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한 해, 봉중근(28. LG 트윈스)을 필두로 김선우(31. 두산 베어스), 서재응(31. KIA 타이거즈) 등 3명이 빅리거의 부푼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넜다. 그 해 11월 7일 봉중근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계약금 120만 달러), 하루 뒤인 8일에는 김선우가 보스턴 레드삭스(계약금 130만 달러), 서재응은 20일에 뉴욕 메츠(계약금 130만 달러)에 공식 입단했다.
그로부터 10년 세월이 흐른 2008년 1월 현재, 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국 무대로 귀환했다. 봉중근이 제일 먼저 2006년 5월 18일에 LG 유니폼을 입었고, 서재응은 구랍 7일 고향팀인 KIA 타이거즈에 안착했다. 그리고, 김선우마저 마침내 1월 10일 두산 베어스와 입단 계약을 마쳤다.
메이저리그 출신 투수 3인방의 귀환으로 올해 한국 프로야구판은 풍성한 화제와 함께 이들의 마운드 맞대결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3명 모두 선발 요원이고 빅리거 타자 출신인 최희섭(29. KIA)과도 어우러져 투타 힘겨루기가 흥미로운 볼거리로 등장했다.
김선우는 10일 두산 입단 기자회견 석상에서 서재응과의 맞대결 예상에 대한 질문을 받자 “(서)재응이와는 친한 친구 사이지만 한 선수가 경쟁자가 될 수는 없다. 맞대결을 할 경우 열심히, 재미있게 할 것”이라고 원론적은 답변을 했지만 “상대할 부분이 크고, 그 큰부분을 물리쳐야한다”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즉 특정 선수 한명이 아니라 야구판 전체 선수를 상대로 설정해놓고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귀환 3인방은 약간의 시점 편차가 있긴 하지만 공교롭게도 떠나갈 때와 돌아올 때가 엇비슷하다. 조건도 그리 큰 차이가 없다. 빅리거로의 큰 꿈을 접고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도 같다. 전성기 시절 한결같이 시속 150㎞의 강속구를 뿌려댔다는 공통점도 있다.
LG의 2007년 신인1차 지명선수 신분으로 마운드에 섰던 봉중근은 계약금 10억 원, 연봉 3억 5000만 원 등 총 13억 5000만 원(구단 발표)에 입단했다. 이미 1년간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 섰다는 점이 적응 과제를 안고 있는 서재응, 김선우와는 다른 점이다.
1997년 신일고 재학 시절 미국으로 건너갔던 좌완 봉중근은 애틀랜타 시절인 2002~2003년, 신시내티로 이적한 2004년 등 3시즌 동안 빅리그에서 활약하며 통산 7승4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5.17을 기록했다. 마이너리그 성적은 46승 41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3.70. 2007시즌 한국무대에서 6승 7패, 평균자책점 5.32로 기대치에 미흡한 성적을 남겼다.
서재응과 김선우의 대우는 KIA와 두산 양 구단이 짠 것처럼 총액(15억 원)이 같다. 서재응은 계약금 8억 원, 연봉 5억 원, 옵션 2억 원, 김선우는 계약금 9억원, 연봉 4억원, 옵션 2억원으로 구단측이 발표했다.
둘의 조건은 봉중근(LG.13억 5000만 원)보다 높지만 2007년 5월 KIA에 입단한 최희섭(15억 5000만 원)보다는 약간 낮다. 다년 계약도 아니다.
우완 서재응은 인하대 시절인 지난 1998년 뉴욕 메츠에 입단, 2006년 LA 다저스로 이적했고 다시 시즌 중반 탬파베이로 팀을 옮겼다. 빅리그 통산 성적은 118경기에 출전, 28승 40패, 평균자책점 4.60을 기록했다.
지난 1996년 OB베어스에 고졸 우선 지명된 김선우는 지난 1997년 고려대를 중퇴하고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한 뒤 몬트리올과 신시내티, 콜로라도, 샌프란시스코 등을 거치며 메이저리그에서 11년 동안 활약한 우완 정통파 투수다.
이들이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맞대결한 적이 있을까.
봉중근-김선우, 봉중근-서재응 선발 카드가 성사된 적은 없다. 비록 선발 맞대결은 아니었지만 서재응- 김선우는 한 번 대결을 펼쳤고 최희섭은 김선우를 상대로 4차례 타석에 들어서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최희섭은 LA 다저스 시절인 2005년 9월 14일(이하 한국시간) 당시 콜로라도 로키스의 김선우(28)와의 첫 투타 맞대결에서 우익수 희생플라이를 기록했다.
최희섭은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로라도전에 선발 출장하지 못했으나 다저스가 3-6으로 추격전을 벌이고 있던 4회말 1사 1, 3루에서 투수 엘머 드센스 대신 대타로 나서 김선우의 4구째 87마일짜리 직구를 잡아당겨 우익수쪽 깊은 뜬공을 날렸다.
그에 앞서 김선우와 최희섭은 세 타석서 대결을 벌인 바 있다. 김선우가 몬트리올, 최희섭이 플로리다 유니폼을 입고있던 2004년 4월 14일 엑스포 스타디움에서 벌인 첫 대결에선 6번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한 최희섭을 구원 등판한 김선우가 8회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최희섭이 플로리다에서 다저스로 전격 트레이드된 뒤인 2004년 8월24일 경기에선 선발 등판한 김선우를 상대로 2회 첫 타석에서 우익수 플라이, 4회 두 번째 타석에서 우전안타를 기록했다.
한솥밥을 먹게 되는 바람에 앞으로 맞겨룰 기회가 원천봉쇄 된 서재응과 최희섭은 빅리그 무대에서 5게임에서 맞상대, 최희섭이 통산 12타수 4안타, 타율 3할3푼3리로 우위를 점했다. 4안타에는 2루타와 홈런이 한 개씩 포함돼 있다.
최희섭이 플로리다 말린스 소속이던 2004년 6월 4일 서재응은 말린스전에서 6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는데 유일한 실점이 최희섭이 2루타를 치고 나간 뒤 득점한 것이었다. 이어 그 해 7월 10일 맞대결에서는 서재응으로부터 가운데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포를 쏘아올려 최희섭이 완승을 거둔 바 있다.
김선우와 서재응은 2004년 7월 22일 한 번 맞대결을 벌인 적이 있다.
뉴욕 메츠 셰이스타디움에서 서재응이 선발로 등판, 6이닝 3실점으로 호투할 때 김선우는 1_4로 뒤진 5회부터 선발 존 패터슨의 바통을 이어 받아 마운드에 올라 서재응과 멋진 대결을 펼쳤다.
서재응은 6회까지 1실점으로 잘막았으나 7회 구원투수 마이크 스탠턴이 동점을 허용해 승리를 아깝게 놓쳤고 김선우는 2이닝을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처리해 서로 막상막하의 투구실력을 뽐냈다.
서재응은 시범경기에서 박찬호(35)에게 홈런을 얻어맞은 적도 있다.
서재응이 신인이던 1998년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에서 바비 발렌타인(현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 감독) 메츠 감독은 상대팀 LA 다저스에서 박찬호가 등판하자 서재응을 내세워 맞대결을 시켰다. 서재응은 다저스 주축 선발로 자리를 잡은 박찬호와 마운드에서는 대등한 대결을 벌였지만 박찬호가 타석에서 서재응을 상대로 대형 홈런을 터트렸다.
홈런을 내준 다음 서재응은 사석에서 "안타는 얻어맞아도 좋다는 기분으로 일부러 직구만 던졌는데 찬호 형이 된통 휘둘러 홈런을 내줬다”며 볼멘소리를 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메이저리거 출신으로 큰 꿈을 접고 귀환한 투수들은 봉중근, 서재응, 김선우 이전에 이상훈(은퇴), 조진호(삼성 라이온즈), 구대성(한화 이글스) 등이 있다. 이상훈과 구대성은 일본 무대에서 미국을 거쳐 들어온 경우이고, 조진호는 메이저리그(보스턴 레드삭스) 물을 먹고 2003년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었다가 병역비리에 연루 돼 마운드를 떠났지만, 올 시즌 삼성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빅리거의 잇단 귀환 행렬을 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일본 선수들이 프로에서 일정한 실력을 쌓아 인정을 받은 다음 빅리그 무대로 옮기는 경우와는 달리 한국 선수들은 고교 졸업 직 후 일찌감치 미국으로 갔다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되돌아 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선우는 “꿈을 가지고 어린 나이에 미국에 갔는데 틀에 박힌 테두리 안에서만 생활하는데다 뒤 버팀목도 없고 나 자신을 탄탄히 할 수 있는 점도 없어 버티기 어려웠다”는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일본 선수들처럼 프로를 먼저 경험하고 미국 무대에 도전했다면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되돌아봤다. 김선우는 “관심 있는 후배님들이 있다면 기꺼이 조언을 해주겠다”고 덧붙였다.
어찌됐든 올해 한국 프로야구는 이들이 메이저리그의 경험을 마운드에서 어떻게 펼쳐나갈 지 주목받는 한 해가 될 것이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