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영욕 교차한 2008프로야구, 자기정화에 힘써라
OSEN 기자
발행 2008.12.12 09: 07

2008년 12월11일로 한국 프로야구는 출범 27돌을 지났다.
올해는 한국야구가 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낸 것을 정점으로 프로야구 500만 관중 돌파 등 경사스런 일이 곰비임비 일어난 반면, 시즌 후에는 엉뚱한 악재들이 잇달았다. 장원삼 트레이드 파동과 사인거래 의혹 폭로,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 선임 갈등, 일부 선수들의 인터넷 도박 연루설 등이 이어져 야구계가 어수선한 세밑을 보내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외형적인 급성장에도 불구, 자정 능력 부족으로 인한 취약점과 맹점을 여지 없이 드러냈다. 특히 그 동안 공공연한 비밀로 떠돌았던 일부 선수들간의 ‘사인거래설’은 자칫 프로야구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승부 짬자미의 불씨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인거래이다.
도박은 개인의 삶을 피폐시키지만, 선수들이 사익을 취하기 위해 행해지는 이같은 사인거래는 야구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팬들에 대한 큰 배신이자 우롱에 다름 아니다.
‘사인거래설’은 LG 트윈스 김재박 감독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흘린 것이 빌미가 돼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야구계 전반으로 번지는 듯했으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지난 12월3일 정기총회를 통해 손민한 회장의 명의로 각성의 계기로 삼자는 목소리를 내면서 어느정도 잦아들었다.
손민한은 선수들에게 보낸 인사말을 통해 “2000년 1월, 유난히 길고 추웠던 그 겨울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혹독한 시련을 견뎌내며 창립총회를 이끌었던 많은 선배들이 선수생명 단절의 위협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으며 팬들과 함께 거리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 그리고 눈물과 땀방울. 그런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고 되뇌었다.
손민한 선수협 회장의 진정어린 이같은 말은 프로야구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선수들이 새삼 곱씹어볼만한 대목이다.
손민한은 또 선수협 초대회장 송진우가 보낸 편지 한 구절도 소개했다.
“우리 야구인들은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고 송진우는 말했다. 과연 그같은 자부심을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이 가슴 속에 간직하고 경기에 임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사인거래와 관련, 손민한은 “2008년 프로야구계에는 부끄러운 일들도 있었습니다. 최근 일각에서 지적된 이른바 ‘사인거래’에 관한 사건입니다. 사실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논란이 제기된 근본적인 책임은 분명히 우리 선수들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다시는 이러한 불미스러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수 각자가 통철한 반성과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를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고 자성어린 목소리를 냈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 개막전 주심을 맡았던 심판계의 원로 김광철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장은 최근 “과거에 승부가 기운 다음 선수들, 특히 포수들간에 사인을 주고받는 일이 없지 않았다. 낌새가 이상해 당사자들을 나무라기도 했으나, 심증은 갔지만 확증을 잡지 못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심지어 프로야구 초창기에 선수생활을 했던 일부 유명 선수 출신들조차 사석에서 공공연하게 “xx의 도움으로 기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는 따위의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야구인들은 사인거래의 위험성과 폭발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사인 거래설’ 발설의 적절성 여부는 제쳐놓더라도, 차제에 프로야구판을 좀먹는 이같은 일련의 음험한,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야할 시점이 됐다는 게 뜻있는 야구인들의 주장이자 바람이다.
도박은 검찰이 수사중이어서 정확한 실체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소수의 선수들이 탐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박 역시 선수 개인을 갉아먹고, 나아가서 프로야구 전체를 수렁에 빠뜨릴 위험성이 있다. 행여 그런 판에 발을 들여놓았거나 기웃거리는 선수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고개를 돌리길 바란다.
사태가 생기면,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흐지부지 어물쩍 보낸 것이 야구계의 통례였다. 이제 그런 구태를 떨쳐버리고, 말을 앞세우지 말고 실천으로 팬 사랑에 보답해야 한국야구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제아무리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더라도 결국 자정의 주체는 선수들이 될 수밖에 없다.
김응룡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예전에 해태 타이거즈 감독 시절에 부업에 매달리는 주전 선수를 트레이드 시켜버린 적이 있다. 한 눈파는 선수의 미래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선수들 스스로 뼈아픈 각성을 하지 않으면 한국 프로야구의 미래는 어둡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손민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과 송진우 초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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