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선수들이여, ‘새벽 이슬’을 맞지 마십시요
OSEN 기자
발행 2008.07.18 10: 36

정수근(31. 롯데 자이언츠)의 음주 폭행 사건이 프로야구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선수의 시즌 중 음주 물의는 용납하기 어려운 게 일반적인 정서인데, 폭행까지 저질렀으니 당사자는 물론 선수 단속에 소홀했던 롯데 구단 모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정수근 사태에 대해 7월 17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무기한 실격’의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정수근이 유사한 사례로 이미 징계를 받았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테면 가중처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정수근은 한순간의 실수로 돈과 명예를 모두 잃어버리는 꼴이 됐지요. 올 시즌 팀의 주장으로서, 전날 경기서 병살타로 찬스를 놓쳐서 화가 나서 모처럼 술을 입에 댔다고는 하지만 그 파장은 너무나 큽니다.

사실 프로야구판에도 내노라하는 술꾼들이 적지 않습니다. 시즌 중 음주는 코칭스태프가 엄중단속하기는 하지만 유명 선수들이 ‘술 권하는 사회’의 유혹을 쉽사리 뿌리치기 어려운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긴 합니다. 음주는 기본적으로 제 아무리 주변에서 말리고 감시한다고 할지라도 그 속성상 끊기 힘듭니다.
오죽했으면 카톨릭 같은 종교단체에서 사회적인 질병, 정신적 질환으로 인식해 ‘음주학교’를 열어 신앙의 힘으로 교화하려는 노력까지 기울이겠습니까. 음주 소동과 관련해 과거 프로야구 유명선수들의 숱한 무용담이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만.
얼마 전 ‘그라운드의 야생마’ 소리를 들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상훈(37. 클로저47 대표)이 털어놓은 유혹의 실태는 우리 사회의 선수들에 대한 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훈은 “LG 시절 팀 분위기가 너무 자유분방하지 않았나. ‘밤 이슬, 새벽 이슬, 아침 이슬’이라는 말도 있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에 “전 나이트클럽 안다녀서…”라고 웃음으로 넘기면서도 “야구는 멘탈 게임이다. 입단 첫 해 잘 하면 주위에 사람이 많이 붙는다. ‘이슬’맞게 해주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 선수는 똥오줌을 못가린다. 쉽게 말하면 ‘스폰(서)’을 해주는 것인데, 그 사람은 선수를 이용해 제 얼굴 과시하는 것이고. 그렇더라도 선수는 야구장에 나가면 달라져야 하는데 안좋은 방향으로 자꾸 이어지고, 부상을 당하고…. 저는 그런 일에 완전히 담을 쌓아버렸다. 그 사람들은 만나자마자 반말한다. 시도 때도 없이 술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나야,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바꿔줄게’, 다른 데 가서도 ‘내가 이상훈을 잘 아는데’, 그런 식이다. 왜 그런 사람들한테 반말을 들어야 하나. 그런 자리를 피하니까, ‘싸가지가 없다’는 둥 그런 소리를 듣게 됐다”고 적나라하게 토로했습니다.
그만큼 선수를 등에 업고 자신을 과시하려는 사람들, 부나방 같은 무리들이 선수주변에는 늘 모여들고 있습니다. 선수 자신이 자제력을 갖고 그들을 선뜻 뿌리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네들의 접근과 유혹의 촉수는 집요하고 끈질긴 것이어서 넘어가기 쉽습니다.
옛 일을 이야기 하자면,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무대는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해인 1988년 여름,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무렵인 7월 3일 새벽 서울 모 호텔방입니다. 아시다시피 프로야구 선수들은 원정을 나가면 2인1실로 숙소를 쓰게 됩니다. 대개는 친한 선후배끼리 방을 잡게 됩니다.
그날 잠실에서 열리는 MBC 청룡전에 선발로 내정돼 있었던 선동렬(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은 새벽 1시께 애써 잠을 청해 단잠에 빠져 있는데 느닷없이 얼굴에 뜨뜻한 물(?)이 쏟아지더랍니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 보니 아뿔싸!, 룸메이트인 후배가 태연하게 자신을 향해 거리낌 없이 실례를 범하고 있더랍니다. 기가 막혀 후배를 쳐다보니 이미 인사불성의 경지에 이른지라 무어라 나무라지도 못하고 코를 싸매고 침대 아래로 내려갔답니다. 침대는 물론 베개에서도 온통 지린내가 진동해 하는 수 없이 맨 바닥에 누워 욕실 타월을 덮고 잠을 다시 청했으나 ‘썩은 감 냄새’가 코를 질러 잠 못 이룬 밤이 되고 말았습니다.
전날 야간경기를 마친 그 후배는 밤에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숙소를 나가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기어서 들어온 것입니다. 다행히 그 날 선동렬은 MBC를 상대로 1실점 완투승(2:1)을 거두었답니다. 후배의 횡포(?)가 오히려 경기의 집중력을 가져왔는 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 오줌세례를 받고도 선동렬은 후배를 심하게 질책하지는 않은 모양이지요.
선동렬 감독이 들려준 일화 가운데 귀담아 들을 만한 것이 있습니다. 선 감독이 KBO 홍보위원으로 있을 때인 2002년 7월말께 일본 스모선수 20여 명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이들은 핫카쿠(八角) 도장 소속으로 선 감독과 친분이 두터운 호쿠토우미(北勝海) 관장의 인솔로 방한했던 것입니다. 호쿠토우미 관장은 우리 씨름으로 치자면 천하장사격인 요코즈나를 지낸 유명 스모인입니다.
그는 1998년 12월 선 감독이 나고야에서 일시 귀국했을 때 뒤 따라와 한국의 불우어린이 돕기 성금으로 1000만 원을 기탁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야 어찌됐든 절친한 친구가 왔는데 선 감독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그들이 머물고 있던 서울 워커힐 호텔의 한식당에서 식사 한 끼를 대접했답니다. 선 감독이 그 때 두 번 놀랐습니다.
“오늘은 내가 한 턱 낼테니 마음놓고 먹으라”고 한 것이 씨가 돼서 스모선수들이 그야말로 육회를 냉면 그릇에 5인분을 쓸어넣고 훌훌 마시듯이 해치웠답니다. 그 결과 선 감독의 살을 떨리게할 만큼 엄청난 액수의 식사비(일금 570만 원정)가 나왔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그 선수들이 1차 식사자리는 물론 일부 선수들과 같이 간 2차 술자리에서도 단 한잔의 맥주도 입에 대지 않았다는 겁니다. 물론 그들의 도장 관장이 같이 자리한 자리 탓도 있었겠지만 프로선수로서의 몸가짐은 본받을만 했다는 얘기였습니다.
프로야구 각 구단은 특히 시즌 중 선수들의 음주 사고를 가장 경계합니다. 눈에 불을 켜고 코치들이 선수들의 동선을 감시하면서 주의를 기울이고 외출 시간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담을 넘어 탈출하려는 선수들의 혈기방장한 욕구를 잠재우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선수 자신의 자각이 중요하다고밖에 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적어도 시즌 중에는 절대로 음주 행위를 하지않겠다는 다짐을 선수 개개인이 가져야 합니다. 직업선수는 몸가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썩은 홍시 냄새를 풍기며 눈이 벌겋게 충혈된 선수를 만에 하나라도 그라운드에서 보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음주는 팬들에대한 철저한 배신행위입니다. ‘새벽 이슬’을 맞는 것은 몸에도 결코 이롭지 않습니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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