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과 삼성의 2008 프로야구 플레이오프를 보면 의외의 선수들에게 눈길이 갑니다.
두산에서는 오재원(23), 채상병(29)이, 삼성에서는 신명철(30), 김재걸(36), 박석민(23), 최형우(25) 등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정규 시즌에선 눈에 띄지 않거나 부진하다가 ‘가을 잔치’ 때면 펄펄 나는 선수들은 그동안 프로야구에서 제법 많았습니다.
프로 출범 첫해인 1982년 코리안시리즈 6차전에서 만루홈런을 날린 OB 베어스의 외야수 김유동이 첫 주인공입니다.
김유동은 그 해 57경기만 출장하고 타율은 2할4푼5리, 홈런 6개에 그쳤으나 최종전에서 삼성 이선희를 상대로 0-2로 뒤진 2회초에 솔로 홈런 한방을 날려 추격의 불씨를 지피고 3-3 동점이던 9회초 2사만루에서 팀이 밀어내기로 1점을 얻은 후 이선희의 초구를 왼쪽 담장으로 넘기는 그랜드슬램을 작렬 시켜 8-3으로 이겨 초대 시리즈 MVP를 수상했습니다.
이태 후 한국시리즈에서도 깜짝 스타가 탄생했습니다.
삼성의 김영덕 감독이 져주기 경기로 시리즈 파트너로 선택한 롯데는 슈퍼스타 최동원의 분전으로 시리즈에서만 4승을 거두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는데 결정타는 최종 7차전에서 삼성 에이스 재일동포 김일융을 넉다운 시킨 유두열의 강펀치였습니다.
프로 2년차 외야수 유두열은 페넌트레이스에서 타율이 겨우 2할2푼대, 홈런은 11개였고 시리즈에서도 20타수 2안타로 저조했습니다. 그러나 3승3패이던 최종 7차전에서 팀이 3-4로 뒤진 8회초 1사 1, 3루에서 유두열은 타구를 왼쪽 외야석으로 훌쩍 넘겨 롯데에 기적 같은 첫 우승을 안겨주었습니다.
김응룡 감독이 부임한 첫 해인 1983년 챔피언에 오른 해태는 선동렬이 1985년에 입단하면서 1986년에 우승을 노려보게 됐습니다. 그러나 에이스 선동렬이 허리 부상을 일으켜 비상이 걸렸으나 좌완 신인 김정수가 숨어 있었습니다.
김정수는 시즌 11게임에 등판해 3승에 그쳤으나 삼성과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는 1, 3, 5차전에서 ‘가을의 사나이’로 떠오르며 3승을 따냈습니다.
‘까치’ 김정수의 호투로 해태가 6-5로 역전승을 거둔 대구 3차전은 화가 치민 대구 관중들이 시민운동장 밖에 주차한 타이거즈 구단 버스를 불지르는 험악한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수가 루키 최초로 시리즈 MVP를 거머쥔 해태는 1987년에는 프로 2년생 김대현, 차동철, 신동수 등이 기대 이상 잘 던지고 베테랑 김준환의 분전으로 2년 연속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1988년에는 마운드에서 팀내 랭킹 4위 정도이던 문희수가 빙그레와 한국시리즈 대결에서 1차전 때 손가락 물집이 발생한 선동렬에 이어 세이브를 기록하고 3차전은 완봉승, 6차전은 완투승을 올리는 대기염을 토했습니다.
깜짝 스타들의 대활약으로 전성시대를 구가한 해태는 1991년에 또다시 빙그레와 한국시리즈에서 맞섰는데 시리즈 때마다 불운이 겹쳤던 선동렬이 최종전 승리투수가 돼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4전전승 모두 역전승으로 장식한 해태의 공격력에는 시즌 타율 2할3푼대에 불과하던 중견 포수 장채근이 15타수 7안타, 8타점의 불꽃타를 터뜨려 모처럼 시리즈 MVP로 선정됐습니다.
‘해태 독식’의 시대는 1992년 롯데의 괴물 투수 박동희가 분발하며 제동을 걸었습니다.
프로 3년차 박동희는 1991년에는 14승을 올렸으나 그 해에는 7승에 그쳐 한때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포스트시즌은 달랐습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난 김성근 감독의 삼성을 상대로 1차전에서 신인 염종석이 3-0 깜짝 완봉승을 거두자 2차전에 나선 박동희는 4-0 완봉승으로 강속구 투수의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최강 해태한테 2차전에서 두들겨 맞고 패전투수가 된 박동희는 팀이 3승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되자 빙그레와 시리즈 1차전에서 그 해 다승왕 송진우와 맞선 끝에 힘들게 8-6으로 이겼습니다.
롯데는 2차전에서 연습생 출신 윤형배의 역투와 윤학길의 세이브로 2연승을 올리고 박동희가 4차전 세이브에 이어 5차전에서 윤형배에 이어 4회부터 등판해 승리투수가 되는 쾌투로 팀의 두 번째 우승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해 SK가 팀 창단 이후 첫 개가를 울리면서 시리즈 MVP로 등극한 김재현은 인간 승리의 역경을 딛고 일어선 주인공이어서 더 한층 감동적이었습니다. 33살이던 작년 시즌 김재현은 84경기만 출전하며 타율이 1할9푼대여서 왕년의 강타자로 끝나는듯 싶었습니다.
주로 대타로 출장하던 김재현은 두산에 2연패를 당한 다음 3차전에 3번타자로 선발출장해 선제 적시 2루타를 때리는 등 2안타를 기록했고 4차전에는 결승점을 뽑아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5차전은 결승타를 날리고 6차전은 쐐기 홈런을 뿜어 대역전극의 중심에 섰습니다.
LG에서 다쳐 고관절 수술로 선수 생명이 위태롭게 되고 트레이드 당하는 역경에 몰렸던 김재현으로서는 선수로서 두 번 다시 태어난 해였습니다.
선발투수가 6이닝 이상 던지기 힘들게 된 올해는 어떤 타자가 깜짝 스타로 등장할 지 궁금합니다.
천일평 OS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