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스모 요코즈나의 품격과 요미우리 4번타자
OSEN 기자
발행 2008.04.18 09: 00

일본 씨름 스모는 그네들이 국기로 자처하고 있는 전통 민속경기이다. 일본인들은 스모선수들을 통해 야성과 품위라는 이율배반적인 세계를 맛본다. 스모의 최고위를 요코즈나(橫綱)라고 한다. 요코즈나는 스모의 상징이다. 그래서 요코즈나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일본적인 정신과 품격을 갖추기를 일본인들은 바란다.
최근 스모의 요코즈나는 몽골출신 선수 두 명이 독차지하고 있다. 아사쇼류(朝靑龍. 28)와 하쿠호(白鵬. 23)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두 몽골 젊은이가 그들이다. 아사쇼류와 하쿠호는 같은 몽골 태생이지만 아주 다른 개성의 소유자이다.
아사쇼류는 과격하고 거칠다. 몽골 초원의 야생마 같다. 일본인들은 그의 절제되지 못한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고 매스컴은 비난을 퍼붓는다. 그는 기자들을 향해 “죽어버려라”는 험한 말을 던지는가하면, 작년 여름에는 고의로 순회경기에 불참, 꾀병 의혹을 일으키며 3게임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스모 실력은 단연 발군이어서 지난 3월대회에서 하쿠호를 물리치고 정상을 되찾았다. 아사쇼류는 22차례나 우승했다.(하쿠호는 개인통산 6번 우승)

반면 하쿠호는 ‘잘 길들여진 순한 양’과 같다. 몽골 선배인 아사쇼류를 악착같이 이기려고 하면서도 나이답지 않게 조심스럽다. 그는 자신을 일본에 융화 시키는데 힘을 기울였다. 요코즈나로서 품위를 지키려고 애쓴다. 일본인의 눈으로 본다면 우등생이다. 지난 4월1일 도쿄돔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올 시즌 홈구장 개막전에는 이례적으로 시구자로 나서기도 했다.
미야와키 쥰코라는 일본인 몽골 사학자는 ‘몽골 역사(力士=스모선수를 일컫는 말)는 왜 강한가(2008 4월호 월간 <正論>)’라는 글 속에서 자못 흥미로운 분석 결과를 내놓고 있다. 미야와키는 “국기라고 말하지만 스모는 엄밀히 말하자면 국기가 아니라 힘으로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의 일종이다”고 전제, “아사쇼류의 응석부림같은 행동이야말로 몽골인의 특성이다. 아사쇼류의 거친 언사나 기자들을 노려보는 것 따위는 그냥 퍼포먼스정도로 받아들이면 좋다. 젊은 외국인 남자에게 일본인들은 왜 품격만 요구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그는 인구 260만 명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인 몽골 출신 선수들이 강한 까닭은 일본과 몽골의 문화의 차이나 자라난 환경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봤다. 몽골은 유목민의 사회이다. 그의 분석을 원용하자면, 실력 우선의 사회였고 선, 후배 서열도 없다. 늙은이와 젊은이의 서열도 없다.
몽골에는 선배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문화는 없다. 몽골인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심이 왕성한 남자를 좋은 남자라고 생각한다. 몽골에서는 여자도 자립심이 강하다. 성격이 강하고 열정적인 여인을 미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의 판단으로는 아사쇼류의 돌출행동은 ‘몽골 사내다운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판으로 눈길을 돌리자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타자 자리는 마치 스모의 요코즈나와도 같다. 실력은 물론 일정한 품격을 요구받는다. 역대 요미우리 4번타자들이 그랬다. 일본야구의 상징적인 존재인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종신 명예감독 같은 야구인은 아직도 일본인들의 무한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다.
제70대 요미우리 4번타자였던 이승엽(32)의 전선 이탈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어찌보면 일본인, 일본세계, 일본정신에 동화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자리에 대한 적응 실패라고 할 수도 있다.
흔히 말하기를 일본 프로야구팬은 크게 나눠 ‘교징(巨人)’과 ‘안티-교징’이 있다고 한다. 요미우리를 선호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거기에 비례해서 요미우리 4번타자가 짊어져야할 중압감 또한 대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승엽도 견디기 어려운 심리적인 압박감을 간헐적으로 토로한 적이 있다. 차라리 3번이나 5번이 치기 편하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개막 3연전 이후 5번, 6번으로 타순이 내려앉았던 이승엽의 타격부진을 어떻게 봐야할까. 적응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게 요미우리의 풍토이고 요미우리의 4번타자라는 자리인 듯하다. 주변에서 복귀에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이승엽이 자신과의 ‘고독한 투쟁’을 통해 극복해야한다.
<햄릿>의 독백처럼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받아도 참고 있어야만 하는가? 아니면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치는 것이 옳은가?’
이승엽은 지난 14일 2군으로 내려가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구애받지 않고 100%가 될 때 1군에 올라가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서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승엽은 분명히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강타자이다. 그의 자질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의 일시적인 부진은 아주 작은 심리적인 흔들림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이승엽은 자신의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릴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까지는 하쿠호처럼 순응적이었다면 앞으로는 아사쇼류처럼 다소 거칠더라도 과감하게 싸워 이겨서 4번타자의 지위를 되찾기 바란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사진 위>이승엽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진 아래>지난 4월 1일, 스모 요코즈나인 하쿠호의 요미우리 개막전 시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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