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박찬호- 김현수- 로이스터, ‘눈물은 왜 짠가’
OSEN 기자
발행 2009.01.16 09: 30

허수경 시인은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라고 읊었습니다만, 가슴을 저미는 듯한 큰 슬픔은 감당하기 어려운 게 우리네 세상살이입니다.
지난 13일, 박찬호(37.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 불참하게 된 사유를 설명하던 기자회견 석상에서 그만 눈물을 비치고 말았습니다. 느닷없는 ‘박찬호의 눈물’은 일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황케했지만 잠시 뒤 알 수 없는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 천하의 박찬호가, 한국을 대표하는 메이저리거가 눈물을 흘릴 때도 있구나, 언제나 강한 줄만 알았는데, 박찬호한테도 여린 심성이 숨어 있었구나, 하는 뜻밖의 발견이었습니다. ‘순정(純情)한 사나이의 눈물’로 기억될 장면이었습니다.
또 한사나이의 눈물이 생각납니다. 김현수(21. 두산 베어스)는 작년 한국시리즈 최종 5차전(10월31일, 잠실구장)에서 끝내 한방을 때려내지 못하고 팀이 무릎을 꿇자 너무 상심한 나머지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정도로 충격을 받아 선배인 이승학의 부축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나왔습니다. 라커룸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았던 김현수가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남들이 보지 않는 덕아웃 옆 후미진 곳에서 붉게 충혈된 눈으로 물끄러미 그라운드를 바라보던 잔영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무엇이 이제 갓 스무살의 청년을 울리게 했을까. 험한 승부세계에서 밥줄을 대고 있는 그의 눈물은 자신의 실수와 부족함을 곱씹는 회한과 자성의 뼈저린 눈물이었을 겁니다. 그의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아픔’으로 바꾸어놓아도 좋겠습니다.
또 한사람을 떠올립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57)도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2008년에 롯데를 8년만에 가을잔치에 참여 시켰던 로이스터 감독은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내리 3연패를 당해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10월 11일 대구구장에서 3차전 후 롯데 응원 관중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박수를 보내자 로이스터는 그라운드 안에서 줄줄 눈물을 흘렸습니다. 진한 아쉬움 속에 열광적인 롯데 관중들의 응원의 물결에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고 만 것입니다.
로이스터는 그 날 “관중 신기록을 세우고, 야구를 모르는 사람을 야구팬으로 만든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수백번하고 싶다”고 무한 감사의 뜻을 롯데 팬들에게 전했습니다. 비록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시즌 내내 돌풍을 일으키며 ‘가을야구 한마당’으로 이끈 선수들과 열렬한 응원을 보내준 롯데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것입니다.
2008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에서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확정 짓는 순간, 그라운드에서 감격의 눈물을 뿌려댔던 선수들의 피땀어린 눈물은 아마도 평생 잊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 눈물은 언제봐도 보기 좋습니다.
눈물에도 색깔이 있을까요?
눈물의 성분은 98.55%의 물외에 소량의 나트륨, 칼륨 등의 염류와 알부민, 클로블린 같은 단백질 그 외에 특수한 성분이 함유돼 있다고 합니다.
기뻐서 우는 눈물, 슬퍼서 우는 눈물, 설움에 복받쳐 흘리는 눈물 등은 성분 비율이 약간씩 다르며 특정 물질이 분비 된다고 합니다. 사나이의 닭똥 같은 굵은 눈물이 있는가 하면, 여인네의 애처로운 흐느낌도 있습니다. 원한에 사무쳐 흘리는 피맺힌 눈물도 있고, 기쁨에 겨워 저절로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박장대소하던 나머지 눈가에 맺히는 눈물이 있는가 하면 애를 태우던 끝에 이슬처럼 영롱하게 서리는 눈물도 있겠습니다.
눈물에는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눈물은 자기정화의 촉매제가 되기도 합니다.
함민복 시인은‘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를 통해 짠한 눈물의 의미를 노래했습니다.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중략)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중략)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댓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시인의 시집 에 수록된 시 ‘눈물은 왜 짠가’에서 발췌 인용.
올해는 박찬호가 새로 둥지를 튼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그토록 바라던 선발 한 자리를 꿰차고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한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현수는 지난 해의 아픔을 말끔히 씻고 다시 타격왕에 오름과 동시에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으면 좋겠습니다. 로이스터 역시 좌절을 딛고 롯데를 가을 잔치로 올려놓고 작년과 같은 무기력한 패배를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이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릴 그 날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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