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야구인생 50년' 강병철 감독이 겪은 2군 경험기
OSEN 기자
발행 2008.10.24 09: 53

올해도 어김없이 보따리를 싸고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난 선수들이 구단별로 적게는 5, 6명, 많게는 10여명에 이른다. 프로야구판에서 매년 되풀이되는 광경이다.
한 때는 큰 뜻을 품고 프로 유니폼을 입는데는 성공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비상의 나래를 접고 타의로 그라운드를 등뒤로 할수밖에 그들의 처지를 애써 눈여겨 보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저 그러려니할 따름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실력으로 말하는 프로세계의 냉혹한 현실은 그들에게 감상을 허락할 틈새조차 없다.
한국 프로야구의 구조는 일본과 엇비슷하다. 지역별로 8개구단이 포진하고 있는 가운데 그 산하에 2군을 두고 있다. 1군에서 부상 등으로 떨어져 나온 선수는 1.5군격인 재활군에 편입, 1군 복귀 준비를 시킨다.
2군의 존재의 이유는 어디까지나 1군에서 부려먹을 수 있는 선수를 육성하는 것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군 자체만으로 리그를 편성, 운영하고 있지만 선수들의 목표는 당연히 1군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1군 진입은 여전히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비좁은 문이다. 2군에 머물러 있는 대부분의 선수는 마지못해, 또는 타성에 젖은 생활을 하다가 흐지부지 선수생활을 끝내기 십상이다.
구단에 따라 2군 운영의 편차도 크다. 두산 베어스처럼 1군과 2군의 원활하고 유기적인 관계로 선수를 제대로 관리, 활용하는 구단이 있는 반면 무늬만 2군인 구단도 있다.
올해 페넌트레이스를 마친 후 히어로즈 2군 감독직을 그만두고 야인으로 돌아온 강병철(62)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최근 만난 자리에서 지난 1년간 2군에서 겪은 자신의 얘기를 진솔하게 들려줬다. 그의 경험담을 통해 한국 프로야구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한 끄트머리를 본 듯하다.
1984년과 1992년 두 차례 롯데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강병철 전 감독이 그의 50년 야구 인생에서 2군 선수를 가르쳐본 것은 처음이었다. 여태껏 1군에서 바라본 것과는 실상이 많은 차이가 있었다는 게 그의 1차 경험담이었다.
강병철 전 감독은 “그 동안 1군에서만 생활을 해와 대충 2군을 바라봤는데 선수들을 너무 몰랐다”면서 “2군 선수들이 앞에서는 고분고분하지만 실제로는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었다”고 돌아보았다.
불신. 2008년 가을, 한국프로야구 2군선수들의 가슴에 박혀 있는 이 말이 비수처럼 날아든다.
강병철 전 감독의 전언을 들어보자.
“2군 선수들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목표 의식이 없다. 선수들은 아예 체념상태에 빠져 있다. 오랫동안 1군에서만 있어서 몰랐는데 1년간 해보니까 달랐다. 2군선수들의 마음을 너무 몰랐던 것이다. 선수 개개인의 의식도 많이 다르다. 구석진 원당구장(경기도 일산)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나오는 선수가 있는 반면, 연봉 2000만 원도 안되는 선수가 3000만 원짜리 고급 승용차를 끌고 오는 경우도 있다. 2군 선수를 1군에 올릴 적에도 그렇고 다시 내릴 때도 그들이 마음의 상처를 안받게 세심한 배려를 해줄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2군 선수의 승격을 기록지만 보고(그 날 경기에서 성적이 좋았던 선수를) 섣부르게 판단해 냉큼 불러올렸다가 한 타석만 써보고 신통치 않으면 몇 시간만에 곧바로 되돌려보내는 것같은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 한 번 그런 경험을 한 선수는 좀체 마음을 열지 않고 자포자기에 빠지기 쉽다. 적어도 한 번 1군에 올라가면 일주일이나 열흘간은 그 선수를 활용해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2군에만 8, 9년간 오래 머물러 있는 선수들은 풀어주는 게 낫다. 더 젊은 선수를 기용해야 한다. 내가 접해본 바로는 그런 면에서 두산 2군 선수들이 목표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했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 2군 선수들의 문제점을 적확하게 지적한 내용이어서 좀 장황하게 강병철 전 감독의 말을 인용했다.
2군 선수들은 1군 육성요원과 2군 경기요원으로 나눈다. 두산의 경우 2군요원은 출퇴근을 시키고, 1군 육성요원은 합숙을 하며 집중관리를 한다. 처음에는 신고선수로 출발했지만 올해 타율 등 타격 3관왕에 오른 김현수(20) 같은 경우는 당사자가 워낙 열심히 한데다 눈 밝은 2군 지도자들이 있어서 험난한 길을 뚫고 1군으로 올라가 크게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재주 있는 선수는 주머니 속에 넣어두어도 송곳처럼 그 재능이 드러나기 마련인 것이다.
히어로즈에도 미래의 강타자는 자라고 있다. 강병철 전 감독은 히어로즈의 희망으로 황재균(21)과 강정호(22) 두 내야수를 지목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 최고의 3루수로 군림했던 강 전 감독은 “황재균과 강정호는 앞으로 히어로즈의 중심타선을 맡을 재목감이다. 특히 황재균은 3루수로 집중 육성한다면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는 2군 선수를 제대로 길러내는 것, 그 몫은 두 말할 나위조차 없이 지도자들의 신성한 의무이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김현수는 2000년 가을 현재 한극 프로야구 2군선수들의 희망 코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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