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취재를 한 지 32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국제야구대회나 가슴을 조이며 지켜 보았으나 이번 베이징 올림픽 야구처럼 진땀 승부가 이어진 대회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국제대회 중 기억에 오래 남는 진땀 시리즈를 꼽아봅니다. 1976년 한국일보-일간스포츠 체육부 기자로 야구를 취재하면서 먼저 가슴이 벌렁대며 조마조마했던 국제대회는 77년 11월 중미 니카라과에서 열린 슈퍼월드컵대회였습니다. 김응룡 감독-이재환-유백만 코치가 지휘한 대표팀은 첫 경기서 미국에 4-5로 패해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세계선수권대회 공동 우승팀이었던 푸에르토리코에 이어 베네수엘라를 연파해 조금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4차전에서 최동원이 히노에게 단 한 방의 홈런을 허용해 일본에 0-1로 분패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결선리그에 진출한 한국은 1차전에서 다시 미국을 만나 0-2로 또 졌습니다. 그리고 니카라과와 콜롬비아, 푸에르토리코를 김재박의 맹타 등으로 잇따라 격파하고 일본과 재대결을 펼첬습니다. 한국은 9회 대타 김정수의 적시타로 3-1로 앞섰으나 9회말 1점을 내주며 무사 1루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여기서 선발 이선희가 기막힌 견제구로 1루주자를 잡으며 3-2, 한 점 차 승리를 거두고 우승 결정전에 나갔습니다. 한국이 일본을 해외에서 이긴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우승 결정전에서 한국은 선발 최동원이 스리런 홈런을 맞아 2-3으로 미국에 역전 당했으나 6회 이해창이 2타점 적시타를 날리고 구원으로 나선 유남호가 역투해 5-4, 한 점 차로 짜릿한 승리를 만끽했습니다. 한국야구가 국제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상에 오른 대회였습니다. 선수단은 귀국길에 김포공항에서부터 서울시청 광장까지 카퍼레이드를 펼치며 수많은 시민의 환영을 받았죠. 그 다음 가슴이 조였던 대회는 82년 9월 서울에서 거행된 제27회 세계선수권대회였습니다. 서전에서 복병 이탈리아에게 1-2로 패해 먹구름이 덮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을 힘들게 한 점 차로 꺾고 호주와는 9회말 장효조의 극적인 동점타로 6-6을 만들고 다음 날 열린 10회 연장전에서 유두열의 희생플라이로 7-6으로 승리하며 일본과 동률을 이루어 최종전에서 대결하게 됐습니다. 일본에겐 0-2로 끌려가다가 패색이 짙던 8회말 김재박이 개구리 번트를 성공시켜 한 점을 따라붙고 한대화가 통쾌한 스리런 홈런을 날려 결국 5-2로 이겼습니다. 선동렬이 미국전 완투에 이어 승리투수가 됐습니다. 프로야구가 출범했던 해였고 암울했던 군사정권의 시절에 세계 제패는 국민들에게 야구사랑을 널리 심어주었습니다. 야구가 사양길에 접어든 2000년 9월 호주 시드니 올림픽에서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리는 진땀승부 끝에 한국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메달(동)을 획득했습니다. 1차전에서 이탈리아에 낙승했지만 호주에 3-5, 쿠바한테 5-6, 미국에 0-4로 져 4강 진출은 어렵다고 모두가 전망했습니다. 토미 라소다 감독이 이끈 미국팀과 대전에선 0의 행진을 이어가다가 8회말 2사만루에서 진필중이 스트라이크존으로 던져도 일본인 구심이 잡아주지 않는 바람에 가운데로 던지다가 덕 민트케이비치(현 피츠버그)에게 만루 홈런을 맞은 것입니다. 리그 최종전에서 호조의 일본과 대결했는데 1회초에 이승엽이 마쓰자카 다이스케(현 보스턴)를 투런 홈런으로 두들겼습니다. 접전 끝에 9회말에 5-5 동점을 허용하고 2사 1, 2루에서 또 중전안타가 터져 역전패를 당하는구나 여겼습니다. 그러나 중견수 이병규가 믿기 힘든 빠르고 정확한 송구로 홈에 뛰어들던 주자를 태그아웃 시켜 연장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연장 10회초에 또 다시 이승엽이 마쓰자카를 상대로 결승 적시타를 날리며 2점을 뽑았고 구대성이 한 점만 내주어 결국 7-6으로 이겼습니다. 준결승전에서 또 다시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한국은 미국에게 2-3, 한 점 차로 졌습니다. 정대현이 선발로 나간 한국은 2-1로 앞섰는데 7회에 킨케이드가 땅볼을 때리고 1루로 뛰면서 낮은 송구를 받은 1루수 이승엽의 글러브를 밟고 지나갔는데도 호주 심판은 세이프를 선언했습니다. 또 킨케이드가 후속 안타 때 3루에 들어가면서 발이 베이스에 떨어지는 장면이 뚜렷한데도 베네수엘라 심판은 세이프를 선언해 이 바람에 2-2, 동점이 됐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9회말에 민트케이비치가 박석진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날려 3-2로 이기고 결승에 나가 쿠바마저 제치고 우승했습니다. 3~4위 결정전에서 한국은 일본과 7회까지 0의 행진을 이어가다가 이승엽이 마쓰자카로부터 통렬한 2타점 결승타를 날리고 김동주가 쐐기 타점을 올려 결국 3-1로 이겼습니다. 은메달 이상도 가능했던 대표팀이었지만 김응룡 감독은 지금도 “심판 문제는 어쩔 수 없어”라고 대범하게 넘어가면서도 “나는 일본한테 항상 이겼어!”라고 자랑합니다. 실제는 77년 니카라과 슈퍼월드컵 예선에서 한 번 패했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일본을 이기고 우승, 메달을 따낸 게 평생 가슴 뿌듯한 모양입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김경문 감독은 미국에 8-7 한 점 차 재역전승(사실은 재재역전승입니다)-캐나다에겐 1-0 진땀승-일본에 5-3 역전승, 약체 중국과는 0-0 후 강우 서스펜디드게임에서 11회 승부치기 1-0 승, 대만에 8-0으로 크게 앞서다가 8-8 동점 후 9-8로 엽기승, 쿠바에겐 7-4로 역전승하는 통에 보는 사람에게 가슴 졸임증을 안겼습니다. 리그 마지막 대결에서야 네덜란드를 10-0, 8회 콜드게임으로 마쳤습니다. 한국야구 사상 유례없는 진땀 시리즈를 연출한 이번 대표팀은 다행히 선수 모두가 자신감을 가졌다니 22일 열리는 준결승전은 기분좋게, 마음 편안하게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OSEN 편집인 chunip@osen.co.kr 베이징올림픽 한국-대만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