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최영균의 인사이더] 노희경 작가의 새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하 그사세)’이 서서히 극 중반부를 향해가고 있다. ‘화려한 시절’이나 ‘꽃보다 아름다워’처럼 예외적인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노 작가 드라마 대개가 그랬듯이 ‘그사세’도 현재까지는 5~6%의 낮은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동시대 인간성에 대한 날카롭고 세심한 탐구에 열광하는 팬들의 작품성에 대한 찬사는 이전 작품들처럼 여전하다. ‘그사세’가 처음 시작됐을 때 여주인공 송혜교에 대해 연기, 정확히 말하자면 발음 논란이 있었다. 5, 6회에 이른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꽤 이슈화가 됐다. 그런데 사실 1, 2회 때 송혜교의 딕션, 즉 대사 처리를 문제 삼고 이를 다시 ‘논란’이라고 확대재생산하는 행동들은 성급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도 1, 2회 때 헤매는 경우가 자주 있다. 작품 전체에 대해 완벽히 파악한 상태가 아니라 초반 4부 대본만 나온 상황에서 촬영에 돌입하는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 상의 문제로 보인다. 거기다 ‘그사세’ 1, 2회에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방송 제작 전문 용어가 상당히 많아 대사를 알아 듣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 또 드라마 방영 초반 어느 드라마나 그러하듯 속도감 있게 전개됐는데 그러다 보니 대사 전달이 편안하지 않았던 것도 정확한 대사 전달을 다소 방해했다. 송혜교는 ‘그사세’ 초반이나 지금이나 상당히 연기를 잘 하고 있고 딕션도 나쁘다고 하기 힘들다. 노 작가의 작품은 캐스팅과 관련해 일관된 특징이 있다. (노 작가의 ‘심오한’ 작품을 소화하기에 왠지 불안해 보이는) 젊은 주연급 스타가 대부분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작품이 끝날 때 즈음이면 ‘재발견’ ‘스타에서 배우로’ 등의 찬사를 들으며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지금은 완전히 배우로 인정받고 있지만 노 작가의 ‘굿바이 솔로’ 이전에는 ‘발연기’라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던 김민희가 대표적이다. ‘굿바이솔로’를 거치면서 김민희 외에 윤소이나 천정명도 ‘배우’가 됐다. ‘꽃보다 아름다워’에서는 한고은이 그랬다. 노 작가를 세상에 알린 초기작 ‘거짓말’ 때는 그전까지 ’인형’의 이미지가 강했던 유호정이 완벽히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사세’에서도 현빈과 송혜교의 연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좋다. 자연스러워지고 편안해졌으며 살아있는 연기를 하고 있어 앞선 노 작가 작품의 ‘배우의 재발견’ 대열에 확실히 합류할 것으로 여겨진다. 노 작가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발연기’를 보기 힘들다. 이는 ‘네 멋대로 해라’ ‘발리에서 생긴 일’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 다른 작가의 명품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대본은 배우의 연기력을 높인다. 대본 연습이나 캐릭터 논의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또는 대본을 영상 작품으로 구현하는 감독)로부터 배우고 깨닫게 되는 점이 있어 그러할 것이다. ‘착시효과’도 있다. 걸작에는 대개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을 잘 반영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면 실제 연기력은 좀 부족해도 좋은 연기를 펼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신데렐라, 영웅주의에 의존하는 대개의 흥행 드라마의 전형적이고 단면적이며 진부한 ‘판타지’ 캐릭터들은 그렇지 않다. 연기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캐릭터가 내재한 본질적인 문제점이 부각돼 시청자들에게 거부감을 크게 일으킨다. 하지만 사색을 하게 하고 공감을 하게 만드는 명품 드라마의 ‘다면적 인간’ 캐릭터들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사실을 배우 본인과 소속사에서도 잘 아는 듯하다. 얼마 전부터 ‘명품’으로 꼽히는 감독 또는 작가의 영화나 드라마에는 아직 배우로서 완전히 공인을 받지 못한 스타들이 출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광고 속에서만 살지 않고 배우가 되려는 스타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대중문화가이드 ck1@osen.co.kr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의 주역들. 왼쪽부터 현빈과 노희경 작가, 표민수 감독, 그리고 송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