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 히어로', 명랑하게 볼수없는 이유
OSEN 기자
발행 2008.12.21 08: 29

실종된 기획의도, 연예인 신변잡기로 가는 ‘명랑히어로’
[OSEN=정덕현의 명랑 TV]‘명랑히어로’가 처음 방송을 탔을 때, 그것은 토크쇼의 놀라운 진화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그저 웃고 떠들고 즐기는 연예인들만의 이야기로 채워지거나 출연자들의 홍보수단으로 활용되던 토크쇼를 넘어서 사회 시사문제를 예능 프로그램 속으로 과감히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시사문제라면 늘 심각하고 무언가 특정한 사람들만이 거론해야될 것으로 오인되었던 것을 ‘명랑히어로’는 가볍게 씹어줌으로써 그것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웃고 떠들면서 체화시켰다.
‘명랑히어로’의 형식변화, 진화일까 퇴화일까
하지만 무슨 일인지 이 재미와 의미까지 가질 수 있었던 훌륭한 형식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 포맷은 가상장례식을 표방한 ‘두 번 살다’로 바뀌었다. 그러자 ‘명랑히어로’가 가진 외부에서 끌어오는 토크쇼의 화제는 결국 과거 토크쇼들이 하던 연예인들의 이야기로 퇴행했다. 토크쇼의 진화로서 받아들여지던 ‘명랑히어로’는 이 순간부터 퇴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두 번 살다’란 결국 화제에서 현재 벗어나고 있는 연예인을 죽음이라는 형식 속으로 집어넣고는 다시 그를 회고해 살려내는 토크쇼다. 이것은 한 마디로 죽어가는 이미지를 살리는 작업과 마찬가지다. 결국 연예인 홍보라는 얘기다.
그나마 ‘두 번 살다’는 그 형식만으로는 참신한 면이 있었다. 누군가 결국은 맞이하게 될 죽음을 미리 체험해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며, 또 그것이 토크쇼 형식으로 들어왔을 때 묘한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사실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하는 가상 장례식에서 문상의 형식으로 자리를 한 선후배 연예인들이 오히려 고인(?)의 험담을 할 때다. 즉 이 형식은 본래 의도를 거스를 때 재미를 줄 수 있는 구조다. 이것은 그만큼 대중들은 홍보지향형 토크쇼를 금세 간파해내고 쉬 식상해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있다는 자인인 셈이다.
그 한계를 일찍이 알았기 때문일까. 이제 바뀌어진 형식은 ‘명랑한 회고전’이다. 이것은 형식적으로도 전혀 새롭거나 참신한 것이 아니다. 그저 한 명의 주인공을 세워놓고 그 사람에 대해 증언을 하는 형식은 아침방송에 늘 등장하는 고전적인 토크쇼의 그것일 뿐이다. ‘인생중간점검프로젝트’라고 거창하게 붙여 놓았지만 이것은 결국 ‘두 번 살다’의 노골화된 홍보 토크쇼로의 귀환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초창기 ‘명랑히어로’와 비교해보면 과도하게 연성화된 형식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의도가 산으로 가는 ‘명랑토론회’
한편 새로운 코너로 등장했던 ‘명랑토론회’ 역시 처음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게스트가 책을 한 권 선정하고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TV 책을 말하다’같은 교양프로그램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는 바로 ‘명랑히어로’가 초기 시사문제를 끌어들였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초반 신선하다 생각했던 이 포맷은 점차 책 이야기는 사라지고 게스트를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세워놓은 채, 저들끼리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코너로 변질되고 있다.
박진희가 들고 나온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은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부부가 그래도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그런데 ‘명랑토론회’에서 이 책을 가지고 고작 한 이야기는 자신들의 연애에 얽힌 스킨십 이야기나 첫날밤에 대한 이야기에 불과했다. 정작 책을 들고 나온 박진희는 거의 아무런 얘기를 하지 못했고, 마지막에 가서 긍정적으로 하는 말이 “보통의 남자는 이런 감성 이해할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라디오스타’에서 목격했던 김구라, 신정환, 윤종신, 김국진 4자 구도로 만들어진 그 분위기의 연장선이다. 물론 ‘라디오스타’는 여전히 매력적인 구도를 갖고 있지만 그 형식이 과도하게 스핀오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형식의 과도한 소비가 참신한 형식마저 식상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것은 취지가 ‘라디오스타’와는 다르다. ‘라디오스타’는 말 그대로 스타들을 게스트로 출연시켜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연예인 토크쇼를 표방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홍보성 멘트를 불식시키는 불친절한 형식이 어떤 공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명랑한 책이 지구를 움직인다’는 캐치프레이즈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을 읽고싶은 욕구를 만들어내야 그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다.
토크쇼에 있어서 의외성이 갖는 참신함과 의도 자체가 산으로 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 프로그램 말미에 박진희가 그나마 챙겨준다고 한 말과 거기에 대해 김국진이 보탠 자성적인 말은 그래서 의미 있게 들린다. 박진희는 “여섯 가지 다른 생각을 배우고 가서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고(물론 이 말은 아마도 자기 생각과는 달랐던 MC들의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거기에 대해 김국진은 마치 자신들의 토크쇼가 엉뚱한 곳에 와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이 “여섯 가지 생각이 한 가지 생각보다 못한 적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명랑히어로’, 그 이름에 걸맞는 명랑한 토크쇼로 다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정덕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ansuri@osen.co.kr 블로그 http://thek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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