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하와이 합훈 급제동' 추신수, 마쓰자카를 꺾고 이치로를 넘어라
OSEN 기자
발행 2009.01.30 08: 49

2006년 3월 5일, 일본 도쿄돔 구장에서 열렸던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최종전에서 한국 대표팀은 일본 대표팀을 3-2로 꺾고 아시아예선을 1위로 통과했다. 0-1로 이끌려가던 한국은 8회에 이승엽이 중전안타로 나간 이종범을 1루에 두고 일본의 4번째 투수 이시이 히로토시를 역전 결승 2점 홈런으로 두들겼다. 우익수 이진영은 4회 2사만루의 위기에서 니시오카 쓰요시의 강한 안타성 타구를 쏜살같이 몸을 날려 걷어내 분위기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고 9회에 마무리로 등판했던 박찬호는 마지막 타자 이치로를 내야뜬공으로 잡아내 경기를 매조지했다.
한-일전에 앞서 이치로(36. 시애틀 매리너스)는 “30년 동안 (한국이) 일본을 이기지 못하도록 만들어주겠다”, 마쓰자카 다이스케(29. 보스턴 레드삭스)는 “아직 멀었고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큰 소리쳤지만, 코가 납작하게 됐다. 그 경기 후 이치로는 일본측의 덕아웃 분위기에 대해 “굴욕적이었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반면 이승엽은 이치로의 망언에 대한 기자들의 물음에“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야구 역사가 길기 때문에 항상 배운다는 자세로 나선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슈퍼스타이고 배울 점이 많은 선수”라고 의젓하게 대꾸했다.
다시 3월 16일 일본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에인절스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WBC 2라운드 1조 마지막 경기에서 박찬호의 선발 5이닝 무실점 호투와 8회 이종범의 기가막힌 역전 2타점 결승타로 일본을 2-1로 또 누르고 4강에 올랐다. 비록 이상한 되돌려붙기에 의해 한국은 일본과 3번째로 맞붙어 패하는 바람에 4강에 머물기는 했으나 온 나라를 야구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러 감격의 순간들을 되새겨볼 때가 돌아왔다. 오는 3월부터 열리는 제2회 WBC에 한국은 물갈이 된 전력으로 세계 4강 신화에 재도전한다. 비록 1회 대회 때 한국 대표팀의 중추를 이루었던 이승엽과 박찬호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빠졌지만 메이저리그의 ‘떠오르는 무서운 존재’추신수(27.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비롯 타선에 김현수(21. 두산 베어스) 같은 젊은 피들이 대거 참여, 기대해볼만하다.
타자 가운데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추신수이다. 이승엽의 공백을 메워줄만한 자질을 충분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엽과 같은 좌타자인 추신수에게 해결사 노릇을 해주길 바라는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다.
올 시즌 빅리그 무대에서 맹활약이 기대되는 추신수는 최근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인 MLB.com이나 ESPN 등의 매스컴에서 잇달아 찬사를 듣고 있다.
지난 29일(이하 한국시간) MLB.com의 안소니 카스트로빈스 기자는 추신수를 ‘클리블랜드의 가장 이상적인 3번 타자(Choo might profile as an ideal No. 3 hitter)’로 꼽았다. 추신수의 우완투수 상대 능력은 이미 메이저리그 정상급 실력이고, 왼손 투수를 상대로 한 타격 또한 부쩍 향상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설명한 것이다.
추신수는 2008시즌 메이저리그 우완투수들과의 맞겨룸에서 3할1푼7리(240타수 76안타)의 고타율에 11홈런, 52타점을 기록했다. 우완 상대 OPS(출루율+장타율)는 0.992로 메이저리그 전체 타자 가운데 9위이고 알렉스 로드리게스(34. 뉴욕 양키스), 카를로스 페냐(31. 템파베이 데블레이스), 마크 테세이라(29. 뉴욕 양키스. 이상 .994)같은 강타자들에게 버금가는 성적이다.
추신수는 좌투수 상대 타율이 2007시즌에는 1할7푼9리(28타수 5안타)에 불과했지만, 작년에는 안소니 기자의 표현대로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여 3홈런과 14타점을 곁들여서 2할8푼6리(77타수 22안타)로 껑충 뛰었다.
스포츠전문 케이블 ESPN의 버스터 올니 기자는 지난 26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추신수를 일러 ‘우완 투수에게 가장 위험한 타자 중 한 명(The Indians' Shin-Soo Choo is one of the most dangerous hitters in the big leagues against right-handed pitchers)’으로 지목했다. 그는 또 추신수를 마크 테세이라(29·뉴욕 양키스)와 아드리안 곤잘레스(27.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헨리 라미레스(26. 플로리다 말린스)와 동급으로 인정하는 등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투수를 상대로한 추신수의 강력한 타력은 일본 대표팀 마운드의 핵심 우완인‘Dice-K’마쓰자카 공략에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1회 WBC 당시 일본의 에이스로 우승을 이끌어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던 마쓰자카는 이번 대회에도 이치로와 더불어 일본 대표팀의 투-타 기둥선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쓰자카는 지난 1월 12일에 발매된 일본의 주간 시사전문지 와 가진 인터뷰에서 “WBC에서는 질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챔피언이기 때문”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2007년 빅리그로 무대를 옮긴 이후 첫 해 15승(12패)을 올렸던 마쓰자카는 2008시즌에는 18승으로 승수를 늘렸고 패수는 3으로 줄였다. 그 덕분에 마쓰자카는 전미야구기자협회 소속 28명의 사이영상 선정위원에 의해 아메리칸리그 후보 4위에 오르기도 했다.
“WBC에 나가는 것이 1회 대회 때와는 달리 중압감을 느낀다”고 말한 마쓰자카는 그러나 “그런 가운데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긴다”고 여유를 보였다. 마쓰자카는 작년 11월부터 훈련을 쉬지 않고 계속했고, 1월부터는 투구연습도 했다. 이치로를 포함한 일본 선수들이 이번 WBC를 앞두고 얼머먼큼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반증이다.
한국은 이번 WBC 아시아 지역 예선전을 도쿄돔에서 치른다. 3월5일 까다로운 상대 대만과 첫 게임을 갖고 이기면 일본-중국 승자와, 지면 일본-중국 패자와 붙는다. 2차전에서 이기면 1차전 승자끼리의 대결에서 진 팀과 다시 맞붙어 이겨야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 ‘더블 일리미네이션’방식으로 예선 1, 2라운드를 치르는 이번 대회는 대진 일정도 한국에 불리해 여러 악조건 속에서 헤쳐나가야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어찌됐든 한국으로선 1차전을 이긴다면, 2차전에서 만날 것이 틀림 없는 일본의 벽을 반드시 돌파해야 예선 탈락의 위험이 없어진다. 일본을 꺾으려면, 한국전에 선발로 나올 공산이 큰 마쓰자카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 선봉장에 추신수가 서주길 바라는 것이다.
추신수의 대표팀 합류를 놓고 돌발 변수도 생겼다. 소속 클리블랜드 구단이 올 시즌 팀 주축 타자로 활약을 기대하고 있는 추신수에 대해 3월1일 대표팀 합류를 허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물론 2월15일부터 하와이에서 열리는 한국대표팀 합동훈련에 추신수가 빠지게 된다는 뜻이다.
한국야구위원회 이상일 본부장은 30일 “클리블랜드 구단이 부상선수 관리 차원에서 추신수를 한국 대표팀이 일본으로 들어가는 3월1일에 합류하도록 했다. 그래서 KBO가 29일에 클리블랜드 구단에 며칠만이라도 하와이 훈련에 합류할 수 있도록 협조 공문을 보냈으나 아직 답변은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아울러 클리블랜드 구단이 KBO에 추신수가 1라운드에서는 지명타자로 두 차례, 외야수로 한차례만 뛰도록 제한을 했고, 2라운드에 올라가면 지명타자 한 차례, 외야수 두 차례로 조건을 걸었다고 전했다. 추신수는 2007년 9월26일 왼쪽 팔꿈치 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고 재활을 거치는 바람에 작년 시즌 초 61일간 부상자 명단(DL)에 오른 바 있다. 메이저리그 구단은 당초 45일 이상 DL에 올랐던 선수는 이번 WBC 대회에 출장을 불허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추신수는 특별히 허락을 받앗다는 것이 KBO측의 설명이었다.
추신수가 끝내 하와이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할 경우 호흡을 맞추는 기간이 짧아져 대표팀 운용에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지명타자로만 뛴다면 별 문제는 없겠지만 외야 수비로 나설 경우에는 어려움이 예상 된다. ‘닫는 말이 돌부리에 채이는 격’이 돼버린 한국 대표팀으로선 고민스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