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한국 야구대표팀의 4번타자로 맹활약했던 김응룡(69)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자신의 생애 통산 홈런수를 알지 못한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김 사장은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홈런수를 알 수 없다. 당시 연간 치르는 경기가 몇 차례 되지 않아 너댓 개만 쳐도 홈런왕소리를 들었던 시절이었지만…”이라며 쓴 입맛을 다셨다.
보관해왔던 개인적인 야구 자료와 관련해 김응룡 사장은 “경산 삼성야구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빼곤 그 동안 이사할 때마다 정리하며 버리곤 해서 집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현역 시절 명성을 날렸던 분도 이 지경이니 다른 야구 원로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원로들이 한분 두분 저 세상으로 떠나고 소중한 자료들도 사라지고 있다. 한국야구사를 증거할 사료의 유실은 ‘역사의 생매장’이나 다를 바 없는 노릇이어서 안타까움이 크다.
한국 프로야구가 오는 2011년 출범 30년째를 맞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국내 최고 인기종목으로 자처하고 있는 야구가 여태껏 변변한 사료관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은 자못 아쉬운 노릇이다.
때마침 한국야구위원회(KBO) 새 총재로 내정된 유영구(64)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이 지난 11일 프로야구 사장단 간담회에서 야구박물관 설립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선, 의욕은 있어도 공간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긴 하다.
KBO는 올해부터 야구박물관 설립에 따른 사전 준비작업에 본격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일 KBO 총괄본부장은 12일 “당초 올해 예산 151억 원 안에 야구박물관 설립 준비 예산도 책정해 놓았으나 심의 과정에서 세부항목이 아닌 일괄해서 11억 원이 삭감됐다”면서 “그렇지만 일부분을 아껴서 올해부터 준비에 들어갈 작정”이라고 설명했다.
야구박물관이 들어설 공간은 이미 몇 차례 보도된 바와 같이 서울시가 부지 매입을 끝낸 것으로 알려진 서울 고척동 하프돔 구장 안에 마련된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서울시가 고척동 하프돔에 공간 제공을 약속했다. 고척동 하프돔은 동대문야구장을 철거하는 대신에 짓는 곳이고, 야구박물관 장소는 구장 설립 계획서에도 들어 있다”고 밝혔다.
KBO가 개관을 목표로 잡고 있는 것은 프로야구 30년째인 2011년이다. 만약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면, 야구계가 한 가지 숙원을 푸는 셈이다.
야구박물관은 크게 사료관과 명예의 전당으로 구성된다. 명예의 전당은 일본의 경우를 원용한다면, 경기표창자와 공로자로 나누어 헌액자를 가리게 된다. 앞으로 선정위원회 같은 조직이 구성돼야 하겠지만, 누가 과연 첫 헌액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집중된다.
공로자 부문에서는 야구계를 관통해서 볼 때 여러 사람들을 후보로 들수 있겠지만, 프로야구로만 국한해서 본다면 한국시리즈 10차례 우승(해태 9번, 삼성 1번) 위업을 달성했던 김응룡 사장 등이 우선 거명될 수 있겠다.
경기 부문 헌액자로는 현역은 일단 배제해 놓고, 프로야구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가 기록을 따져 볼 때 원년인 1982년 프로야구 유일무이의 4할대 타율(.412)로 타격왕에 올랐던 백인천(66. 당시 MBC 청룡)을 비롯 ‘한국 최고의 왼손 교타자’ 소리를 들었던 장효조(53. 삼성 라이온즈) 등이 우선 거론될 수 있겠다.
장효조는 프로야구 개인통산 타율 1위(.331)를 지니고 있는데다 1983년과 1985~1987년 등 4차례나 타격왕에 올랐다. 장효조가 보유한 3년연속 타격왕 기록은 아직 아무도 깨지 못했다.
1984년 프로야구 최초 타격 3관왕(타율, 홈런, 타점)에 올랐던 이만수(51. 삼성), 프로야구 원년 홈런왕 김봉연(55. 해태 타이거즈), 원년 도루왕이자 개인통산 최다인 5차례나 도루 1위(1983~1984, 1989~1990년)를 기록한 김일권(53. 해태) 등도 유력한 후보이다.
투수 부문에선 프로야구 원년 우승의 주역이자 22연승의 신화를 일궈냈던 박철순(53. OB 베어스), 1983년에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 선발 44게임 등판, 36게임 완투 및 8게임 연속 완투승, 한 시즌 최다인 30승 등 경이로운 기록들을 수립했던 재일교포인 고 장명부 등을 들 수 있겠다.
초창기 프로야구 마운드를 주릅잡았던 최동원(53. 롯데 자이언츠)과 선동렬(47. 해태)도 빼놓을 수 없다. 최동원은 1984년 롯데 우승 당시 한국시리즈 4승으로 철완을 과시했고, 선동렬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로 숱한 기록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선동렬은 한국 최초 투수 3관왕(1989~1991년)을 필두로 투수 3관왕만 4차례(1986년 포함) 달성했고, 0점대 평균자책점(1986년 0.99), 개인통산 평균자책점 1위(367게임, 1647이닝, 1.20), 최초 1500탈삼진 돌파(통산 1698탈삼진) 등 이루 헤아리기 숨가쁠정도로 한국 프로야구사에 찬연한 족적을 남겼다.
여러 분들은 과연 누가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최초 헌액자로 적임자라고 생각하십니까.
홍윤표 OSEN 대표기자
(위로부터)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김응룡 감독, 은퇴식에서 눈물을 비친 박철순, 선동렬의 역동적인 투구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