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최영균의 인사이더] 에픽하이의 노래 ‘Be’가 백매스킹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백워드매스킹이라고도 불리지만 백매스킹이 더 올바른 용어인 이 기법은 음악을 거꾸로 재현했을 때 의미 있는 단어가 들리도록 하는 녹음 기술을 뜻한다. 한 네티즌이 제기한 ‘Be’의 백매스킹은 ‘예수님…’이라는 말이 들린다는 것. 지난 1994년 서태지의 ‘교실이데아’ 이후 실로 오랜만에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백매스킹 사례다. 백매스킹은 비틀스처럼 의도적으로 시도된 경우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의도하지 않은 우연에 의해 일어난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논란의 대상이 된 가수들이 ‘우연’이라 해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에픽하이나 과거 서태지도 그렇게 해명했다. 사실 백매스킹은 듣는 이의 심리적인 왜곡 혹은 의도적인 오역에 의해 발생하기 쉬운 현상이다. 듣는 이가 음악을 거꾸로 들을 때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소리에 대해 발음이 비슷한 특정 단어를 떠올린 후 대입해 ‘백매스킹이 시도됐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듣는 이는 자신이 그 가수의 음악에서 듣길 ‘기대하는’ 단어를 연상해 백매스킹을 주장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얘기다. 비판의식을 보여주는 가수의 경우 그 가수가 비판하는 대상과 비판 행위와 연관된 단어가 주로 백매스킹 논란을 일으킨다. 이번 에픽하이의 백매스킹 논란은 굉장히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악마주의’ 숭배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매스킹으로 들리는 단어가 ‘예수님’이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백매스킹 논란은 지금까지 모두 악마주의 논란으로 이어지고 특히 이에 민감한 개신교계와 대립이 벌어졌다. 원래 백매스킹은 순수한 음악적 기법으로 실험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풍자나 단순한 웃음거리 제공을 위해 쓰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악마주의 숭배 논란으로만 귀결됐다. ‘피가 모자라’라는 말이 들린다던 서태지 사례 때도 개신교 계열에서 강력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가요 자체에서는 백매스킹 논란이 서태지 정도였지만 해외 대중음악으로 영역을 확장하면 서구 록가수에 대한 악마주의 논란도 상당했다. 비틀스 퀸 레드제플린 핑크플로이드 ELO 이글스 롤링스톤스 AC/DC 주다스프리스트 등 당대의 록그룹들이 이에 해당됐다. 이 록가수들 중에는 백매스킹을 의도적으로 했다고 밝힌 경우도 있고 오해라며 의도를 부인한 경우도 있다. 또 백매스킹이 아니라 제대로 들었을 때도 악마숭배적인 가사를 담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악마주의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악마주의를 대표하는 표식은 백매스킹이었다. 은밀하게 불온한 의식을 주입하는 악마와 백매스킹의 방법은 잘 연결되는 이미지 상의 공통점을 갖고 있어 그랬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한국 개신교 계열에서는 이런 록그룹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발표하고 대중들이 이를 멀리할 것을 주문하기도 하는 등 1990년대 중반까지 악마주의 논란은 한국 대중 음악계에서 서구에서보다 더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앞서 살펴봤듯 이번 에픽하이의 백매스킹 논란은 서태지를 포함한, 과거 한국의 백매스킹 논란과는 양상이 크게 다르다. ‘백매스킹=악마숭배’라는 단순 공식이 어찌됐든 어긋나는 사례가 됐다. 이미 강도는 많이 약해졌지만 대중음악과 악마주의 논란이 이 기회로 완전히 사라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대중문화가이드 ck1@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