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평의 아이&메모]한동화 감독, 오토바이 배달 8년만에 중국야구단 지휘봉 잡다
OSEN 기자
발행 2008.02.12 10: 42

“8년간 쉬었는데 예전처럼 힘을 낼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8년간 뭉쳤던 응어리를 풀 기회가 생겼으니 자신있습니다.” 왕년의 발바리 한동화(63) 씨가 중국 프로야구 베이징 타이거스의 감독을 맡기 위해 지난 2월 10일 출국했습니다. 한동화 감독이 ‘8년 공백’을 몇차례 이야기하는 것은 지난 8년간 오토바이 배달을 하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야구 역대 최고의 2루수로 꼽히는 한동화는 선린상고-제일은행-해병대-제일은행 시절 감투상, 미기상, 도루상, 득점상은 도맡아 차지했습니다. 1969년 해병대에서 뛸 때는 실업야구 타격상(타율 3할2푼2리)에 최우수선수상(MVP)를 수상하는 등 잘 때리고, 잘 달리고, 수비 좋은 3박자를 갖춘 선수였습니다. 프로가 출범하면서 MBC 청룡의 원년 코치로 1983년에는 백인천 감독이 갑자기 퇴임하며 감독 대행을 맡았고 이후 청보와 롯데, 쌍방울 코치로 일하다 1993년부터 95년 5월까지 쌍방울의 감독을 역임했습니다.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을 지낸 뒤 1996년 10월부터 20년만에 신일고를 다시 지휘한데 이어 휘문고(1999~2000년) 감독을 맡는 등 지도자로 잘 달리던 그는 8년 전 부동산 사기를 당하면서 제동이 걸렸습니다. “이웃에 사는 사람이 수원 부근에 좋은 땅이 있다고 권하길래 샀다가 결국 사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1990년대 방배동에 16억 원짜리 부동산을 지니고 있던 한 감독은 더 좋은 물건이 나왔다는 말에 속아 결국 재산을 몽땅 날리고 말았습니다. 휘문고 감독을 끝으로 2000년 그라운드에서 물러난 한동화 씨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김밥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부인이 새벽부터 밤 1시까지 김밥을 만들고 손님을 맞았으며 본인은 오토바이 배달을 했습니다. 맛있다는 소문이 나자 새벽에도 단체 주문이 밀려 하루에 4~5시간만 자며 억척같이 생활했습니다. 세 자녀들 학비를 대며 3년간 자영업을 하던 한동화 씨는 분당으로 이사해서는 남의 가게에서 족발, 통닭 등 배달일을 계속하다가 오토바이 사고를 내 발뒤꿈치를 크게 다치기도 했습니다. “배달일을 하겠다고 했더니 주인들이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꺼려 머리에 염색을 하고 아파트촌을 돌아다니며 자신있는 모습을 보여주느라 힘들었죠.” “처음에는 한달에 120만 원을 받다가 나중에는 베테랑 오토바이맨이 돼 180만 원까지 받았습니다.” 분당에서 사글세방에 살다가 이제는 전셋집으로 옮겨 어느 정도 안정된 그에게 사돈이자 선린상고 후배인 안계장 전 배재고 감독이 중국 프로에서 지도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월 10일 베이징에 가서 열흘간 베이징 타이거스의 팀 훈련을 지켜보고 팀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쪽 사람들 앞에서 8년만에 다시 노크배트를 잡으니 나도 떨렸는데 예전의 솜씨가 나와 자신을 갖게 됐습니다.” 한 감독은 국내 지도자 중 노크의 최고 달인으로 꼽힙니다. 당시 현지에서는 북한 출신으로 중국을 자주 오가는 나이 일흔의 장복순 여사가 있었는데 한국 스포츠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체육인으로 한동화 감독의 경력에 대해서도 상당히 알고 있어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베이징 타이거스가 처음에 그에게 제시한 급여는 현지의 프로야구 감독이 보통 받고 있는 한달에 2만5000 위안~3만 위안(한화 390만 원)이었는데 한 감독은 숙소를 호텔이 아닌 팀의 기숙사 생활을 하는 대신 4만 위안(한화 520만 원) 정도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감독 보수보다는 ⅓정도이나 현지에서는 프로야구 감독은 상당히 고액 대우를 받는 스포츠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감독은 요구액보다 적더라도 받아들일 작정이며 다만 우리보다 세금이 비싸(수령액의 20~30%) 세금을 팀에서 부담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입니다. 8년간의 오토바이 배달일을 접고 혼자 베이징팀을 찾은 한 감독은 일단 2년간 베이징팀을 지휘할 생각입니다. 중국야구리그(CBL) 우승보다는 내년에 초점을 맞추고 팀을 발전 시킬 계획입니다. 한 감독은 “중국에서는 우리의 전국체전 같은 전국체육대회가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데 엄청나게 관심이 크다고 합니다. 내년 10월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하는 게 목표입니다.”고 밝혔습니다. 베이징 타이거스에는 현재 최고시속 145㎞를 던지는 투수가 두 명 있는데 투수코치로 함께 가는 제일은행 동기생 유영수(63) 전 현대 코치가 좋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 감독은 “중국 야구가 현재 아시아에서 수준이 떨어지는 상태이나 한국에서 유망주를 키우듯 선수들을 잘 다듬으면 눈에 띄게 달라질 것”이라며 새로운 세계에서 야구를 가르친다는데 자신도 들떠있습니다. 중국 야구 대표팀은 지난 2005년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때 대학선수 위주로 선발된 한국 대표팀을 3~4위전에서 4-3, 한점 차로 이겨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성인 대표팀은 5년 전부터 미국의 도움을 받아 메이저리그 출신 지도자들에게 배우고 있는데 한국과 경기에서 비록 콜드게임패를 번번이 당하지만 경기 중반까지는 근접전을 벌이는 등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내 야구인들은 한동화 감독이 중국 야구 지도자로 간다고 하자 “뜻밖의 소식이지만 한동화 감독 같으면 틀림없이 단기간에 성공할 것”이라며 그가 과거에 아마추어에서 선풍을 일으킨 사례를 꼽으며 기대가 큽니다. 한 감독은 지난 1976년부터 신일고 창단 감독으로 인연을 맺어 첫 해 황금사자기대회 우승을 거머쥐었고 1978년에도 같은 대회 패권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멤버는 고인이 된 김정수와 김경표와 김남수, 최홍석, 차용갑, 양승호, 노승진 등이 있습니다. 1996년 가을에 다시 신일고를 맡아 다음 해 청룡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등을 휩쓸어 3관왕을 차지했는데 제자들로는 현재윤(삼성) 김광삼, 봉중근(이상 LG) 한상훈(한화) 등이 프로에서 뛰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야구는 아직 그다지 인기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2002년 4월 26일 광저우-베이징팀의 경기를 시작으로 프로야구가 발족했습니다. 프로야구라고는 하지만 구단 운영은 시 체육회가 하고 한동화 감독이 맡기로 한 베이징 타이거스는 베이징시 체육전문대학의 교장 선생님이 구단주 격입니다. 현재 중국 프로야구는 6개팀(베이징 타이거스, 톈진 라이온스, 광둥 레퍼드, 상하이 이글스, 쓰촨 드래건스, 장쑤 호프 스타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경기는 1주일에 한팀이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에 3경기씩 펼치고 시즌은 4월초부터 6월 말일까지 팀당 총 35게임을 벌입니다. 1위와 2위팀이 펼치는 우승 결정전은 5전3선승제로 열립니다. 한 감독이 맡을 베이징팀은 2003~2005 시즌을 3년 연속 우승했고 지난 해는 3위에 머물렀는데 선수는 40명 가량이 소속돼 있으며 이중에 국가대표 선수가 6명이 있습니다. 오는 8월에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 이들이 차출돼 있어 올 시즌은 이들을 제외한 채 운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외국인 선수는 팀당 3명까지 제한돼 있습니다. 선수들 연봉은 1급 선수들이 4만 위안(한화 520만 원)으로 일반 봉급 생활자에 비해서는 높지만 한 감독이 지난 달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몇 몇 선수들은 일본 요미우리에서 뛰는 이승엽이 연봉(한화 52억원)을 얼마나 받느냐고 물으면서 자신들은 적게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OSEN 편집인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 시절의 한동화 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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