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시즌 후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전신) 구단 매각설이 나돌았다. 그 때 해태 구단이 호가한 몸값은 800억 원. 현 싯가로 따진다면 1500억 원이 넘는 거액이다.
당시 해태 구단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이같은 사실을 확인해주면서 KT가 고작 60억 원을 내고 프로야구판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혀를 찼다. 프로야구 창립 멤버였던 해태 그룹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1980년대 중후반 이후 매각설이 떠돌았고, 1987년에는 대우나 현대 등 구체적인 인수후보 기업 이름까지 나왔으나 성사되지는 못했다.
1997년 IMF 사태가 터지고 난 뒤엔 해태 뿐만 아니라 쌍방울과 두산 등 일부 구단도 매각설이 있었다. 당시만해도 500억 원 이상 호가한 것으로 야구인들은 증언한다. 해태는 결국2001년 210억 원에 KIA로 팔렸다.
그로부터 10년 세월이 흐른 이즈음,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와 그에 따른 재창단 비용이 60억 원으로 매겨졌다. 해태 매각설로부터 20년 뒤인 2008년 1월 현재 프로야구단의 가치는 단순 액면가로만 따져봐도 무려 1/13로 폭락한 셈이다.
한국 최고의 인기종목이라는 프로야구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역대 프로야구단 매각과 가입 사례를 한 번 살펴보자.
우선 기구한 운명에 놓인 현대 구단의 경우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1985년 5월1일 삼미 슈퍼스타즈는 70억 원의 매각대금을 받고 청보 핀토스에 구단을 넘겼다. 청보는 다시 1987년 10월 6일 태평양 돌핀스에 50 억원(부채는 별도)에 팔았다. 1995년 8월 31일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현대가 지불한 매입대금 총액은 470억 원이었다.
팀 매각과는 별도로 1985년 3월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 전신)가 제7 구단을 창단(리그 참여는 1986시즌부터)하면서 한구구야구위원회(KBO)에 낸 가입비는 30억 원이었다. KBO는 이 이가입비를 바탕으로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야구회관을 건립했다. 그 후 1990년 쌍방울이 전북지역을 연고로 제8 구단을 창단할 당시에는 50억 원(해태 연고권 분할 보상금 10억 원 포함)을 냈다.
LG 트윈스는 1990년 1월 18일 130억 원(30억 원은 광고 협찬)에 당시 인기구단이었던 MBC 청룡을 사들였다. 당시만해도 이같은 매각대금은 헐값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해체와 재창단이라는 절차를 밟았던 SK 와이번스는 2000년 3월 31일 250억 원의 가입비를 내고 프로야구단을 만들었다. 쌍방울은 1997년께 대우와 매각 협상을 벌일 당시 500억 원을 호가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몇 년 뒤 결국 공중분해 됐다.
KBO는 작년 10월 KT와 인수협상에 나설 당시 120억 원의 가입비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KBO가 보증한 현대 구단의 그 시점의 차입금에 맞춘 액수였지만 KT측의 사외이사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딛혀 협상이 진척되지 못햇다. 결국 KBO는 그 절반값에 어렵사리 KT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격세지감이 든다. 1980~1990년대에 호황을 누렸던 프로야구 시장은 위축돼 있다. 어떤 면에서 프로야구단의 가치 하락은 자업자득이고, 자승자박의 결과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우리네 야구단들은 모기업의 ‘홍보전위대’ 구실에 안주하고 자족해왔다. 프로야구를 ‘산업’으로 키우고 발전시킬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그저 성적만 올리면 관중이 들어온다는 안이한 현실 인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용구장 하나 마련하지 못했고, 야구단의 수익구조는 계속 악화됐다. 한해 적자폭이 200억 원이 넘는 구단도 있다. 이런 적자구조로는 더 이상 어떤 기업이라도 선뜻 손을 대기 어려운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20년 이상이 흐른 지금에서야 수익구조 개선에 각 구단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도 흑자기조로 돌아서기에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한다. 좁은 시장에 걸맞지 않게 선수들의 몸값은 잔뜩 부풀어 있다. KT의 프로야구단 참여 비용이 60억 원인 마당에 두산 베어스의 FA선수 김동주의 몸값이 62억원(당초 구단 제시액)을 호가한다는 현실 앞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프로스포츠는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한다. 팬과 선수, 구단이 맞물려 산업으로서의 동력을 갖고 판을 키워야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네 프로야구판은 선수의 가격만 지나치게 비대해진 기형적인 구조로 돼 있다. 과격한 표현을 하자면, ‘자해적인 구조’이다.
근년에 모구단의 감독이 시즌 도중에 경질된 일이 있었다. 감독직무대행을 맡았던 한 야구인은 막상 임시 지휘봉을 잡고나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고는 기가막혀 말문이 열리질 않았다고 한다. 주전선수들 대부분이 구단측과 옵션계약을 맺었고, 시즌 막판이 되자 옵션을 채운 선수들은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내세워 뒷전으로 빠져버렸다. 라인업조차 도저히 꾸릴 형편이 안됐다.
팀 성적이야 어찌됐든 제 한몸만 건사하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런 상황에서 선수단이 제대로 굴러갈 턱이 없었다.
프로야구 외국인선수의 몸값 상한선은 35만달러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몸값이 지켜진다고 보는 야구 관계자는 아무도 없다. 뒷돈이 안들어가면 명색이라도 메이저리그 물을 먹어본 선수를 데려오기란 쉽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구단들 스스로 그 틀을 깨버렸고 상한선은 유명무실해졌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매년 시즌 후 프로야구선수노조가 앞장서서 이런저런 자선행사나 야구교실을 여는 등 끊임없이 팬들 곁으로 다가가는 노력을 줄기차게 한다. 비근한 예로 작년 시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나 다카하시 히사노리 같은 간판 선수들이 저마다 야구교실을 열었다.
우리네 현실은 어떤가. 서해 기름유출사고가 터졌지만 대부분의 유명선수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이혜천 등 두산선수들 일부만 다녀왔을 뿐이다. 지역연고팀인 한화 구단도 임직원들만 기름제거 자원봉사에 참여했을 뿐이다.
시쳇말로 총체적인 인식 부재다.
야구판은 곪아터지고 있는데, 거기에 밥줄을 대고 있는 구성원들은 그저 제몸 챙기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이런 인식으로는 야구판을 산업으로 육성하기 힘들다.
오는 8일 KBO 이사회가 열린다. 이번 이사회에선 가부간에 KT의 가입 문제가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차제에 프로야구 7개 구단들은 냉철하게 현주소를 재인식하고 공멸이 아닌 상생의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