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KBO총재, 낙하산은 가라…공모제로 돌파구를
OSEN 기자
발행 2008.12.26 09: 35

어둠의 그늘이 깊다. 영욕이 극명하게 교차했던 2008년 프로야구계가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낙하산 총재’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며 큰 내상을 입었다. 일시적인 소강상태에 접어들긴 했지만, 근본적인 시비는 잦아들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서 절차상의 문제와 관례를 들먹이며 한국야구위원회(KBO) 사장단의 자율적인 의지를 억누르는 바람에‘혹시나’했던 새 총재 선임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새 총재로 추대키로했던 유영구(62)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에 대한 외압설은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폭거나 다름없다. 역대 정권이 휘둘렀던‘조자룡 헌 칼’을 이 정권 역시 버리지 못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아직도 이 나라 스포츠계가 자유로운 풍토에서 단체의 수장마저 선출하지 못할정도로 비민주적인 구조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정당한 선출마저 문체부가 ‘사전 교감이 없었다’는 따위의 뻔한 수사로 압력을 행사한 것은 권력의 언어 폭력적인 행태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당초 12월 16일 프로야구 사장단은 간담회를 통해 자율 선출의 기치를 들었지만 정부의 서슬푸른 으름장 앞에 속수무책으로 그 뜻을 접었다. 18일로 예정됐던 총재 선출 이사회(사장단 모임)가 23일로 연기됐고, 그 날 이사회는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몸을 사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대기업 산하의 야구단 사장들로서는 추위를 탈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땅인 것이다.
23일 이사회에서는 ‘총재 공모제’ 논의가 있었다. 조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제기한 공모제는 비록 공론화 되지는 못했지만 잠복성 의제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 이사회에 참석했던 한 구단 사장은 “총재 공모제로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기회의 장을 만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정치권에서) 그냥 밀고 내려오는 낙하산도 부담스럽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자연스럽게 추대할 수 있는 좋은 모양새를 갖추는 것(공모제)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오갔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런 토의가 있었다는 정도로만 해놓고 이번 발표에서는 빼버렸으나 폐기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안’이라고 그 사장은 설명했다.
어차피 KBO 총재 선임 문제는 내년으로 넘어갔다. 일각에서는 2월 중순이나 3월초가 돼야 윤곽이 잡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새해 들어 갖게 될 첫 이사회에서 총재 공모제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모제는 ‘정치권 위장 낙하산’의 여지를 남겨놓고는 있지만 객관적으로 응모 인사들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야구발전에 헌신할 수 있는 적임자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는 전두환 정권 시절 치자의 방편으로 탄생했다.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 그 후 꾸준한 성장으로 현재 국내 최고 인기종목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총재 인선은 여전히 관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체부가 절차와 관례를 걸고 넘어졌지만, KBO 정관상에는 총재 선출은 어디까지나 감독관청인 문체부의 사후 승인만 받으면 된다. 사전 동의 조항은 없다. 사전에 조율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문체부가 절차문제 운운하며 제동을 건 것은 권력 나팔수의 횡포이다.
창립 30년 세월 눈 앞에 두고 있는 프로야구판에 부당한 간섭으로 올바른 길을 가려는 야구단의 뜻을 꺾어서는 안될 일이다. 소띠해를 맞아 소처럼 우직하게 프로야구계가 총재 자율 선출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훼방을 놓아서는 안된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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