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사상 첫 외국인 감독으로 선을 보였던 롯데 자이언츠 제리 로이스터(56) 감독과 일본 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스 보비 밸런타인(58) 감독의 가장 큰 공통점은 ‘팬과의 거리가 무촌(촌수 없음)’이라는 점일 것이다.
메이저리그 감독 출신인 두 감독이 팬들에게 친숙한 행보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다. 일본이나 한국 감독들이 팬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체면을 차리는 것과 비교한다면, 두 감독의 친근감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바롯데 마린스의 홈구장인 지바마린스타디움 1루쪽 덕아웃 위에는 펜스가 없다. 밸런타인 감독이 팬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구단측에 펜스 철거를 요청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대신 탁자와 의자를 갖다놓고 감독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거나 대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그 장소는 ‘MSZ’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마린사인존’의 약칭이다. 50대 후반의 밸런타인 감독은 가능한한 경기 전 그라운드 밖에서 팬들과 교류하기 위해 애쓴다고 한다. 그는 스스럼없이 팬들의 사인요청에 응한다. 때로는 감독실 창문을 열고 지나가던 열성팬이 들이미는 사인지에 사인을 해주기도 한다. 한국 감독들 같으면 엄두도 안내는 일이다(구장 구조가 다른 탓도 있겠다). 일본프로야구단 가운데 이렇게 열심히 팀 선전에 열을 올리는 감독은 아마도 밸런타인 감독이 처음일 것이라고 한다.
밸런타인의 이같은 행동, 특히 어린이에게 친근한 덕분에 ‘지바의 욘사마(배용준)’라는 애칭을 붙여준 일본 리포터도 있었다.(로버트 화이팅의 참조)
올해 사직구장 롯데 덕아웃에는 항상 ‘No fear(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문구가 벽에 걸려있는 보드에 씌여져 있었다. 이는 로이스터 감독이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경기를 하자는 격려의 뜻에서 써넣은 것이다. 로이스터는 이 글자가 지워질만하면 다시금 써넣곤 했다.
로이스터는 올 시즌 경기 전 애국가가 연주될 때 어김없이 4명의 팬과 그라운드에 함께 서서 들었다. 이는 롯데 구단이 사전에 신청을 받아 선별해서 로이스터 감독이 함께 자리한 것이다. 이같은 장면은 사직구장 전광판에도 영상처리해 감독과 팬이 거리를 좁히는데 한 몫을 했다.
로이스터 감독 또한 밸런타인 감독과 마찬가지로 팬들의 사인요청을 전혀 귀찮아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응해준다. 경기 도중에도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드는 등 ‘팬과 함께 즐기면서’ 경기를 치르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로이스터의 팬과 함께하기 행사중 압권은 그라운드에서 롯데의 고정응원가로 자리잡은‘부산 갈매기’를 팬들 앞에서 부른 것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9월28일 사직 KIA전이 열리기 전 허남식 부산시장과 함께 부산 갈매기를 열창했다.
이날은 롯데가 홈 63게임 가운데 21번째 매진과 더불어 올 시즌 홈경기 누적 관중수 137만 9735명을 기록하며 프로야구 역대 한시즌 최다관중 신기록을 경신한 날이기도 했다.
그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난 로이스터 감독은 “팬들이 나의 노래를 듣고 경기장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건넨 다음 “생각했던 것보다 한국어를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가을에도 야구하게 됐다는 뜻이고 우승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뜻”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야구장을 가득 메운 부산 팬들은 부산 갈매기를 따라 부르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로이스터 감독은 1군 로스터 확대 이전(26명 등록에 12명 출전)에는 두 명, 확대(30명) 이후(9월1일)에는 3명의 선수를 더 1군선수단에 합류시켜 데리고 다녔다. 백문이 불여일견, ‘훈련량이 적어지더라도 1군에서 실제 상황을 경험하는 게 낫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로이스터 감독의 선수단에 대한 공평성은 격려금 분배에서도 잘 드러났다. 롯데는 올해 2억 5000만 원의 격려금을 선수단에 지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이스터 감독은 기여도 등을 굳이 따지지 않고 균등하게 1군선수단과 2군 선수 일부에게 나눠줬다는 후문이다.
로이스터 감독의 이같은 행위는 선수들의 성취동기를 자극, 비록 첫 단계에서 멈추고 말았지만 롯데를 가을 잔치에 참여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지난 10월 8일 밸런타인 감독은 로이스터 감독을 보기 위해 일부러 롯데와 삼성의 2008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린 사직구장을 찾았다. 지난해 말 로이스터의 롯데 감독 부임에 결정적인 훈수를 둔 것으로 알려진 그는 “로이스터 감독이 지금까지 어느 누가 와도 해내기 힘들었던, 대단한 업적을 일궈냈다. 지금까지 잘해왔던 만큼 앞으로도 선수단을 잘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며 덕담을 던졌다.
밸런타인 감독은 이미 일본 프로야구계에서 성공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판에서 시험적인 한 해를 보냈던 로이스터 감독이 걷는 길은 아직 낯설고 이질적인 요소가 있긴하지만, 다른 지도자들이 눈여겨볼만한 구석이 분명히 있다. 적어도 팬들과의 벽을 완전히 허물고 한걸음 더 다가서려는 그의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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