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반란이 시작됐다. KIA 타이거즈의 ‘작은 거인’김선빈(19. 내야수)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김선빈은 지난 2월 괌 스프링트레이닝 때 KIA 선수 가운데 최장신인 최희섭(29)과 룸메이트로 생활했다. 최희섭은 키 196cm, 몸무게 109kg의 육중한 체구의 소유자. 그에 반해 화순고를 나온 루키 김선빈은 키 164cm, 체중 63kg의 아담형이다. 키가 무려 32cm나 차이난다. 역대 국내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키가 165cm 이하였던 선수는 김선빈이 유일하다. 김선빈 자신의 주장과는 달리 주변에서는 실제 키가 더 작은 것같다는 말도 하고 있다. 키가 작으면 어떠랴. 품성이 좋고 성실한 김선빈은 시범경기 들어 KIA의 새 해결사로 떠올랐다. 3월 19일 SK 와이번스전에서 2타점 결승타를 날렸던 김선빈은 20일 우리 히어로즈전에서도 7번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 출장, 4타수 3안타 1타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김선빈은 20일 현재 시범경기 11게임에 출장, 26타수 11안타, 타율 4할2푼3리, 7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해 공식 타격 순위에 들지는 못했지만 당당히 KIA 팀내 타격 1위이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김선빈은 야무진 타격으로 조범현 감독의 신임을 듬뿍 받고 있다. 시범경기에서는 유격수로 주로 출장하고 있다. 조범현 감독은 “우리팀 내야 백업요원 1순위는 김선빈”이라고 공언하고 있을 정도이다. KIA는 1루수 장성호, 2루수 김종국, 3루수 이현곤, 유격수 발데스가 내야 주전 요원으로 짜여져 있다. 최희섭이 지명타자로 나선다고 볼 때 내야수 김선빈이 선배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은 유격수보다는 2루수가 될 수 있다. 김종국이 아연 긴장해야 될 판이다. 김선빈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자신이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2차 지명 6순위로 계약금 3000만 원(연봉 2000만 원)을 받고 입단한 김선빈은 스프링트레이닝 때 단 한 푼의 외화도 가져가지 않았다.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쓰게 된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KIA 스카우트팀은 김선빈이 비록 체구는 작지만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데다 집중력과 승부 근성이 강한 점에 주목했다. 기대대로 김선빈은 훈련을 충분히 소화해 냈다. 마침내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1군선수로 낙점 받았다. 아직 대타, 대수비, 대주자 요원이지만 미래는 밝다. KIA 노대권 홍보팀장은 “선후배 관계가 좋은 우리 팀 분위기 메이커”라고 치켜세우며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김선빈처럼 덩치는 작지만 야구 재간이 넘치는 재주꾼들이 간헐적으로 출몰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등록한 선수들 가운데 키 160㎝대의 ‘거꾸리’들이 손꼽을 정도로 있었다. 프로야구판의 ‘원조 작은 거인’으로 불러도 좋을 대표적인 인물로는 MBC 청룡의 3루수 김인식(55. 전 LG 트윈스 2군 감독)과 OB 베어스의 2루수 김광수(49. 현 두산 베어스 수석코치)를 들 수 있다. 한화 이글스의 김인식(金寅植) 감독과는 가운데 이름 한자가 다른 김인식(金仁植)은 동대문상고(현 청원고)를 나왔다. 얼굴이 가무잡잡한데다 체격 또한 168㎝, 63㎏으로 아담해 ‘베트콩’이라는 별명을 들었다. 김광수는 고교야구 명문 선린상고를 나왔고 건국대를 거쳐 OB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김광수는 1982년 KBO 선수 가이드북에 169㎝, 70㎏으로 등재돼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1985년 가이드북에는 키와 몸무게가 줄어든 168㎝, 68㎏으로 나와 있다. 지난 3월 19일 잠실 구장에서 만난 김광수 코치는 OB 시절 선배로 마침 옆에 서 있던 윤동균 KBO 기술위원장이 “김 코치의 실제 키는 167㎝”라고 농담삼아 말하자 극구 “내 키는 168㎝가 맞다”고 강변했다. 프로야구 초기 작은 선수들은 일부러 자신의 키를 부풀려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야 어찌됐든 김인식이나 김광수는 팀 주전 선수로 철벽 내야수비는 물론 재치 있는 타격과 빠른 발로도 유명했던 터였다. 김광수의 경우 1985년에 홈런 9개를 기록, 당시 김성근 OB 감독이 팀내 거포였던 윤동균, 김우열 두 강타자에게 “광수는 저렇게 잘 치는데 너희들은 뭐하고 있느냐”는 지청구를 들었을 정도였다.(참고로 1985년에 김우열은 7개, 윤동균은 8개의 홈런을 날려 둘 다 김광수에게 뒤졌다) 김인식과 김광수의 뒤를 이어 1983년에는 선린상고, 연세대를 거친 조충렬(49. 전 해태 타이거즈 코치)이 해태의 유격수로 자리를 잡았다. 조충렬은 선수 시절 키가 작다(KBO 등록은 170㎝였지만 실제는 더 작다는 증언이 있다)는 이유로 ‘땅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86년에는 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멤버로 뛴 이광길(48. 현 SK 와이번스 코치)과 김성갑(46. 우리 히어로즈 코치) 두 내야수가 작은 키로 한 몫했다. 이광길은 170㎝, 김성갑은 168㎝였지만, KBO 가이드북에 그렇게 나와 있을 뿐 진짜 키는 당사자만 알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선수들의 체격도 변해 1990년대 이후에는 160㎝대의 키 작은 선수들은 가뭄에 콩나듯이 나타났지만 제대로 활약한 선수는 거의 없었다. 다만 1980년대 후반부터 해태의 주축타자로 활약했던 백인호(45. 전 해태 코치)의 경우는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다름 아닌 KBO 가이드북 상에 실려 있는 그의 키가 해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1988년에 해태에 입단했던 백인호는 그 해 가이드북에는 171㎝, 73㎏으로 올라있지만 1989년에는 178㎝, 74㎏으로 나와 있다. 이는 아마도 인쇄상의 오기인 듯하다. 이듬해인 1990년과 1991년에는 168㎝, 74㎏으로 계속 표기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1992년에는 다시 175㎝, 74㎏으로 1년만에 느닷없이 키가 훌쩍 큰 것으로 등록돼 마냥 헷갈린다. KIA의 유망주로 언론의 각광을 받고 있는 새내기 김선빈. 역대 KBO 등록 선수 가운데 가장 작은 그의 활약상은 키만 놓고는 도저히 재단하고 측량하기 어려울정도로 눈부신 바 있어서 올 시즌이 잔뜩 기대된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흔히 들먹이는 속담조차 그에게는 미흡하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