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가 또 다시 세계 4강에 올라갔습니다. 우리 대표팀은 야구 월드컵 대회격인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당초 걱정한 것과 달리 준결승에 진출했습니다. 3년 전 1회 대회에서 4강 신화를 쌓고 지난 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기적과 같은 금메달을 따내 한국야구가 세계 정상급이라는 사실을 각인 시켰으나 이번 대표팀은 박찬호, 이승엽 등 해외파 베테랑들이 대거 빠져 자칫 초반 탈락이라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령탑을 떠안은 김인식 감독(62)이 어려운 가운데 노련한 용병술과 젊은 선수들이 힘든 일정과 시차를 짧은 기간내 극복하는 놀라운 투혼을 발휘한 덕분에 2회 연속 4강 진출을 일궈내며 세계야구계에서 당당히 메이저 그룹으로 대접 받게 됐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항상 일본에 뒤진 수준으로 인식됐으나 이제는 세계 대회와 올림픽 등 국가 대항전만큼은 최고 기량을 갖춘, 상대하기 겁나는 팀으로 모두가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돈을 많이 쓰는 일본과 주관국인 미국의 야구가 머쓱하게 됐습니다. 일본은 3년 전 이 대회에서 한국에 2패를 당하고도 묘한 대회 규정 덕분에 우승을 차지해 체면을 세웠으나 이번에도 한국에 2패를 당해 아시아 지역 맹주라는 자부심에 큰 상처를 받게 됐습니다. 이치로가 세계 최고 타자라고 하지만 예전의 지도자인 호시노 감독을 비난하며 공개적으로 끌어내리고 대표팀 합숙 훈련에서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분위기에서는 일본이 국가 대항전에서 이기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지난 해 연봉 총액은 76억 원 가량이고 일본은 1310억 원으로 근 20배 차이가 납니다. 국가 대항전에서는 연봉 액수보다는 정신력이 앞선다는 사실이 이번 대회에서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메이저리그 출신으로 팀을 구성했다해도 정신력이 해이한 팀은 국가 대항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본보기는 네덜란드가 도미니카 공화국을 제치고 8강에 진출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도미니카는 메이저리그 선수가 대표팀 28명중 22명이 포함돼 연봉 총액이 무려 8340만 달러(1200억 원)로 우승 후보로까지 꼽혔으나 지난 해 메이저리그에서 잠깐 뛴 2명의 선수로 연봉이 40만 달러에 불과한 네덜란드에 두 번이나 패하면서(2-3, 1-2, 11회 연장패) 본선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팀이 지고 있는데도 덕아웃에서 몇 몇 선수들은 낄낄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으니 팀이 이길 수 없습니다. 미국은 1회 대회 도중하차의 낭패감을 씻으려고 이번 대회는 패자부활전을 도입하는 묘수를 쓰고 강팀 도미니카를 의식해 대회 전날 강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엉덩이 근육 파열 부상을 소속팀 뉴욕 양키스가 발표하게 만들어 A.로드의 도미니카팀 출전을 막는 등 각국의 유명 선수들의 자국팀 출전을 저지했습니다. 세계 최고라는 메이저리그 올스타급 선수로 구성하고도 1회 대회에서 8강전에서 멕시코에 패해 탈락했던 미국은 이번에도 본선 2라운드 첫 경기서 푸에르토리코에 1-11, 7회 콜드게임패의 수모를 당했지만 패자부활전에서 네덜란드에 9-3으로 이기고 푸에르토리코엔 6-5로 힘들게 재역전승을 거두어 4강에 진출했습니다. 미국과 대결에서 크게 리드당하고도 맹렬하게 추격전을 펼쳤던 네덜란드의 로드 델모니코 감독은 미국 테네시 대학에서 수석코치로 일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는 도미니카팀을 연파한 후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며 "우리가 이긴 것은 미국식 야구를 한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야구는 미국야구가 아니라 세계 스포츠로 변해 갈 것이다"고 밝혀 전 세계 야구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공감을 샀습니다. 한국의 연속 4강 진출, 네덜란드의 8강 진입 외에도 이번 대회에서는 세계 야구를 놀라게 한 경기 내용이 많았습니다. B조 1라운드에서 호주가 멕시코에 경기 초반에는 뒤지고 있다가 끝내 17-7, 8회 콜드게임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쿠바엔 4-5로 분패하는 이변 아닌 이변을 낳았습니다. C조에선 이탈리아가 메이저리거 출신으로 대부분 구성된 캐나다에 콜드게임으로 질 것으로 누구나 예상했지만 도리어 6-2로 이겨 야구인들의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이번 WBC를 치르면서 미국은 야구를 메이저리그 위주로 끌고 가려는 기존의 방침을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겁니다. 반면에 한국야구는 세계대회에서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이렇게 한국야구가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은 우리나라 모든 야구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 진출을 꿈꾸며 기량을 닦고 고생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메이저리그에만 머물러 있던 미국야구도 이제는어쩔 수 없이 세계 야구를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고 최근 등을 돌렸던 한국야구에 대해서도 다시 보는 계기가 됐을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야구가 한층 최고 종목으로 대우 받겠지만 기업과 정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야구장 시설을 개선하고 실업야구를 부활 시켜 선수들의 취업 문을 넓히는 등 야구의 인식이 보다 확대됐으면 좋겠습니다. OSEN 편집인 chunip@osen.co.kr [LA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