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을 없애야한다. 그래야 쓸 데 없이 군침을 흘리는 정치권 인사들이 눈을 돌릴 것이 아니냐.’한 야구계 인사가 푸념처럼 내뱉은 말이다. 오죽했으면 이런 얘기가 나오랴 싶은 게 요즈음 프로야구계의 실정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제 16대 총재 자리를 놓고 벌써부터 하마평이 무성하다. 신상우 현 KBO 총재의 임기가 내년 3월로 끝남에 따라 정치권 안팎에서 자천타천의 인사들이 거명되는가 하면, 차제에 야구계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선임해야 마땅하다는 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KBO 총재는 12~14대 총재를 역임한 전 두산그룹 박용오 회장을 선임할 당시인 1998년 12월, 구단간에 ‘구단주들이 돌아가면서 한다’고 내부방침을 세웠으나 문화관광부의 승인을 얻지 못해 상당한 곡절을 겪었다. 어렵사리 구단주 출신 인사로는 최초로 박용오 두산 구단주가 총재직을 맡기는 했으나 그마저 신상우 총재가 정치권의 입김으로 제 15대 총재로 앉으면서 이 묵계가 깨져버렸다. 정치권 눈치보기의 해묵은 악습이 되풀이 된 것이다. 구단들은 정치권 인사의 폐해를 절감하면서도 그 동안 정권 교체 때마다 섣부른 대응을 할 경우 자칫 정권의 ‘괘씸죄’에 걸리지나 않을까 저어한 나머지 울며 겨자먹기로 낙하산 인사를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그러나 최근 WBC 감독 선임 파동, 히어로즈 투수 장원삼의 삼성 라이온즈 트레이드 소동의 와중에서 총재의 임무에 대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구단들이 늘어났다. 이 참에 구단주가 다시 총재직을 맡아야한다는 기운도 덩달아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프로야구 행정 총수인 KBO 총재는 연봉 2억 원 외에 판공비, 기사 딸린 승용차 제공 등 연간 수억 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자리이다. 그 때문에 정치권 주변 인사들이 탐을 내는 자리로 알려졌고 역대 총재 가운데 박용오 총재를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은 한결같이 정치권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역대 정치인 총재들은 비리로 도중하차 하거나 정권이 바뀌면 교체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됐다. 새로 들어선 정권은 KBO 총재직을 마치 전리품 정도로 여겨 논공행상의 부산물로 전락시켰다는 것이 프로야구계의 공공연한 자조의 목소리였다. 올 들어 KBO 재정상태가 어려워지자 총재 연봉을 40% 삭감하긴 했으나 구단들은 여전히 불필요한 경비를 많이 쓰고 있다며 곱지 않은 눈총을 보내고 있다. 구단들은 박용오 총재 시절 연봉을 단 한푼도 받지 않았던 전례를 들며 이 참에 KBO 총재의 연봉을 아예 없애버려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를 막아야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내놓고 있다. KBO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정치권 인사들은 여권의 원로급 정치인 P씨, K씨, 다른 K씨 등이고 일각에서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모 학원 이사장이나 모 대학 전 총장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그 가운데 롯데 자이언츠 신동인 구단주 대행이 KBO 총재직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박용오 총재 이후 KBO 총재 선출은 ‘타율’로 다시 돌아갔다. 그 물길을 되돌리는 일이 8개구단의 당면 과제로 떨어졌다. 2008베이징올림픽 금메달, 500만 명 관중 재돌파 등 올해 프로야구의 위상은 한껏 높아져 있다. 자연히 총재직에 대한 눈길도 뜨겁다. 익명을 요구한 야구계의 한 고위 인사는 “신상우 총재가 프로야구 현안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이제는 기업경영논리와 스포츠의 접목으로 튼실하게 살찌워 제 9, 10구단 창설의 길로 매진해야한다. 현재 구단별로 200억 원 가량 드는 연간 비용을 줄이고 100억 원 안팎으로 구단 운영이 가능하다면 창단할 수 있는 기업은 있다”고 구단주 총재의 당위론에 불을 붙였다. 지방 구단의 한 단장 또한 “사실 박용오 총재 시절에 구단들의 볼륨이 커졌다. 아무래도 경제 논리에 따르다 보니 내용이 충실해졌다”면서 “정치인 출신 총재들을 영입하는 이유는 인프라 구축에 도움이 될까해서인데, 실질적으로 성과를 이룬 것이 없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구단주 총재 선임 움직임에 대해 구단들은 대체로 호응하는 분위기이다. 결국 총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단주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KBO 총재는 명목상 총회의 결정사항이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던 시대는 지났지만, 구단들이 지레 눈치를 보고 과거처럼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식이 돼버린다면, KBO는 계속 정치권의 입김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500만 관중, 그 것은 구단들이 피땀 흘려가며 마케팅해서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정치권 뒤치닥거리나 하는 단체로 위안을 삼아야합니까.” 어느 야구관계자의 일갈이 살 속을 파고드는 계절이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