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그룹의 ‘왕 회장’인 고 정주영 회장은 1981년 서울 올림픽 유치위원장으로, 1982~84년은 대한체육회 회장으로 일하며 스포츠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체육회장 시절 프로야구가 출범했는데 정 회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운동 선수도 최고의 수입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인만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선수들도 그 분야의 대표적 스타라면 경제적으로 많은 수입을 올리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아마 스포츠 수장 범주를 넘어선 견해를 여러 차례 밝힌 적이 있습니다. 현대는 ‘왕 회장’의 소신에 따라 1983년 프로축구팀을 창단해 선수들과 지도자에게 다른 구단보다 좋은 대우를 해주었고 프로야구도 1996년에 뛰어들어 선수 스카우트에 바람을 일으키며 파격적인 계약금과 고액 연봉을 선수들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프로야구에서 일부 선수들의 연봉이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 것은 1999년 FA(자유계약선수) 제도가 도입되면서 시작됐습니다. 타자는 정규 시즌 경기에 ⅔ 이상 출장하고, 투수는 규정 이닝에 ⅔ 이상 투구에 9시즌을 뛰면 FA 자격을 얻어 자신이 원하는 다른 구단과 새롭게 계약할 수 있는데 일부 스타급 선수들을 잡기 위해 계약금과 연봉이 엄청나게 폭등하게 됐습니다. FA 첫해 LG 포수 김동수가 삼성으로 옮기며 3년에 8억 원을 받고 스타트를 끊었는데 근래엔 4년에 60억 원 이상 받는 ‘갑부’선수도 나왔습니다. 또한 FA 신청 선수가 다른 팀과 계약을 할 경우 계약 구단은 원 소속구단에 보상금을 내주는 제도가 병행됐는데 보상제가 도리어 선수들 몸값을 부풀리며 구단 적자의 촉매제가 됐습니다. 이적 구단이 내야 하는 보상금은 전액 현금으로 할 경우 450%(전년도 연봉기준)나 됩니다. 다른 방법으론 선수 1명(보호 선수 18명 제외)과 현금 보상 300%여서 웬만한 구단은 감당하기 어렵다고 처음에는 생각했지만 전력 증강을 위해 너도나도 어쩔 수 없이 돈 보따리를 제시해야 하는 통에 구단의 적자폭만 커졌습니다. 프로야구단 한해 예산이 보통 150억~250억 원이 되고 적자는 150억 원 안팎이 되는 판에 선수 한 명의 몸값이 4년에 60억 원이라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입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려는 KT가 가입금 총액 60억 원도 많다며 발을 빼는 마당에 선수들 계약금과 연봉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여론은 당연히 나올만 합니다. 이에 따라 프로야구의 거품을 빼자는 논의가 최근 비등하면서 프로야구 8개 구단 단장들은 선수 몸값 폭등의 원인이 됐던 FA 제도를 폐지하자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또 선수들 연봉도 삭감하자는 의견이 나와 프로야구 선수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러나 3000만 원 이하의 소액 연봉을 받는 선수가 전체의 51%이고 평균 연봉은 6800만 원대인 현재 상황에서 적게 받는 60% 가량의 선수들은 삭감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90명 가까이 되는 억대 연봉 선수들이 연봉을 깎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여간 8개 구단은 올해부터 서서히 구단 예산을 200억 원대에서 100억 원대로 낮추는데 총력을 기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중의 대표적 삭감 방침의 하나가 FA 제도 폐지를 들고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원칙적인 FA 제도는 남겨놓아야 한다는 게 전문 야구인들의 주장입니다. FA 자격은 주되 연봉액만 낮추는 방안을 논의해야지 자격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프로스포츠를 운영하지 않겠다는 소리와 똑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우리나라는 9시즌을 제대로 뛰어야 완전한 FA 자격을 주었고 7년이 지나면 구단의 재량에 따라 해외에서 실시하는 포스팅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이 제도를 살려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6년을 소화하면 FA 자격이 주어지나 실제는 3시즌이 지나면 연봉 조정 신청을 할 수 있고 4년이 지나면 자격이 발생합니다. 반면 일본은 연간 150일 이상 경기에 출장하면서 10년차가 되면 자격을 얻어 우리와 비슷한데 다만 새 구단과 계약할 때는 전년도 연봉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해 치솟는 연봉액을 어느 정도 예방하고 있습니다. 사실 메이저리그처럼 한 구단서 6년을 일했다면 옮길 자유를 주는 게 올바른 FA 제도 운영이라는 게 야구인들의 견해입니다. 메이저리그가 6년제를 채택한 것은 구약성경 첫 편 에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6일간 일하고 7일째는 안식일로 삼은 것을 본땄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도 6년제를 받아들여 선수들의 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주는 게 바람직합니다. 연봉은 지금보다 적더라도 자신이 뛸 곳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일찌감치 터 주는 것이 야구판이나 선수 개인에게 활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선수 자신이 국내 다른 구단이나 선진 야구를 배우고 돈을 벌 수 있는 미국, 일본의 진출할 수 있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FA 제도 폐지보다는 제도는 살리되 연봉액 인상선만 제한하고 자격 부여 연도는 6년으로 줄여 선수들에게 자유를 주고 해외에도 도전할 기회를 늘려 줘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게 어떨까요? ‘왕 회장’의 운동선수들이 기업인 못지 않게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소망은 중단 됐습니다. 그 분의 아들이 12년 전 470억 원(현금 400억 원, 부채인수 70억 원)을 주고 사들인 유니콘스 야구단이 지금은 60억 원으로 떨어진 세상이 됐으니 부득이 일단 멈춤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선수들에게 자유로운 운신의 기회를 일찌감치 만들어 주어 한국야구 발전에 한몫을 할 제도를 제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천일평 OSEN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