삼성 조현근, 한화 최영필, LG 김민기, 현대 이상렬, 롯데 최대성, 두산 이용찬 등 투수들이 등번호로 쓰고 있다. 이들 중 구속 150㎞를 웃도는 강속구로 주목을 받았던 최대성과 올해 두산 새내기 가운데 최고액(계약금 4억 5000만 원)을 받았던 이용찬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둘다 제구력 난조와 팔꿈치 수술 등의 이유로 재활중이지만 장차 소속팀의 마운드를 책임질 수 있는 재목감이라는 점에서 11번을 빛낼 유망주로 볼 수 있겠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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