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일본의 ‘잔재주 야구’를 분쇄한 한국의 ‘잡초 야구’
OSEN 기자
발행 2009.03.20 07: 35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의 시 가운데서 발췌-
끈질긴 풀의 생명력은 어딘가 한국야구와 닮았다. 한국야구를 ‘잡초야구’로 규정짓는다면, 어떨까.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를 통해 한국야구는 뛰어난 적응력과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했다. 임기응변에 능하고, 자유로운 발상으로 한국바둑을 세계 최강으로 올려놓았던 조훈현과 이세돌의 행마를 얼핏 연상케 한다. 모양에 치우쳐 강국의 힘을 잃은 일본 바둑처럼, 일본야구는 잔재주에 너무 의존하다가 한국야구에 된통 당했다. 기교에 절망한 꼴이다.
한국야구와 일본야구는 이번 WBC 2라운드 1조 승자 맞겨루기에서 서로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냈다. 한국야구에 대한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일본은 동시에 그 대결에서 한계점 또한 극명하게 드러냈다.
‘한국야구가 과연 일본야구를 넘어섰는가’하는 물음은 일단 접어두자. 지난 3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 구장에서 열렸던 한-일전에서 일본은 한국의 ‘잡초야구’에 주눅이 들어버렸다.
한국이 1회에 메이저리거 이와무라의 어설픈 수비 실수를 징검다리 삼아 일본 최고의 투수 다르빗슈로부터 3점을 뽑아낸 이후 일본 선수들은 현저히 활력을 잃어갔다.
그 경기를 통해 살펴본 한국의 임기응변의 사례는 1회 이용규의 2루 도루, 김현수의 용감무쌍한 홈 파고들기, 이범호의 기다림에서 얻어낸 밀어내기 쐐기점 등을 들 수 있겠다.
이용규의 기습 도루는, 자칫 실패했다면 경기의 흐름을 일본에 넘겨줄 수도 있었던 ‘모험’이었으나 위험을 무릅쓴 헤드퍼스트슬라이딩으로 일본의 기를 한 풀 꺾어 놓았다.
김현수가 1회 이진영의 좌전 안타 때 찰나의 틈새를 비집고 득달같이 홈으로 뛰어들어 3번째 득점을 올린 것 또한 기민한 주루플레이로 칭찬받아 마땅했다.
3-1로 추격 당한 8회 2사 만루, 이범호의 타석에서 일본의 5번째 투수 이와타 미노루가 유인구로 위기를 넘기려다가 도리어 당했다. 이범호는 이와타의 낮게 떨어지는 볼에 속아 연거푸 헛손질하며 볼카운트가 몰렸으나 이와타가 계속 비슷한 구질로 속이려 들자 이내 냉정을 되찾아 끈질기게 버텼고, 풀카운트에서 제 8구째에 역시 낮게 떨어지는 공을 침착하게 걸러내 결국 밀어내기 쐐기점을 뽑았다. 일본 벤치가 이 대목에서 정면 승부를 걸지 않고 잔꾀로 넘어가려 했지만, 이범호는 걸려들지 않았다.
8회 1사 2루에서 김태균과 정면 승부를 피해 고의볼넷으로 걸린 것도 일본 벤치의 유약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반면 김광현은 8회 2사 1루에서 오가사와라를 상대로 볼카운트 2-1에서 높고 빠른 공으로 승부를 걸어 삼진으로 처리한 것은 이와타와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도쿄 1라운드 첫 한-일 대결에서 14-2 콜드게임승을 거두고 기고만장했던 일본은 2차 대결에서 0-1 완봉패 한 후 3차 대결에서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지레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이번 한-일 대결은 ‘이것이 야구’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로 그 속성을 여실히 나타냈다. 일본 대표팀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어차피 실력차이는 종이 한 장이다. 힘 비율이 7:3이라고 할지라도 3이 이길 수 있는 것이 바로 야구”라고 말했다. 콜드게임 패 뒤에 두 차례의 완승은 그런 말을 실감케 했다.
1991년은 한국 프로야구가 대한해협을 건너 ‘가깝고도 먼나라’일본 열도로 들어가 사상 처음으로 힘겨루기를 시작했던 해였다. 한-일 슈퍼게임으로 명명된 그 첫 대회 당시 한국 대표선수들이 도쿄돔 구장에 들어선 뒤 생경한 구장의 구조에 아주 낯설어하면서 연습 도중 ‘타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당황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 때만하더라도 일본은 한국이 명실상부한 올스타팀으로 선수단을 꾸린데 비해 몇 수 아래로 깔보고 지역선발팀으로 맞섰다. 한국은 1~3차전을 내리 패해 과연 1승이라도 거둘 수 있을까하는 회의론이 팽배했지만 4, 5차전에서 분발해 결국 2승 4패로 첫 교류전을 마쳤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이제 한국과 일본은 노골적으로 라이벌 의식을 드러내는 처지로 바뀌었다. 일본 언론에서 한국을 일컬어 ‘숙적’이라거나, ‘숙명의 라이벌’로 표현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비근한 예로 한국이 지난 3월 16일 멕시코를 꺾자 일본의 매스컴에서는 ‘강한 한국 건재’(스포츠 닛폰) 등의 제목 달기도 했다.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한국야구에 대한 재발견,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멀게만 느겨졌던 일본과의 실력 차이가 야금야금 좁혀진 것은, 한국 선수들이 그 동안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무대 진출을 통해 그네들의 야구를 가까이서 접하는 기회가 늘어났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척박한 풍토에서도 어김없이 강한 생명력을 발현하는 풀처럼, 한국야구도 강하게 자라나고 있다. 이제 열악한 환경을 어떻게 변화 시키느냐가 야구계에 던져진 숙제일 것이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3월 18일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 파크에서 벌어진 일본전에서 한국이 4-1로 이긴 후 승리의 두 주역 봉중근(왼쪽)과 이진영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고 환호하고 있다.
같은 경기 1회 말 첫 득점한 이용규가 홈을 밟은 후 동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는 모습.
1회 말 1사 만루에서 이진영의 좌전안타 때 2루주자 김현수가 홈으로 쇄도, 3점째를 올렸다. /샌디에이고=김영민 기자ajyo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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