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 제 16대 총재 인선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 대변인이자 주무관청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문제를 삼고 나선 것이다.
일부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왜 사전에 주무관청인 문체부와 아무런 조율이나 협의를 거치지 않고 프로야구 사장단이 마음대로 새 총재를 추대키로 했느냐’가 딴죽을 건 요지이다. ‘관례상’ KBO 총재 승인권을 쥐고 있는 문체부와 사전 협의를 거쳐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문체부측이 불쾌감을 표현한 것은 실제는 KBO와 8개구단 사장단에 대해서 ‘정부의 사전 허락을 받아야한다’는 강력한 경고를 던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KBO 정관 제3장 제10조 조항에 따르면 ‘총재는 이사회에서 ¾ 이상의 동의를 얻어 추천하며, 총회에서 재적회원 ¾이상의 찬성으로 선출한 후 감독청의 승인을 얻어 취임한다’고 돼 있다. 그 어디에도 사전에 감독관청과 협의를 거쳐야한다는 조항은 없다. 선임 후 승인을 얻으면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는 것이다.
이 정관은 당연히 문체부의 승인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문체부가 관례를 들먹이며 선임절차를 문제 삼고 나선 것은 특정한 체육단체에 대한 월권이자 부당한 간섭이고 권리 침해에 다름 아니다. ‘야구 모법’인 정관에 따른 정당한 총재 추천 절차에 대해 문체부가 시비를 걸고 나선 것은 그러므로, 다른 저의가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만약 KBO 총회에서 선임한 총재에게 결격사유가 있다면 문체부가 승인을 거부하면 되는 노릇이다.
표면적으로 절차를 문제 삼는다면, 그 동안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인사들’은 프로야구단과 사전에 상의를 했느가, 그런 절차는 밟았는가’되묻고 싶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불행하게도 역대 KBO 총재가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박용오 총재 때를 빼놓곤 한결같이 정치권 인사가 낙하산을 타고 수직으로 내려왔다. 정권교체 때마다 논공행상의 부산물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KBO 총재직에 정치인을 앉히는 일이 되풀이 돼 왔다.
프로야구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장단은 지난 16일 간담회를 통해 유영구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을 신상우 총재의 후임으로 추대키로 의견을 모으고 이를 언론에 공표했다. 그리고 18일 오전 이사회에서 정식으로 결의를 하고 영입 절차를 밟으려 했으나 문체부가 급제동을 거는 바람에 이사회는 23일로 느닷없이 연기됐다.
사장단의 추천은 이사간담회 때 신상우 총재가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한데 따른 것이다. 한 구단의 사장은 “총재 공백이 길면 안좋으니까 되도록이면 빨리 진행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져서 그렇게 추진했다고 한다.
신상우 총재는 이례적으로 그 자리에서 사장들의 후임 총재 천거 요청을 받자 “내가 추천하면 문제가 된다. 사장단이 자율적으로 덕망 있는 분을 모셔오길 바란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대목에서 신 총재의 ‘자율적’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신 총재 역시 노무현 정권 때 낙하산 인사로 내려왔던 터였다. 따라서 자율적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자면, 자신의 임기 안에 이명박 정권 관련 인사들이 자천타천으로 밀고 들어오려고 한 움직임에 대해 나름대로 반감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렇다면, 정당한 과정을 밟아 가고 있는 총재 선임 일에 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일까.
KBO 총재는 12~14대 총재를 역임한 전 두산그룹 박용오 회장을 선임할 당시인 1998년 구단간에 ‘구단주들이 돌아가면서 한다’고 내부방침을 세웠으나 문체부의 승인을 얻지 못해 상당한 곡절을 겪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해 11월 3일 문체부는 구단주의 총재 겸임 허용을 골자로 한 KBO의 정관 변경 승인요청을 반려했다. 실제로는 거부한 것이다. 정대철 전임 총재가 비리 혐의로 도중하차한 후 9월 15일 구단주 임시총회에서 박용오 OB 구단주를 일단 총재 대행으로 선임한 뒤 10월 10일 정관 제 3장 임원선출의 조항에 명기돼 있던 ‘총재는 회원의 임직원이 아닌 중립적인 인사 중에서 선출해야한다’는 부분의 삭제 개정을 문체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결국 박용오 총재대행은 대행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11월 27일 일시적으로 사퇴한 다음 OB 구단주직에서 물러나고서야 12월 8일 정권의 눈총을 받으며 어렵사리 첫 민선 총재로 취임했다. 박용오 전 총재는 취임 당시 “월급과 판공비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 임기내 자신의 언약을 지켰다.
구단주 출신 인사로는 최초로 박용오 두산 구단주가 총재직을 맡기는 했으나 그마저 신상우 총재가 노무현 정권의 입김으로 제 15대 총재로 앉으면서 이 묵계가 깨져버렸다. 정치권 눈치보기의 해묵은 악습이 되살아난 것이다.
구단들은 정치권 인사의 폐해를 절감하면서도 그 동안 정권 교체 때마다 섣부른 대응을 할 경우 자칫 정권의 ‘괘씸죄’에 걸리지나 않을까 저어한 나머지 울며 겨자먹기로 낙하산 인사를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한국프로야구 행정 총수인 KBO 총재는 연봉 외에 판공비, 기사 딸린 승용차 제공 등 연간 수억 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자리이다. 그 때문에 정치권 주변 인사들이 탐을 내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정치인 총재를 선호하거나, 어쩔 수 없이 수용했던 한 가지 이유는 여전히 취약한 야구 인프라 구축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대 정치인 총재들은 이같은 현안 해결에는 뒷짐을 진 채 얼굴 알리기에만 신경을 곤두세웠고 비리로 도중하차 하거나 정권이 바뀌면 교체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됐다. 새로 들어선 정권은 KBO 총재직을 마치 전리품 정도로 여겨 논공행상의 부산물로 전락시켰다는 것이 프로야구계의 공공연한 자조의 목소리였다.
박용오 총재 이후 KBO 총재 선출은 ‘타율’로 다시 돌아갔다. 과거처럼 ‘관치’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자율’의 기치를 높이 쳐들고 발전의 길을 모색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한 야구계 인사는 “때가 어느 땐데 KBO 총재 인선마저 과거의 잣대를 들이대는지 모르겠다. 구단이 추구하는 방향이 옳고 맞는 방향인데 문체부가 제동을 거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인 시각이 아닌가”하고 물음을 던지면서 “비단 야구만이 아니라 스포츠 전반을 놓고 볼 때 과연 어느 방향이 올바른 길인지 헤아려야한다”고 지적했다.
2008베이징올림픽 금메달, 500만 명 관중 재돌파 등 올해 프로야구의 위상은 한껏 높아져 있지만 세상은 IMF 버금가는 세계적인 경제 난국이다. 각 구단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모그룹은 요동치고 있는 판이다.
이 참에 한국 프로야구도 야구 열정과 야구산업을 장려, 육성할 수 있는 전문식견을 갖춘 헌신적인 사람이 총재직을 맡을 때가 됐다. KBO 총재 자리가 처지가 궁색해진 정치인들의 일시적 피난처나 흘러간 인사들의 노후를 보장하는 자리가 결코 돼선 안된다는 게 중론이다.
사장단은 23일 이사회에서 KBO 총재를 무보수 명예직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키로했다. 귀추가 주목된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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