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어른들은 이상스러우리만치 왼손잡이를 꺼려했다. 어린아이가 왼손으로 숟가락을 집을랴치면 기겁을 하면서 억지로 오른 손을 쓰도록 닦달했다. 왼손잡이를 비정상적인 것과 동의어로 치부한 것이다.
‘왼손잡이’를 뜻하는 gauche는 ‘결점, 비뚤어진, 비틀거리는’의미가 내포돼 있고 솜씨가 서투른, 세련되지 못한, 눈치 없는 따위의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같은 고정관념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세계, 특히 야구판에는 뛰어난 왼손잡이 선수들이 야구 역사를 아로새겨왔다.
왼손잡이 투수나 왼손잡이 복서를 지칭하는 ‘사우스포(southpaw)’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홈구장이었던 코미스키 파크의 마운드에 등판하는 좌완투수가 서쪽으로 얼굴을 향하게 돼 있었고, 투구시에는 팔다리가 남쪽으로 향하게 됨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구장 홈플레이트가 서쪽 방향에 배치돼 있었던 까닭에 1루는 남쪽 방향에 놓여 있었다.
이같은 홈플레이트의 배치는 오후에 경기를 하는 관계로 타자들이 태양의 직사광선을 피하고, 비싼 좌석에 앉은 본부석 관중들 역시 태양을 등지고 관전할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었다.
사우스포라는 말은 1891년 7월 신문의 핀리 피터 던 혹은 찰스 세이무어라는 기자가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른 한가지 설은 왼손잡이 복서를 지칭하던 이 말이 왼손투수로 전이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시카고 구단은 1991년부터 코미스키파크 정남쪽에 구장을 신축, U.S 셀룰러필드로 이름을 붙여 사용하고 있다)
유래야 어찌됐든 프로야구판은 사우스포가 활기를 찾는 무대이다. 역대 메이저리그의 강타자 가운데 베이브 루스, 배리 본즈 등은 모두 왼손타자였고 최근 한국 프로야구 판에서도 류현진(한화), 김광현으로 대변되는 좌완 투수들과 김현수로 상징되는 좌타자로 인해 왼손잡이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1980년대 한국프로씨름 최강자였던 이만기(현 인제대 교수)나 일본씨름 스모의 최강위인 요코즈나에 올라 있는 몽골인 아사쇼류도 왼손잡였다. 이만기가 한 때 씨름판을 호령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왼씨름(왼손은 다리샅바를, 오른손은 허리샅바를 잡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왼손 악력이 셌던 이만기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덕분이라는 풀이도 있었다.
일본프로야구 개인통산 최다안타(3085개) 기록 보유자인 재일교포 장훈(68)은 ‘만들어진’ 왼손잡이로 유명했다. 지난 10월 한달 간 일본 스포츠전문지인 에 ‘나의 길’이라는 자전적인 야구얘기를 연재했던 장훈은 자신이 왼손잡이가 될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과거사를 되새겼다.
장훈은 원래 오른손잡이였다. 그가 태어난 곳인 히로시마에 살고 있을 때 4살무렵 강변 제방 위에서 동네 어린아이들과 감자 따위를 불에 구워먹고 있는데 갑자기 3륜차가 후진하는 바람에 그만 오른손이 불구덩이에 빠져버렸다. 엄지와 인지가 안쪽으로 굽어져 펴지지 않고 중지는 반, 약지는 3분의 1가량으로 줄어들었고 새끼손가락은 아예 없어졌다.
이같은 신체적인 불리함 때문에 장훈은 어쩔 수 없이 왼손으로 야구를 할 수밖에 없었고, 처음에는 글러브를 끼긴 했으나 공을 던질 수도 없는 엄청난 어려움을 겼어야했다. 장훈은 “오른손에 핸디캡을 안고 있었던 나는 프로에 가기 위해서 남들보다 몇 배나 노력을 해야만 했다”고 술회했다.
장훈이 재일교포와 오른손 화상이라는 이중고를 딛고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서 ‘안타제조기’로 불리며 최다안타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초인적인 인고와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래 27년 동안 좌타자가 수위타자에 오른 것은 모두 16차례로 ‘좌파’ 우위를 보였다.
초창기 타격의 지존으로 군림했던 장효조(당시 삼성)가 모두 4차례(1985~1987년)나 타격왕을 따냈고, 그 후 김상훈(LG. 1988년), 이정훈(빙그레. 1991~1992년), 양준혁(삼성. 1993, 1996, 1998, 2001년), 김광림(쌍방울. 1995년), 김기태(쌍방울. 1997년), 장성호(KIA. 2002년), 이병규(LG. 2005년) 등 탁월한 왼손잡이들이 줄을 이었다. 올해에는 약관의 김현수(두산)가 리딩히터를 차지, 왼손 강타자의 계보를 계승했다.
김현수의 ‘무심타법’은 일견 장훈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신일고 시절 고교 최고 타자에게 주어지는 이영민 타격상을 받고도 프로 구단들의 외면으로 어렵사리 두산에 신고선수로 입단해야했던 김현수는 피나는 노력으로 입지의 불리함을 이겨냈다.
장훈이 안타왕이 됐던 것은 오른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 때문에 도에이 플라이어즈에 입단했을 당시 마쓰기겐지로 타격코치의 조언에 따라 자신의 몸에 맞는 타법을 계발한 덕분이었다. 마쓰기겐지로 코치는 장훈에게 “너는 중거리타자를 목표로 삼아라. 왼손잡이로 발이 빠르니까 그 이점을 잘 살려야 한다. 라이너로 우중간 좌중간을 꿰뚫으면 된다”조언했다. 장훈도 그 말에 공감했고, 중거리타자로 철저하게 훈련했다.
김현수도 그런 싹이 보였다. 김현수의 타구는 대부분 정타였고 라이너성이었다. 그렇지만 올해 168개의 안타 가운데 홈런이 9개에 그쳐 주위로부터 장타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김현수는 시즌 후 “내년에는 홈런을 많이 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방향전환을 선언했으나 전문가들은 장타력을 의식해 무리한 타격폼 수정을 시도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김현수는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나 이렇게 말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했던 것은 냉정함과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 것은 한 게 아니다. 스윙이 몸에 배어서 순간적으로 자기자신도 모르게 나가는 동작을 만드는 것, 그렇게 할 작정이다”고.
‘몸이 절로 알아서 반응을 하게끔, 무의식중에 방망이에 나가게 하는 것’, 그런 동작을 김현수는 꿈꾸고 있었다.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 전신) 전성기 시절 이른바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앞장서 이끌었던 이정훈(45. 전 LG 코치. 현 천안북일고 감독)은 왼손잡이 타자로서 해야할 훈련법에 대해 이런 조언을 던졌다.
“왼손타자는 몸쏠림 현상을 방지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좌, 우 번갈아 가며 타격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내 경우에는 현역 때 좌타석에서 스윙을 500개했다면 반드시 우타석에서도 100개를 해서 균형을 잡았다.”
올해 뿌듯한 성취감과 뼈아픈 좌절감을 동시에 맛봤던 김현수. 그의 변신을 눈여겨 보자.
홍윤표 OSEN 대표기자
(위로부터)일본 도쿄돔에 안에 있는 야구체육박물관에는 장훈의 배트를 비롯, 베이브 루스, 이승엽 등의 배트가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