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먼곳에', 니 사랑이 뭔진 아나?
OSEN 기자
발행 2008.08.03 16: 41

님의 질문이 님에게 다시 되돌아간 이유 [정덕현의 결정적 순간] 순이(수애)는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남편을 꼬박꼬박 면회 간다. 달거리에 맞춰 보내는 시어머니의 마음은 아마도 삼대독자의 대를 이어보자는 심산일 것이다. 여인숙에 어색하게 앉은 순이는 상관조차 하지 않고, 남편 상길(엄태웅)은 소주를 마신다. 상길은 사실 따로 사랑하던 여자가 있다. 가만히 앉아있는 순이에게 넌 모를 거라는 식으로 묻는다. “니 사랑이 뭔지 아나?” 그리고 혼자 돌아 누워버린다. 사실 이렇게 사랑 받지 못했던 순이가 이역만리 전쟁통인 베트남까지 남편을 찾아 나선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남편이기 때문에? 혹은 남편은 사랑을 주지 않았지만 자신은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시어머니가 시켜서? 시집에서도 쫓겨나고 그렇다고 받아주지 않는 집 때문에 갈 데가 없어서?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서 순이는 아무런 속시원한 말도 해주지 않는다. 본래 순이는 그런 사람인가 보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뭔가를 말해주는 그런 사람. 반면 행동은 별로 영양가가 없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들이 있다. 그건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자들이다. 정만(정진영)은 베트남만 가면 모든 게 다 잘될 거라 밴드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얘기하지만, 그것이 깨지는 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이 전쟁통에 젊은 장병들을 내보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남자들’은 모두 호언장담하며 일을 저지른다. 그런 상황에서 그 저지른 일을 수습하고 껴안는 건 오히려 순이다. 순이는 기꺼이 청소도 하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속살도 내보인다. 전쟁으로 상징되는 남성성과 베트남의 자연으로 상징되는 여성성도 영화와 마찬가지의 구도가 아닐까. 잘 알다시피 베트남 전쟁은 자연(여성성)과 인간(남성성)의 싸움의 성격이 강하다. 미국이 전쟁에서 진 것은 자연에게 진 것이다. 온몸을 잡아끄는 촘촘하게 자란 나무들과,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날씨와 지형들은 화력이 우세한 미국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정글에 불을 지르고, 고엽제를 뿌리고, 융단폭격을 해대면서 미국은 결국 자신들이 싸우고 있는 것이 자연이란 사실을 인정했다. 한편 자연은 베트남 사람들을 숨겨준다. 영화 속에서 그려진 그들의 지하땅굴 생활 속에서의 평온함이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일 저지르는 남성성(전쟁, 남자)과 그것을 통째로 끌어안는 여성성(자연, 여성)은 이 영화를 통해 대비적으로 그려진다. 수많은 전투로 피폐해진 정신의 남성들 속으로 뛰어든 한 여자의 육탄공세로 한 때의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위문공연 장면들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것이 아무리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통해 이뤄졌다고 해도 그 본질은 남성성을 끌어안으며 장악해버리는 여성성의 힘에 있다. 중요한 것은 처음 남편이 질문했던 “니 사랑이 뭔지 아나?”하는 그 질문이 이역땅 전장의 한가운데 서 있는 순이에 의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다시 남편에게 질문되어지는 그 장면이다. 남편의 말만 번지르르한 사랑과, 순이의 행동으로 보여준 사랑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이것이 여성성의 시선으로 그리겠다면서 정작 남성적 시각을 가끔씩 드러내는 이 영화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아마도 이 질문은 영화관을 나오는 많은 관객들에게도 되돌려졌을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섹시한 차림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순이를 성적 대상으로 바라봤던 분들까지도 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ansuri@osen.co.kr 블로그 http://thekian.net/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